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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난의 서재 Oct 31. 2024

꿈꿨던 여유, 서랍 속에 잠들다

정말 갖고 싶었는데 막상 가지고 나니 사용하지 않는 물건

서랍 한구석에 조용히 놓여 있는 작은 커피 머신. 그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매끄러운 곡선만 봐도 마음이 설레었다. 매일 아침마다 이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며 삶이 한층 더 풍성해질 거라 믿었다. 따뜻한 커피 향이 온 집 안을 감싸고, 커피 잔을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보며 깊고 여유로운 사색에 잠기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이 작은 기계 하나가 내 아침을 특별한 의식처럼 만들어 줄 것 같았다.

구매 후 첫 날은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 원두를 갈고, 물의 온도와 양을 조절하며 정성껏 커피를 내렸다. 커피가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내게 다가올 풍요로운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아침을 여는 신선한 커피 향과 풍부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질 때면, 마치 내 일상이 고급스러운 카페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바쁜 아침엔 한 잔의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릴 여유가 없었고, 가볍게 캡슐커피로 대체하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오히려 외출이 잦아졌고, 어느새 커피 머신은 서랍 속에 차곡차곡 자리만 차지하게 됐다. 게다가 매번 사용할 때마다 청소와 관리가 필요해지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부담이 되어 갔다.

갖고 싶을 때는 이 커피 머신 하나로 내 일상이 한결 풍성해질 거라 기대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해 주는 건 기계가 아니라 그 커피를 즐길 시간, 그리고 마음속 여유라는 것을. 이 조용히 자리 잡은 커피 머신은 내게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남겨 주었다. 삶을 풍성하게 채우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여유로운 순간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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