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별 생각이 없었다.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뭘 볼까. 드라마는 질리고, 예능은 시끄럽고, 뉴스는 우울하고. 넷플릭스를 켜고 멍하니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다 눈에 들어왔다.
명탐정 코난.
들어는 봤다. 유명한 거. 근데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애니는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냥 심심해서, 뭐 어때 하는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 편만 보려고 했다.
진짜로, 한 편만.
오프닝이 나왔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안경 쓴 꼬마가 외쳤다. 뭐야 이게, 싶었다. 근데 사건이 시작되니까 눈이 떼지지 않았다. 누가 죽었다. 용의자가 세 명이다. 누가 범인이지? 추리가 시작됐다. 밀실 트릭이 나왔다.
생각보다 치밀하다. 이게 만화 맞아?
2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에피소드가 끝나고 화면이 어두워졌다. 5초 뒤에 다음 편이 자동재생 됩니다. 5, 4, 3, 2...
멈춰야 하는데.
근데 범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한 편만 더 보면 되잖아. 20분이 뭐라고.
다음 편이 시작됐다.
코난이 추리를 시작했다. 아, 저 사람이 범인인가? 어느새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범인이 밝혀졌다. 맞았다, 내 예상대로. 괜히 뿌듯했다.
시계를 봤다.
밤 11시.
뭐야, 아직 이른 시간이잖아. 한 편만 더 보자.
그 한 편이 두 편이 됐다. 두 편이 세 편이 됐다. 정신 차리니까 새벽 2시였다. 눈이 뻑뻑하고 허리가 아팠다. 내일 아침에 분명히 후회할 거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마흔이 넘어서 만화에 빠질 줄 몰랐다. 더 이상한 건, 이게 부끄럽기보다 즐거웠다는 거다.
다음 날, 코난이 뭔지 찾아봤다.
1994년에 시작해서 아직도 연재 중이란다. 30년 넘게. 에피소드가 천 편이 넘는다. 극장판만 해도 스물일곱 편.
끝이 안 보인다.
근데 이상하게 그게 좋았다. 볼 게 산더미라는 게. 한동안 심심할 일이 없겠다는 게.
언제부터였을까. 뭔가에 이렇게 빠져본 게.
매일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밥 하고, 일하고, 집 정리하고. 반복. 루틴. 할 일 목록을 체크하듯 하루를 보냈다. 재미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그런 거지, 어른이 되면 다 이렇게 사는 거지, 했다.
근데 그날 밤, 코난 보면서 깨달았다.
내가 한동안 심장이 뛰는 걸 잊고 살았구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못 자본 게 얼마 만인지. 사소한 거다. 그냥 만화일 뿐이다. 근데 그 사소한 게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코난 다 보면 뭘 볼까. 찾아보니 볼 게 너무 많다. 귀멸의 칼날, 하이큐, 슬램덩크, 다이아몬드 에이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게 있었어?
그때는 몰랐다.
그 한 편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일본어를 공부하게 될 줄, 코난 마을을 찾아 톳토리현까지 갈 줄, 일본 축제 무대에 서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코난 한 편이었을 뿐인데.
모.든. 건.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