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지하철에서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통화하고 있었다.
"진짜로, 난 40 넘어서도 이런 식으로는 안 살 거야. 그때까지는 다 정리되어 있을 거라고."
순간 피식 웃었다. 얘야, 미안하다.
늦은 40대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정리 안 된 채로 살고 있거든. 그리고 그게 나쁘지 않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거든.
학창시절엔 대학만 가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대학 다닐 땐 취업만 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취업하고 나서는 결혼만 하면, 아이만 낳으면, 집만 사면... 뭔가 하나씩 해결하면 진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늦은 40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어제도 마트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양파를 사려고 했는데, 어떤 게 좋은 양파인지 모르겠더라. 20대 직원한테 물어볼까 하다가 "이 나이에 양파도 못 고르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아무거나 집어왔다. 집에 와서 까보니 속이 다 썩어있었다.
이런 식이다, 내 인생이.
얼마 전에 동네 카페에서 한 할아버지가 젊은 직원한테 키오스크 사용법을 물어보시는 걸 봤다.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더라. 오히려 "젊은 사람이 가르쳐주니까 좋네, 고마워요" 하시면서.
그때 깨달았다. 아,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나뿐이구나.
나는 지금까지 "이 나이에 이것도 몰라?"라는 시선이 무서워서 모르는 척하고 살았다. 스마트폰 새 기능도, 요즘 유행하는 것들도, 심지어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아는 척했다.
왜 그랬을까. 어른이 되면 모든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네요"라는 말 많이 들었다. 처음엔 기분 나빴다. 왜냐하면 "지금 와서 뭘 해봤자"라는 뜻으로 들렸거든.
그런데 요즘은 늦깎이라는 말이 좋다. 늦었지만 아직 깎고 있다는 뜻이잖아. 포기 안 했다는 뜻이잖아.
내 친구는 늦은 40대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이 들어서 기타를 배우네"라며 놀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부러워한다. 그 친구가 카페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글은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인생 조언도 아니다. 그냥 늦은 4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혹시 나처럼 "나만 이렇게 정리 안 되어 있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완벽한 어른이라는 건 없다고.
그리고 늦어도 괜찮다고. 정리 안 되어도 괜찮다고.
앞으로 몇 주 동안 늦은 40대 늦깎이의 아직도 정리 안 된 이야기들을 써볼 생각이다.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