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낡은 단독주택들과 그 옆에 자그마한 텃밭은 녀석의 주 활동 영역이었다. 텃밭을 거닐다 작은 풀잎 사이에 몸을 숨기기를 좋아했고, 또 내리쬐는 햇살을 즐기는 나름 낭만을 아는 녀석이었다.
- 금동아~
- 금동아~
동네 순찰하다 드디어 앞집 지붕 위에서 발견된 금동이
오늘 함께 화성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걱정하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앞집 지붕 위에서 녀석은 발견되었다.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아내와 마주했다. '고양이 간식계의 마약'이라는 '츄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녀석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내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목욕과 함께 차에 올라 7년간의 하이브리드 고양이 즉, 집냥이인지 길냥이인지 혹은 둘 다인지 모를 생활을 청산하는 시작이 되었다.
십여 년 전 어느 성탄절 추위가 몰아치던 도심에서 녀석은 아내에게 안겨 우리 집으로 왔다.
- 두어 달 밖에 안돼 보이는 애기가 '야옹'하고 쪼르르 내 품에 안겨서 할 수 없이 데리고 왔어...
초등학생이던 아들 녀석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고, 원래 동물을 좋아하던 아내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녀석은 우리 가족이 되었고, 금색과 동색이 함께 있다고 아들은 '금동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와 엄마가 합심해서 지은 금동이 집
강아지처럼 요란스럽지도 않고 대소변도 스스로 잘 가리는 녀석은 식구가 되자마자 이쁨을 독차지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죄다 피부병에 걸렸고 피부과 의사선생으로부터 고양이를 치우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인 녀석을 내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재롱동이 새끼 고양이
여차저차 피부병은 치료가 되었다. 그 후 금동이를 귀여워함은 온 가족의 것이었지만, 녀석의 화장실 청소는 순전히 아빠 차지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수시로 헤드폰이 소리가 나지 않거나, 컴퓨터 마우스가 움직이지 않는 등 녀석의 이빨에 이런저런 선들이 잘려 나가서 똑같은 제품을 몇 번이나 다시 구입해 와야 했다. 돈이 좀 들었지만 녀석이 주는 은근한 매력의 대가로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또 넓지 않은 집안구석구석을 녀석의 금동 색 털이 차지하면서 이 집이 '녀석의 집' 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딱히 원인을 알 수 없는 그런...
그게 가족이 된 금동이의 털로 인한 문제 인지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더 이상 금동이와 함께 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해 버렸다. 그렇다고 내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5년이나 함께 살던 녀석이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구의 마당이 있는 아들의 외갓집.
데려다 놓으면 돌봐 줄 사람도 있고, 수시로 가서 만날 수도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생각되었다.
아들의 이모는 생각지도 않던 고양이에 당혹해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동이'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듯했다. 처음엔 마당에 긴 줄로 나름 이동이 원활하도록 해 주었으나 목걸이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하여 '자유를 주는 모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금동이를 대구 처가의 마당에 보낸 첫 날
금동이는 사라진 채 위치추적기가 옆집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 때는 꼬박꼬박 집으로 돌아왔고, 잠을 잘때는 신발장 안에 마련해 준 전기장판이 깔린 보금자리에서 잠을 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고양이가 되었다. 또 처음 가서는 제 밥그릇을 다른 길냥이가 와서 다 먹어도 어찌하지 못하던 녀석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길냥이들이 근처에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영역을 확실히 정리한 듯 보였다. 먹이와 잠자리 그리고 보살핌이 확실히 보장되면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마치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집 고양이면서 길냥이이기도 한... 그런 고양이의 행복한 묘생이 펼쳐졌다.
밥을 주로 챙겨 주시던,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와 닭장 앞에 앉아서
그렇게 행복만 가득하던 금동이의 묘생에서 올해 여름은 큰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첫 번째는 녀석이 약 3주간 사라졌던 사건이다.
늘 그렇듯 동네 순찰을 나간 금동이는 식사때가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아내에 이어 금동이의 엄마가 된 처형은 몸살이 날 정도로 앓아눕게 되었고, 새벽마다 밥을 챙겨주시던 장인과 장모도 가족을 잃은 상심에 잠겨 다시 금동이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비록 보내긴 하였지만 나와 아내 그리고 다 커버린 아들도 슬픔에 잠겼다.
