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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Jun 14. 2023

치앙마이에 단골집이 생기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아봤더니 8


치앙마이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나니 동네 지리도 익숙해지고 슬슬 자주 가는 단골집도 생기고 있다. 익숙함이란 게 꼭 시간에 비례하란 법은 없다.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낯설고 불편한 곳이 있는가 하면, 처음 방문한 곳임에도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친숙한 곳이 있다. 치앙마이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후자의 느낌을 선사하는 곳이다.  





오늘은 점심으로 어묵국수를 먹으러 갔다. 50밧~60밧(2천 원 내외) 정도 하는 저렴한 국수가게인데, 굉장히 깔끔해서 놀랐다. 손님은 모두 한국인관광객이었고, 아이유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친숙할 데가. 음식도 가볍게 아침으로 먹기에 괜찮은 메뉴였다. 무엇보다 15밧짜리 아이스티 메뉴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날은 숙소 청소하는 날이라 남편도 노트북을 가지고 함께 카페로 갔다. #님만해민 #일하기 좋은 카페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나인원카페


나쁘진 않았으나 생각보다 자리가 협소해서 일하기 좋은 카페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테리어와 카페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시그니처커피를 주문했는데 맛이 상당히 독특했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 두세 시간 함께 글을 썼다. 남편은 소설을, 나는 여행 일기를. 가끔 생각한다.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하고, 같은 것을 맛있어하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반려자로 맞았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그 행운이 무려 13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적인지. 아무래도 13년 전 그때와 같은 여행지를 같은 사람과 여행하고 있다 보니 새삼 이 행복을 체감케 된다. 





한참 일하다 보니 출출해졌다. 태국 음식은 두어 시간 지나면 금세 소화가 된다. 양이 적어서 그런 건지,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다. 뭐 괜찮다. 맛있는 건 천지고, 또 사 먹으면 되니까. 한국에서는 먹는 데 많은(혹은 잦은?) 시간을 쓸 수 없으니, 한 끼에 배부르게 먹어두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내가 늘 소화가 잘 안 되고 변비에 시달렸던 건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태국에 오니 만성변비가 싹 사라진 걸 보면 확신에 가깝다. 



오늘이 치앙마이에 온 지 딱 일주일째 되는 날. 한국에서 구입한 태국유심이 7일짜리였기 때문에 한 달짜리 유심으로 바꿔 끼기 위해 AIS센터에 갈 겸, 푸드코트에서 식사도 할 겸 마야몰로 향했다. 태국에서 30일 동안 무제한 인터넷, 무료 국내 통화를 할 수 있는 유심을 300밧 주고 샀다. 한 달 넘게 한국에서 부재중이기 때문에 한국 번호는 정지를 시켜놓은 상태다(정지 상태로 번호 유지하는 비용은 월 3900원). 아무튼 한국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편하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데, 1만 원 남짓한 비용이라니 통신비가 확 줄은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식비도 그렇고, 한국에서 별 거 안 하고 지내는 생활비보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하는 비용이 확실히 적게 드는 것 같다(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항공편과 우리 고양이들 펫시터 비용 생각하면 비슷비슷하겠다).


유심을 교체하니, 뭔가 인터넷도 더 빨라진 느낌. 인터넷이 잘 되면 희한하게 몸도 가벼워지는 느낌. 스마트폰 없을 땐 여행을 어떻게 했나 싶다. 지도앱과 번역앱을 거의 제2의 뇌처럼 사용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어떻게든 했다.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조차 없어서 종이지도로 길을 찾고, 국제통화 부스를 겨우겨우 찾아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안전신고를 해드리곤 했던 것도 추억이다. 


3층에 있는 마야몰 푸드코트에 갔다. 여기는 결제 시스템이 독특했다. 푸드코트 앞 데스크에서 일정 비용이 충전된 카드를 구입한 뒤 그 카드로 해당 부스에 가서 찍어야 한다.(헤매고 있는 다른 한국 관광객 분이 도와주심)


가격도 적당하고 메뉴도 많아 보여서 고민이 많이 됐다. 결국 선택한 건 오믈렛카레라이스. 결론부터 말하면 태국 최악의 식사였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미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간이 하나도 안 맞았고, 쓸데없이 매운데 국물은 흥건하게 묽었다. 와……. 입맛에 상당히 관대한 편인 우리가 맛없어서 화가 날 정도의 음식이었다.


“나는 이런 음식을 먹기 위해 태국까지 날아온 게 아니야!!” 

다시는 여기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카드에 이미 200밧 정도를 충전해 놓았기 때문에 남은 금액을 쓸 겸 음료수를 샀는데 그조차도 너무 맛이 없어서 다 남겼다. 으.... 진짜 다시는 안 온다. 



기분이 상한 상태로 숙소로 돌아오니 깔끔하게 청소가 잘 되어 있어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참 쉽게도 팔랑거리는 가벼운 기분이다. 




쾌적한 숙소에서 편히 쉬다가 해가 질 때쯤 저녁 먹을 겸 나갔다. 점심식사가 너무 최악이었기 때문에 왠지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가본 집 앞 식당으로 다시 향했다. 여긴 뭘 시켜도 맛있었다. 음.... 그래 이맛이다. 마음의 안정감이 찾아온다. 





머문 지 일주일쯤 지나니 이제 슬슬 단골집이 생기는 걸까. 단골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맞은편 단골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샀다. 수박, 멜론, 파파야, 망고 등등 온갖 과일을 먹기 좋게 자른 게 한 봉지에 12밧다. 대여섯 봉지씩 매일 사 먹어도 2000원 정도라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단골 로띠가게에도 들렀다. 여긴 가게라기보다 님만해민로드 세븐일레븐 앞에 있는 노점상이다. 며칠 전 우연히 여길 발견하고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태국 길거리 음식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게 ‘바나나로띠’다. 이상하게도 치앙마이에선 이걸 파는 가게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는데, 정말 우연히 발견했다. 첫날 “에브리 데이, 히얼?” 확인을 받고 자주 찾아가고 있다. 



지난번엔 바나나에그 로띠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누텔라바나나로띠를 먹어보기로. 음... 달고 따뜻하고 바삭하고……. 역시 태국 최고의 간식이다. 

그래 이만하면 꽤 괜찮은 하루. 



*참고- 2022년 12월 시점의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글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아미가출판사 대표. <제주는 숲과 바다> <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미치도록 떠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남미>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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