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지방의 한 직장에서 10년간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느 순간부터
생애 마지막이 될 퇴사를 꿈꾸어왔다.
적지 않은 세월을 주말부부가 되어 장년의 나이가 넘어가도록 한 직장의 사무실을
지키고 있자니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버티고 참아내려 애쓸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에 이기는 싸움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의 퇴직은 현실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퇴직 후의 일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달려온 직장생활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팔자 좋게 보낸 시간들.
그 알량한 퇴직금의 잔고도 어느덧 바닥을 찍어 갈 즈음,
나는 뒤늦게 구직활동에 뛰어들었다.
핸드폰에 구직 관련 앱을 깔아 두고 부지런히 문자지원과 온라인지원, 취업박람회 등에
참여하며 적극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직활동으로 돌아온 건 참담한 현실, 나이의 굴레였다.
그건 또한 이력서의 그늘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구청의 취업알선프로그램을 통해서 관내 모기업의
구인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나이에 비하면 아직도 건강한 신체임을 대면을 통해 확인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관내에 있는 대형 물류센터로부터 경비용역을 체결한 알만한 경비회사가 참여하였다.
물류센터의 시설이 확장되면서 한꺼번에 많은 인원을 충원하는 것이었다.
특히, 직접구인 방식이어서 구직 접수와 동시에 면접으로 이어지다 보니
합격여부가 당일에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력서를 준비하고 수많은 참석자들과 함께 순번대로 면접을 치렀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행사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면접관으로부터
출근 날짜와 몇 가지 준비물을 안내받았다.
걷는 동안 합격의 기쁨과 함께 생소한 직업에 대한 조바심이 뒤섞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졸지에 보안대원이 되었다.
아직 내 인생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