- 분명 어디 가서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했거나 차에 치인것이 분명한 것 같아. ㅠㅠ
그렇게 포기했던 3주가 지난 어느 새벽.
금동이는 '할아버지 밥 주세요' 하는 듯 가냘픈 냐옹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초췌한 몰골로 나타났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밥을 먹고는 한참을 보금자리에서 잠을 잤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구에 가서 '금동아 너 어디를 다녀왔니?' 하고 아무리 물어도 녀석은 '냐옹' 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멀리 나갔다가 길을 잃은 것인지, 누군가에게 잡혔다가 탈출을 했는지...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두 번째는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의 출입을 금동이가 허용한 일이었다. 훗날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 자그마한 '묵인'.
하얗고 까만 무늬가 있고 금동이보다 훨씬 발랄한 녀석이 금동이는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새끼 고양이는 금동이의 밥그릇을 차지하고 있었고, 금동이는 녀석이 배를 채우도록 비켜나 있었다. 그렇게 거리를 좁혀가던 새끼 고양이는 '꼬맹이'라는 이름도 얻고 금동이의 집사들로부터도 가족으로 인정을 받는 듯하였다.
새로 나타난 새끼 고양이 등쌀에 힘겨워 하는 금동이
그런데...!
처음에는 금동이가 '꼬맹이'를 용인하는 모양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꼬맹이가 금동이의 밥을 죄다 뺏어 먹어버렸다. 게다가 사람으로 치면 65세 정도에 해당하는 만 12세를 넘긴 금동이에게 공격인지 놀이인지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하는 것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귀찮아하던 금동이는 이내 힘들어하는 듯 보였고 얼마 후에는 금동이의 보금자리와 집 앞마당이 '꼬맹이' 차지가 되어버렸다. 금동이는 '밥시간에만 집에 오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금동이 엄마 처형의 전언이 우리 집으로 날아들었다. 게다가 '다리를 다쳤는지 절룩이며 걷더라'는 말까지...
휴일이 되어 쉬는 내 옆에 슬며시 다가온 아내는
'자기야~' 하며 코멩멩이 소리를 내었다. '우리 금동이 데려 오자. 꼬맹이한테 치여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대'
언제 왔는지 제 방에 있던 아들 녀석도 옆에 달라붙어 '아빠~~ 아' 눈빛 공격을 퍼부었다.
- 아... 참 내. 금동이 데려와서 괜찮겠어?
- 이제 몸도 좋아지고 알레르기 치료도 했으니 괜찮아요!
아파트 단지 앞 새끼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고 싶어 하는 것도 몸이 좋지 않던 기억으로 '절대 안 된다'라고 손사래를 쳤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TV 동물농장>의 구조팀처럼 결연한(?) 마음 안고 대구로 향했다. 함께 했던 5년 그리고 떨어져 있던 7년 다시 금동이가 우리 집으로 온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냉장고 위에 올라앉아 우리를 내려다보곤 했던, 더러는 품에 안겨 그르렁그르렁 하던 낭만과 거만이 함께 했던 우리 가족 고양이 '금동이'
냉장고 위 거만 고양이
다섯 시간이나 걸려 차를 타고 우리 집(그동안이사를 해서 집은 바뀌었지만)으로 금동이는 다시 돌아왔다.
처음에는 낯섦에 구석에 마련해둔 상자 속에 들어가 있었고 식사도 하지 않아 애를 태우더니 이젠 집안 구석구석이 제 영역임을 보여주고 있다.
냉장고에 붙여 준 고양이 풀 뜯어 먹는 모습
금동이는 무슨 생각할까?
혹시 다음날 옆집 아줌마 고양이라도 만나기로 했는데 납치되어 온 것은 아닐까? 추운 겨울 꼬맹이에게 치여 전기장판이 깔린 제 보금자리에서 잠을 자지 못해도 자유로운 집 옆 텃밭 산책이 그리울까?
알 수가 없다.
금동이에게 물어보고 행동할 수만 있었다면 의견을 물었겠지만, 이젠 노년에 접어든 또하나의 식구 금동이의 말년을 우리가 지켜 주겠노라고 마음대로 한 행동. 앞으로 얼마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안하게 함께 지내기를... 그리고 마지막을 지켜 주겠노라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