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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연 Feb 21. 2022

[영국워홀] 8. 내가 커피를 만든다고?

카페네로 적응기 ①

카페네로 트레이닝 센터. 여기서 이틀간 교육을 받는다.

카페네로 바리스타 면접에서 합격하고 다음 주, 교육이 시작됐다. 교육 절차는 먼저 별도로 있는 트레이닝 센터에서 2일간 교육 후, 근무할 매장에서 전담직원과 일대일로 2일간 교육을 받고, 근무를 시작하는 구조였다. 


트레이닝 센터에서의 교육(induction)은 재밌었다. 나 말고도 약 10명 내외의 교육생들이 있어서, 함께 교육을 들었다. 런던 내 다른 카페네로에서 근무하게 될 직원들이었다. 카페네로의 역사 등 기본적인 회사에 대한 소개와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웠다. 커피머신에서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을 만들고 강사에게 체크받는 걸 반복했다. 정신은 없었지만, 마치 대학교에 다시 온 듯한 기분에 재밌었다.

내가 처음 만든 카페라떼. 


하지만 매장에서 교육과 근무를 시작하면서, 나는 멘붕에 빠졌다. 하루하루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다. 동료들이 영어로 하는 설명을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2, 3번 반복하게 만들고, 그래도 못 알아듣고 사고 치고 다녔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있다. 근무시간이 끝나고 매니저가 나에게 'You can change now.'라고 했다. change를 '바꾸다'라는 뜻으로만 알고 있던 나는 혼돈에 빠졌다. 뭘 바꾸라는 걸까.. 일단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으며 무슨 말인지 생각했다. 내가 못 알아들었다는 걸 눈치챈 매니저는 부매니저를 보내 다시 한번 알려줬다. 못 알아들으니까 손으로 매장 뒤 사무공간을 가리키고 옷을 바꿔 입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제야 옷을 갈아입으라는 뜻이었다는 걸 이해하고 퇴근할 수 있었다. change가 '옷을 갈아입다'라는 뜻이 있다는 걸 이때 배웠다.


모든 일에 위와 같은 일이 반복됐다. 직원들이 알려주고, 내가 못 알아듣고, 다시 한번 천천히 말로 또는 안되면 손짓으로 알려줬다. 내가 도움은커녕 동료들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민폐만 끼치는 거 같아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매장 동료들은 착했다. 내가 계속 못 알아듣고 헛소리하고 여러 번 반복해서 물어봐도 화내지 않고 계속 설명해주고, 너무 긴장한 것 같으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본인들도 처음에 실수 많이 했다고 하면서. 


하루하루 근무가 끝날 때마다 너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이러다 잘리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 싶어서 카페네로에서 일했던 다른 워홀러(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블로그를 다 뒤져서 후기를 읽어 봤으나, 나처럼 힘들었다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카페네로는 바리스타가 한 손님의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고, 계산까지 다 하기 때문에,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기억해서 만들고 마지막에 계산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최소한 2명의 고객을 동시에 서빙해야 했다. 즉, 최소한 2명의 음료를 외워야 한다는 뜻이다. 주문한 음료를 외우는 것도 어려운 데, 매장에서 마시는지(drink in), 테이크 아웃(take away)인지, 휘핑크림이나 초콜릿 가루를 원하는지 아닌지도 외워야 했다. 우유도 저지방 우유(skim milk)를 원하는 사람, 두유(soy milk)를 원하는 사람 등 주문이 다양했다. 이 모든 걸 외우면서 동시에 커피도 만들고 계산도 해야 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돌아서면 주문을 잊어버렸다. 매일 실수 연발인데, 그중 가장 황당했던 실수는 녹차(green tea)에 우유를 넣었던 일이었다… 녹차 티백에 우유를 부어줬다. 이건 너무 황당해서 손님도 나도 동료들도 모두 웃고 해프닝으로 끝났다.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사고를 칠 때마다 ‘내가 이 영어실력으로 커피숍에서 일하려고 생각한 게 잘못인가? 한식당이나 호텔 청소부같이 영어가 필요 없는 일을 해야 했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매일 아침, 동료들에게 민폐 그만 끼치고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가 또 지기는 싫어서, 꾹 다시 한번 참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영어실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페네로 워크북을 읽고 또 읽고, 각 메뉴를 필사하고 발음을 찾아들으며 외웠다.

카메라를 가져가서 계산기(till)의 화면과, 페스츄리, 케이크, 머핀, 음료수 등을 찍어서 집에서 외우기 시작했다. 빵 이름 자체를 못 알아듣고 있어서, 각 빵 이름을 사전에서 찾아서 들어보고 없으면 유튜브 베이킹 영상을 찾아서 들어봤다. 또 카페네로 교육 때 받았던 카페네로 워크북을 영어 독해 문제 풀 듯이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모르는 단어는 다 찾아봤다. 그랬더니 빵 이름은 조금 알아듣기 시작했다.


카페네로 바리스타 일이 생각보다 팀 워크가 중요한 일이어서, 동료들과 의사소통이 돼야 하는데, 영어가 단기간에 느는 게 아니니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 영어를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워홀러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일을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우연히 다른 카페네로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분을 만났는데, 너무 반가워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고 했다. 제발 그러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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