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어선 굿즈의 시대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두 번째 영어곡 ‘Butter’ 발표 후 맥도널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출시한 ‘The BTS Meal’의 고객 열기가 뜨겁다. 구성에 햄버거가 없는 세트임에도 국내에서는 단기간에 100만 개 넘게 판매되고 전 세계 50개국에서 팔리며 일부 팬들은 포장지를 재가공해 굿즈를 만드는 데 열 올리고 있다. 이미 셀럽들과의 협업으로 그들의 취향과 입맛을 반영한 메뉴 조합을 해왔던 맥도널드는 작년에는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이 어린 시절 즐겨먹었던 메뉴로 구성한 세트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판매는 미국 내로 한정되었다. 반면 ‘BTS세트’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판매를 하고 있어 맥도널드의 셀럽 시그니처 세트가 한 개 이상의 국가에서 판 것은 이번이 최초가 된다. 또한 광고모델이 아닌 BTS 취향이 반영되도록 세트 구성이 기획되면서 단순 광고모델비가 아닌 수익 쉐어링에 참여했다.
지난 4월 말 CU에서 카스, 테라, 하이네켄 같은 국산과 수입 맥주를 제치고 매출 1위를 한 것은 놀랍게도 ‘곰표 밀맥주’다. 70년 가까운 역사의 대한제분은 앞으로 30년 이상의 지속성을 위해 자사 브랜드 곰표의 신선도를 높이고 MZ세대와 소통하는 일환으로 출시한 협업 제품이 인기를 얻었다. 2017년부터 시작된 곰표 브랜딩은 2018년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포엑스알’과 함께 만든 곰표 티셔츠를 시작으로 곰표 쿠션 파운데이션, 곰표 패딩점퍼, 백팩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작년 5월에는 맥주까지 출시했다.
이런 시장 흐름을 놓칠 리 없는 우리 패션업계도 빠르게 움직였다. 서브웨이와 필라(FILA)는 컬렉션 24종을 선보였다. 서브웨이 로고 칼라와 ‘이탈리안 비엠티’와 ‘에그마요’같이 대표 메뉴를 그래픽으로 활용하되 휠라 고유의 헤리티지 감성을 더해 라인업을 완성했다. 폴햄은 전통 과자인 맛동산과 협력했고 널디(NERDY)는 돼지바와 협업하면서 의류,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과 널디 디자인을 입힌 한정판 돼지바 패키지를 선보였다. 곰표 밀맥주에 이은 BYC는 CU, 오비맥주와 협업해 수제 맥주 ‘백양 BYC 비엔나 라거’를 출시했다. 푸드 패션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패션업계는 현재 가장 힙한 푸드와의 결합에 집중하고 있다.
유동 골뱅이와 굿네이션은 무신사, 삼립 SPC와 하이드아웃은 29CM 그리고 삼양비빔면은 스타일 쉐어와 협업해 굿즈를 출시했는데 레트로 제품에 대한 인기가 커지면서 전통 푸드 회사와 패션회사 결합에 독점 유통사까지 추가되는 것이 하나의 공식이 되어버렸다.
콜라보레이션에서 복고가 이렇게 활발하게 소환된 적이 있었을까. 특히 MZ세대가 주력 소비계층으로 급부상하면서 레트로(Retro)를 인스타워시(instaworthy) 또는 인스타그래머블 (instagrammable)로 소환하고 업계가 편승하면서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협업 제품과 굿즈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의 콜라보레이션은 생경하고 의외성 있는 접근으로 아이덴티티 강화보다는 순간의 주목도만을 높이는데 주력하면서 단기적인 세일즈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콜라보레이션은 전략적으로 잘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브랜드를 일상에서 경험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잘 아는 대로 브랜딩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던킨도너츠는 덴마크 아웃도어 브랜드인 노르디스크(nordisk)와의 협업으로 캠핑 폴더 박스를 제시했다. 캠핑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점에 고객 라이프스타일에 함께하고 캠핑에 감성이 제시하였다. 구찌(Gucci)는 기존 럭셔리 브랜드들과는 상이한 Young & Hip 럭셔리 포지셔닝을 추구하면서 협업을 적극 활용하였다. 아트스쿨 예술가(Royal College of Art), 일러스트레이터(Taychamaythakool), SNS 아티스트(Helen Downie), 스트릿 패션 디자이너(Dapper Dan) 등과의 협력으로 기획된 라인업을 제시하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포지셔닝에 실체를 만들어갔다.
주목을 끈 ‘곰표’ 브랜드 역시 무분별한 협업을 방지하기 위해 푸드의 경우 밀가루로 제조할 수 있는 회사와의 협력으로 제한하고 타 분야로 확장하더라도 밀가루의 특성인 ‘하얀색’이 주는 속성을 고려했다. 무차별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고객 반감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였지만 조금 더 생각을 갖춘 고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곰표가 가진 밀가루나 하얀색은 제분업을 하는 회사의 공통 속성일 뿐 곰표만의 차별점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분업이 갖는 속성만으로 협업에 그치면서 곰표 말고는 아무런 연상이 안 남게 되었다. 또한 콜라보레이션은 협업하는 주체 모두에게 시너지가 있어야 했지만 곰표 맥주를 생산하는 회사인 세븐브로이는 오히려 판매점인 CU뒤에 숨어있게 되었다. 물론 서울우유 바디워시나 모나미 매직 스파클링처럼 고객 오인지에서 오는 위험까지 감수하게 하지 않은 건 다행이다.
몇 해전 펩시는 일회성 협업에서 벗어나 아예 패션몰을 열며 전통 음료회사의 틀을 깨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었다. 당시 펩시 디자인 총괄은 ‘친숙한 브랜드가 우리 라이프 스타일과 결합했을 때 부가가치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플랫폼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콜라보레이션은 브랜드 강점을 더욱 쉽게 이해시키고 경험하는 공간을 넓히게 되면서 포지셔닝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지속적으로 경험시키면서 잠깐의 주목만을 얻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브랜드가 갖는 일상 점유의 한계를 넓히고 변하는 속도에 대응하면서 협력하는 브랜드의 레버리지로 브랜드 자산을 높여 고객 팬덤을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콜라보레이션이다.
생각을 갖춘 콜라보레이션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