<다양성의 해변에서> 무늬 작가 인터뷰
2W매거진에서는 10회 이상 투고한 필진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전자책 단행본을 발행해드리는 '에세이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덟 번째 에세이스트, 무늬 작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의 말_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이야기이고, 매일 다른 날씨를 맞이하듯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면, 딱 이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무늬 작가님의 《가능성의 해변에서》는 작가가 현실을 인식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모호하게 느끼곤 하는 ‘현실의 비현실성’을 다양한 장르의 글로 풀어낸 책입니다. 에세이와 픽션의 경계를 허물고 드라마 같은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진실을 파고드는 작가의 필력이 놀랍습니다. (홍아미)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무늬입니다. 작가 소개로 말씀드린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좋아했는데 결국 드라마 일로 밥벌이하고 있어요. 아직 제 이름을 건 작품은 없지만, 드라마 작품 개발을 하면서 SF소설의 영상화 각본을 쓰고 있습니다. 재밌고 무탈하게 작품화되어 만날 수 있길!(제발)
Q. 2년에 걸친 시간 동안 원고를 모아오셨는데요.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소감이 궁금합니다.
지난 2년은 공교롭게도 제가 본격적인 직업 작가로서 발을 들여놓은 시기와 겹쳐 있었어요. 지금의 제가 되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지난 시간을 그런 방법으로 보냈던 것이 과연 충분했나? 앞으로 나는 어떻게 (잘) 해야 하지? 전과 다른 차원의 자기 확신이 필요했을 때, 《2W매거진》은 좋은 방편이 되어주었습니다. 매거진에 투고한 글이 발행되면, 내가 지난달 그래도 ‘작가’로서 무언가를 했구나, 안도하면서 이번 달을 다음 달로 잇게 할 용기를 얻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에세이스트 프로젝트의 참여 메일을 받았을 때는 역시나 신나고 뿌듯했습니다. 앞선 프로젝트의 작가님들이 발표하신 앙증맞고도 알찬 에세이집을 보면서 좋은 드라마를 볼 때처럼 탐이 나더라고요. ‘나도 이런 것을 원했던 거야!’ 겁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원고를 고치고 새로 쓰면서 필연적인 책임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됐어요. 결국, 이 작업 역시 독자를 만나야 하는 일이니까요. 이 책이 과연 독자분들이 돈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을까? 어느 한순간이라도 새롭게 눈뜰 수 있는 경험을 줄 수 있을까? 그저 나 혼자 자족하는 숨구멍일 뿐일까? 세상에 재밌고 훌륭한 책이 이미 많은데 내가 서툴게 보탤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어릴 적 어른들이 절 보고 하신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무늬 넌, 욕심이 많은 아이야.”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시놉시스나 대본은 아무리 공들여 쓰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람만 읽어 볼 수 있고 투자받기 위해선 냉혹한 평가가 불가피해요(이와 관련해서는 드라마 작가 지망생의 삶을 ‘훗훗하게’ 밝혀놓은 주시월 작가님의 《좋아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해서》에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일상으로 지내면서, 누군가 선택해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온전한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생활에 너무 직접적이어서 간절해지는 직업적 목표에서 조금 비켜선다면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요, 해명 같은 소감을 한마디로 줄여볼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이 과연 독자분들이 돈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을까? 어느 한순간이라도 새롭게 눈뜰 수 있는 경험을 줄 수 있을까? 그저 나 혼자 자족하는 숨구멍일 뿐일까? 세상에 재밌고 훌륭한 책이 이미 많은데 내가 서툴게 보탤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어릴 적 어른들이 절 보고 하신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무늬 넌, 욕심이 많은 아이야.”
Q. 이번에 출간하는 《가능성의 해변에서》는 어떤 책인가요? 독자분들에게 소개해 주세요.
《가능성의 해변에서》는 《2W매거진》의 개인화 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필진과 장르의 글을 싣고 있는 잡지처럼 구성되어 있으니, 끌리는 제목을 선택해 읽으셔도, 우연히 펴놓은 페이지에서 시작하셔도, 원래의 순서에 맞춰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어디든 당신의 눈길이 닿는 곳이 해변의 입구가 될 수 있습니다.
Q. 에세이를 픽션화한다는 시도가 신선합니다. 버추얼 에세이라는 장르가 좀 생소하기도 한데요. 장르의 경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님에게 에세이와 픽션은 각각 어떤 장르이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궁금해졌어요.
드라마를 쓰기 위해 특별한 경험을 갈망한 적이 있어요. 사연 있는 인물을 그려내지 못하니까 사연 있는 인생을 살아야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좋은 드라마는 좋은 에세이와 맞닿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경험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요. 에세이는 현실의 경험을 논하거나 회고하고, 픽션은 그럴법한 경험을 제시하는 장르인데, 버추얼 에세이는 에세이와 픽션의 경계를 허물죠. 그것의 목표는 하나예요. “진실해지는가?” 그런 점에서 제게 버추얼 에세이는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물리적 현실이 심리적 진실과 다른 순간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르인 것 같아요.
Q. 이번 책에 수록한 원고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글이 있다면? 그 이유는?
‘이천십오년 여름의 돌계단’이에요. 어떤 글들은 써야 해서 쓰게 되지만, 어떤 글들은 터져 나오듯이,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게 되기도 하는데요. 이 글은 그렇게 아무 목표 없이 쓰는 희귀하고 소중한 순간이 간직되어 있어요. 《2W매거진》의 기고 순서로는 단편 소설 ‘최고급 호텔의 바퀴벌레’가 더 이르지만, 에세이로는 첫 번째이기 때문에도 특별합니다. 《가능성의 해변에서》의 콘셉트를 생각할 때 기준이 되어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Q. 반대로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글이 있다면요?
