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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가 Nov 06. 2017

물을 위로한다


물을 위로한다


도시의 반은 강이었다


오래전 알고 있던 바다가

발아래 흘러왔단 걸 알았을 때

저녁마다 강가에서

물을 위로했다


우리는 언덕을 좋아했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걸었을 때

거짓말처럼 길었던 그림자가

진짜인 줄 알았다

너도 진짜여야만 했다 


사라질 거야, 덜그럭 네가 말했다

바닷물이 옆으로 움직였다


도시의 반은 강이었던 곳에서

간절하게도  

물을 위로하는 일 말고는 없었다


해가 떴을 때,

너는 기쁘게도 사라졌다


마음을 감고 만나면

소란해진다는 걸


그렇게 기쁘게도 사라졌다

물을 반대로 쓸어 넘기고


강의 역방향  

마음이 눈부셨고


너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물을 위로하는 건

나를 반성하는 일


(2017, 벨기에 겐트)


: 벨기에에서도 세 번째로 큰 항구도시인 겐트는 강을 따라 중세시대 건물들이 촘촘하다. 여행자처럼 지구의 물도 순환될 것 같았다. 내 과거의 바닷물이 중세시대 건물이 놓여 있는 강 앞에 멈췄고, 그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미련한 나를 떠올렸다. 헤어지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그 시간부터 지워야 한다. 그렇게 그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박산하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호흡이 짧고 간격이 넓은 글을 쓰고 싶어 시 비슷한 걸 씁니다. 언어를 고르고 마음을 조율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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