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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람 Oct 19. 2022

복싱이란 무엇인가


체육관에 다닌 지 어느새 3개월. 속성으로 배운 잽과 스트레이트지만 폼이 꽤 난다. 여전히 솜방망이 주먹을 내지르고 있지만, 나름 열심히인 모습에 감동한 관장님은 나를 <스파링> 이란 이름으로 링 위에 세우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원투잽잽을 상상하며 올라간 링 위에서 나는 그저 한 마리의 어린 양일 뿐이오, 링 아래에서 솜방망이 정도 돼보였던 주먹이 고작 먼지방망이따위에 불과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다. 그렇게 주먹타작을 받으며 나는 이런 명언을 떠올린다.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지구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인 마이크 타이슨의 말이다. 물론 그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을 상대하러 올라오는 적수에게 으름장을 놓기 위해 한 말일테다. 무지막지한 파워의 펀치와 헤비급이라고 믿을 수 없는 날랜 움직을 보유한 사람이 하기에 아주 적절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 꼭 타이슨만 하라는 법은 없다. 타이슨에게 죽어라 줘터진 선수가 이 말을 남겼다면 더욱 감동적이지 않겠는가. 예를들어, 타이슨과의 대결에서 3라운드 KO패를 당한 코튼스틱-펀치넬리우스-3세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거다. 


"계획을 가지고 올라갔는데 소용없었어요. 한 대 맞으니까 눈물이 핑 머리가 핑 하더라고요"


어떤가? 타이슨의 위협보다는 펀치넬리우스의 진심이 더 와닿지 않는가? 그런고로 나는 복싱을 '쳐맞는 스포츠'로 명명하고 싶다. 당장 복싱 체육관을 등록하면 가르쳐 주는 기술이, 스텝-잽-스트레이트 같은 공격기술이긴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쳐맞는 거라고 말이다. 링 위에서 샌드백처럼 가만히 있는 상대는 없다. 상대방도 똑같이 공격기술을 배운 솜방망이 회원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잘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비단 링위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어떤 역경이 닥쳐도 잘 쳐맞아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당신이 타이슨처럼 뛰어난 펀치력을 가지고 있거나, 싸움은 못하더라도 돈과 권력 기타등등이 많아서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전혀 상관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다면 부디 내 말을 기억해달라. 잘 맞아야 한다.


상대방의 펀치를 잘 막고, 받고 그 뒤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내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상대방의 공격에 당황해 고개가 들리고 뒤로 물러나는 순간, 오히려 더 많은 공간을 내줄 뿐이다. 세상사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계획한 대로 좋은일 기쁜일 행복한 일만 있을 리는 없다. 세상의 눈치에 고난과 역경에 당황하고만 있을 텐가. 잘 쳐맞아야한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스파링에서 몇 대 쳐맞고 오니 정신이 번쩍 든다. 다음에는 좀 더 잘 맞아야겠다는 거지근성과 더불어, 다음에는 나도 몇 대 때려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살면서 별로 맞아본 적도 없는 타이슨이 저런 명언을 남긴 게 심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정말 맞는 말 같다 쳐맞는 말. 타이슨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한 코튼스틱-펀치넬리우스-3세가 한 말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타이슨에 대한 실망으로 또 다른 복싱 명언을 찾아보기로 한다. 마침 적절한 대사가 눈에 띈다. 영화 <록키>의 대사다.


"인생은 얼마나 강한 펀치를 날리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얼마나 쳐맞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게 중요하다."


 P.S. 사진에서 오른쪽 인물이 타이슨이다. 쳐맞고 있는 왼쪽의 사람은 누군지 모른다. 코튼스틱-펀치넬리우스-3세는 가상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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