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이런저런 아이스크림이 많아졌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베스킨라빈스, 이제는 사라진 콜드스톤, 하겐다즈 등 미국에서 건너온 아이스크림은 종종 커다란 기쁨을 안기는 고급스러운 디저트였다.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미제 아이스크림을 밀어낸 건 이탈리아에서 맛본 젤라토였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 3명과 의기투합해 인생 첫 유럽여행을 떠났다. 각자의 취향을반영해 영국 런던 - 프랑스 파리 - 스페인 바르셀로나 - 이탈리아 로마와 피렌체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짜고, 숙소와교통편 일부만 정한 채 출발했다.
당시 한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는 이탈리아에 가면 바티칸 워킹 투어를 하는 게 유행이었다. 7월의 땡볕을 피해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안에서가이드의 유창한 설명을 들으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건축 및 예술에 푹 빠졌다. 하지만 바티칸 투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티칸을 나와근처의 젤라토를 먹는 것까지가 정해진 코스였다. 우리 일행이 향한 아이스크림 가게의 이름은 ‘올드 브릿지’. 웬만한 동네 구멍가게보다 작을 것 같은 좁은 공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진열대에 안에는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이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몰랐기에 이름 옆에 그려진 그림과 아이스크림 색깔을 보고 맛을 대충 짐작했다. 언어보다 빠른 것은 보디랭귀지. 더운날씨에 지친 몸이 먼저 반응해 손가락으로 먹고 싶은 것의 위치를 가리켰다. 아무리 관광지라 하더라도 어차피 한국인과 이탈리아인이 소통하는 데는 몸짓이 가장 정확할 터였다. 무언의 소통 끝에 마침내 내 손에는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담긴 컵이 들렸다. 이제까지 보아왔던여느 아이스크림과는 달리 생김새가 소박했다. 토핑이 잔뜩 올려져 있지도, 색깔이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망설이지 않고 스푼으로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크게 푹 떠서 입에 넣었다.
혀로 한입 훑으면 녹지 않고 그대로 지나간 길이 남는 쫀쫀한 식감에 원재료의 맛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아이스크림은 난생처음이었다. 놀라운 맛에 감탄하며 컵 바닥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게걸스레 젤라토를 먹어치우는 동안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탈리아에서는이를 아이스크림이 아닌, 이탈리아어로 ‘냉동된’, ‘얼음’ 등을 뜻하는 형용사이자 명사인 ‘젤라토(Gelato)’로, 젤라토 가게는 ‘젤라테리아(Gelateria)’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방문한 이곳 외에 ‘로마 3대 젤라토’에 속한다는 다른 두 곳의 젤라테리아도 알려주었다.
그 이후 로마 3대 젤라토를 모두 섭렵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도시에서도 맛있다는 젤라테리아는 최대한 가보려고 노력했다. 가이드북과 온라인 검색, 현지인 찬스, 자칭 예리한 직감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젤라테리아 리스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젤라테리아만 전국에4만 개가 넘는 이탈리아에서는 ‘유명하다’는 수식어가 별 의미가 없었다. 도시, 동네, 사람마다 소위 ‘맛집’이 제각각인데다 아주 운이 나쁜경우를 제외하곤 웬만하면 모든 젤라토의 맛이 기본은 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가장 맛있는 젤라토를 하나만 꼽으라는 것은 무척 곤란한 질문이다. 쌀 알갱이가 씹히던 리조, 고소한 풍미의 우유, 달콤함 뒤에 약간의 산미가 따르는 딸기 등 인상적이었던 몇몇이 있지만, 사실 맛보다는 어디서,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의 전반적인 상황이 더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의 음식으로서 젤라토는 그 기원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길고, 요리학교에 코스가 개설되어 있을 정도로 깊이 있다. 그러니 나는 이따금 이탈리아 여행을 꿈꿀 수밖에 없다. 젤라토의 본고장에서 가장 완벽한 젤라토를 만나려면 아직 멀었으니.
양슬아
‘먹고 사는 일’에 관심이 많다. 좋아하는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 가장 행복하다. 반대로 맛없는 걸 먹을 때 유난히 화가 난다. 궁극적으로 매끼니 주변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직접 만든 정성스런 요리를 먹는 호사스런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