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세상의 시계와 반대로 걷는 시간.
모두가 하루의 시작을 향해 나설 때,
나는 밤의 끝자락에서 홀로 집으로 향한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밤새 뜨거웠던 노동의
열기를 식히고, 이 역행하는 길 위에서
비로소 고독한 해방감을 느낀다.
동쪽 하늘은 막 태어나려는 일출의 옅은
여명으로 물들기 시작했지만, 짙고 무거운
먹구름이 그 희미한 희망을 집어삼키듯 덮고 있다.
마치 다가올 새해의 기대와 동시에, 지난해의
묵직한 고민과 미련이 교차하는 연말의 심경처럼.
그 순간, 새벽의 적막한 도로에서
붉은 신호등과 마주했다.
정지선 앞에 멈춰 선 순간.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일시 정지되고,
오직 저 붉은 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만이 어둠이 가시지 않는 길을 지배한다.
저 붉은빛은 단순한 정지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길,
잠시 멈춰 서서 내 삶을 돌아보라는 강제된 쉼표와 같다.
우리의 삶은 왜 이토록 잦은
정지신호를 맞닥트려야 할까.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밖의 풍경과 내가 지나온 궤적이 선명해지며,
잊고 지낸 나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만감이 교차하는 연말, 이 붉은 멈춤은
과거를 응시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깊은
성찰의 순간이다.
먹구름 아래에서도 빛을 준비하는 여명처럼,
이 찰나의 멈춤이야말로 내일은 위한 가장 깊은
숨 고르기일 것이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나는 붉은빛에 투영된
한 해의 그림자를 조용히 응시한다.
그리고 다시 출발선에 설 준비를 한다.
멈춰야 비로소 나아갈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