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인생은 알 수가 없다
현장이 돌아가는 시간.
아니다.
현장은 24시간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그보다는,
나의 야간근무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주간에 미처 끄지 못한 대형 선풍기들의
지친 소음들이 웅, 웅 거리는 현장.
불볕더위의 위세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오후 5시.
나의 근무는 시작이 되었다.
아직은 야간 근로자들이 출근하지 않은 시간.
건물의 끝에서 끝, 높은 천장 아래에는
수많은 상품들이 파렛트 위에서
출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전쟁 같은 물류센터의 일이
나의 검색구역을 통과함과 동시에
시작되는 순간이다.
무더위를 대처하기 위한 근로자들의
복장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현재는 하절기 복장규정에 따라서
근로자들의 출근을 돕고 있다..
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 반바지 착용이
금지되어 있지만 잠시만 움직여도 땀이 흥건해지는
상황에서 온열질환 같은 건강이상이 생길 수 있어
사용자 측에서 규칙의 일부를 개선한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반바지 같은 경우에는
무릎 아래 7부 선까지로 한정하였다.
또한 휴대용 손풍기와 보냉병을 추가 허용하였다.
그 밖에 사업주가 제공하는 생수와 아이스넥 밴드 등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몇몇 소품들이 추가되고 있다.
출근 전 차량에 찍힌 외부온도는 3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불볕더위 속 현장은 외부 유입공기로 내부를
식힐 수 없는 구조이기에 현장 내에서 자체 실링팬과
대형 선풍기를 돌려서 내부의 공기를 최대한 식혀주어야 한다.
야간 근로자들이 입실을 하고 30분 정도
지나니 현장은 본격적으로 분업화된 공정들이 돌아가며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출입구 검색대에서 조금의 여유를 찾았다.
검색대 테이블에는 작은 선풍기 한 대가 쉼 없이
돌고 있지만 현장의 열기를 막아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위와의 싸움. 이제부터 시작이다.
천정의 대형 실링팬은 무심히 돌아가고
근로자들이 수시로 입실과 퇴실을 반복한다.
시간은 흐르고 내 몸은 땀으로 젖어들었다.
그때였다.
앉아 있던 의자 뒤쪽에서 사원 한 명이 조용히 나를 부른다.
뒤돌아보니 작은 체구의 여성사원이 다가와 종이컵에
이온음료를 한 잔 따라준다.
작은 얼굴,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기도 하였지만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불쑥 내미는 여성사원은 분명 오늘의 천사였다.
적지 않은 시간, 현장에서 근무를 하면서 모처럼
받아보는 선의와 그 미소에 나는 반해버렸다.
그 사원은 그 이후에도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이온음료를 종이컵에 담아 전달하는 중이었다.
이 더위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닐 텐데...
일하는 내내 그 미소와, 이마의 땀방울이
잊히지 않는 하루다.
감사하다.
무더위에 삶을 위해 뛰어든 그들이 버텨내는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땀방울이 묻고, 먼지가 피어오르는
순간순간이 나에게는 또 다른 삶의 의미이며
나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다.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나는 아직 내 인생을 속단할 수 없다.
현역으로서의 자부심과, 일선에서 쌓이는
경험과 지혜로 내 마음의 근육이 쑥쑥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내 인생은
.....
진행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