서문을 쓰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일반적으로 독자가 책을 선택할 때는 특정한 주제나 작가에 관한 관심 혹은 호기심이 주요하게 작용할 텐데, 이 책은 두 가지 모두 어필하기 어려우니까요. 영화로 비유하자면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상업 영화 같지 않고, 멀고 작은 독립 영화관에 걸리는 수요일 오후 3시 영화 같은 느낌이랄까요.
독자분들이 여러모로 놀라지 않게(?) 친절한 첫인사를 하면서, 이어질 작품들의 톤 앤 매너를 맛보게 하고 싶었는데, 성공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Q. 무늬 님은 《2W매거진》 창간호부터 함께한 필진이신데요. 무려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작가로서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본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달라졌을까요?
올해 초에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중고 디지털 피아노 한 대를 작업실에 들여놓고, 말동무 찾아가듯 출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소를 유지하기 위해 부업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얼마간 해오고 있고요. 지난해 ‘내일 예보 불가’로 설정한 넷플릭스 아이디는 여전히 그대로지만, 다행히도 그즈음 취득한 바리스타 자격증은 장롱면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Q. 《2W매거진》과 함께 이렇게 오래 함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일상의 관계에서 내가 나다워질 수 있는 존재는 너무 소중하잖아요? 《2W매거진》은 제게 그런 존재였어요. 어쩌면 친한 친구도, 함께 공부했던 동료도, 저에게 계약금을 준 분들도 알지 못하는 부분들, 내가 아주 나답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제각각 모양의 글로 써서 양지바른 곳에 널어둔 셈이에요. 다정하게 관심받고 싶어서요.
Q. 평소 글을 잘 쓰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시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쓰는 것이 재능이 아니라 계속 쓰는 것이 재능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못 쓴다는 말을 들을 때나 잘 쓴다는 말을 들을 때나 어쨌든 써내려고 해요.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좋은 책이나 시나리오, 영화를 읽고 보려고 노력해요. 노력이라 말씀드리는 건, 제가 그걸 의도적으로 하기 때문이에요. 애써서 안 읽히는 책을 읽고, 졸면서도 영화를 봐요. 감탄하고, 질투하고,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배우고요. 이 과정이 재밌으려면 사실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게 좋죠. 서로 다른 것을 보더라도 의견이나 감상을 나누면 관점이 넓어지잖아요. 저는 일상 관계에서 그 부분이 여의찮아서 교육원과 대학원의 힘을 빌렸어요. 따로 스터디를 꾸린 적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어떤 화제나 심상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정리해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리포트든 매거진 투고든, 글쓰기 조깅(매일 다른 주제로 글쓰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제시된 주제로 ‘최고급 호텔의 바퀴벌레’ 제목을 얻기도 했어요.)이든, 하물며 일기든. 금방 잊어버리게 되고 마는 감정과 상황을 정교하게 고민해두어야, 어떤 종류의 글이든 그곳에 녹아드는 세계관이 풍성하고 튼튼해지는 것 같아요. 이런 훈련이 아이디어를 명확하고 재밌게 전달해야 하는 드라마 기획안을 쓸 때도 도움이 된다고 느꼈어요.
Q. 이번 에세이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책을 출간하는 소감 말씀과 앞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게 될 동료 작가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준비하던 어느 날, 오래도록 쓰지 않은 메일함을 열어본 적이 있어요. 반갑게 놀라면서 가슴 한구석이 뜨끈해졌어요. 거의 20년 전에 절 가르치신 선생님들과 나누었던 메시지가 있었거든요. 거기엔 제가 그렇게 원하던 애정과 다정, 염려와 응원이 기록되어 있었어요. 자라면서 메일의 존재를 전혀 모르지는 않았는데……. 냉정 혹은 비정함에 압도당했던 십 대나 이십 대 시절엔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사는 세상에 분명히 존재했던 따뜻함을 젠체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어요. 그래서 기뻐요, 조금 자라난 것 같아서. 그래 봤자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 된, 저보다 어른들이 보시기엔 여전한 꼬맹이겠지만요.
“돌 하나만 주워도 열심히만 하면 된단다. 무엇이 되더라도 가장 좋은 것이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인생도 재밌고... ㅋㅋ”
열두 살의 저에게 이 메시지를 보내주신 선생님과 동년배가 되어서 다시 배운 말이에요. 저는 지금의 선생님과 미래의 저보다 언제까지나 어리고, 어리숙하겠지만, 이 책을 써내며 바위처럼 느껴졌던 과거를 돌멩이처럼 주워냈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힘이 세진 것인지, 바위가 부서져 돌멩이가 된 것인지, 그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없어지지 않는 걸, 무조건 없애려 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로 만든 느낌이랄까? 어쨌든, 살아가는 길 위에 무거운 돌멩이가 새로 생겨도 그것을 내가 가는 길의 풍경으로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동료분들께서도 주위에 놓인 돌멩이를 열심히, 재밌게 주워나가며 지금 서 있는 곳을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어나가길, 응원할게요.
* <가능성의 해변에서>의 전자책 정가는 5000원입니다. 교보문고, 리디북스, 알라딘, 예스24 등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도서 수익은 여성 창작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사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