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위로한다
도시의 반은 강이었다
오래전 알고 있던 바다가
발아래 흘러왔단 걸 알았을 때
저녁마다 강가에서
물을 위로했다
우리는 언덕을 좋아했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걸었을 때
거짓말처럼 길었던 그림자가
진짜인 줄 알았다
너도 진짜여야만 했다
사라질 거야, 덜그럭 네가 말했다
바닷물이 옆으로 움직였다
도시의 반은 강이었던 곳에서
간절하게도
물을 위로하는 일 말고는 없었다
해가 떴을 때,
너는 기쁘게도 사라졌다
마음을 감고 만나면
소란해진다는 걸
그렇게 기쁘게도 사라졌다
물을 반대로 쓸어 넘기고
강의 역방향
마음이 눈부셨고
너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물을 위로하는 건
나를 반성하는 일
(2017, 벨기에 겐트)
: 벨기에에서도 세 번째로 큰 항구도시인 겐트는 강을 따라 중세시대 건물들이 촘촘하다. 여행자처럼 지구의 물도 순환될 것 같았다. 내 과거의 바닷물이 중세시대 건물이 놓여 있는 강 앞에 멈췄고, 그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미련한 나를 떠올렸다. 헤어지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그 시간부터 지워야 한다. 그렇게 그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박산하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호흡이 짧고 간격이 넓은 글을 쓰고 싶어 시 비슷한 걸 씁니다. 언어를 고르고 마음을 조율하는 일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