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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빛 Oct 08. 2023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지나간 어느 프로젝트 이야기

2021년 분당에서 수행 PM을 맡아 진행하던 H사 프로젝트가 점점 힘들어지고 미궁으로 빠지자, 절친 같던 동료는 쉽게 남이 되었다. 근처에서 혼자 사는 그에게 많은 날들을 법카로 저녁 사 먹여 퇴근시키는 등 (비록 대가를 바라고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공을 들였는데 정작 힘들어지자 그 힘듦을 1/N로 나누는 게 아니라 벽을 쳐 버렸다.


어느 날 식사 후에, 자살한 개발자가 발생한 분당 네이버 옆을 그와 함께 걸을 땐 '죽긴 왜 죽나. 도와달라 하지 않고!'라고 힘주어 말하던 그였다. 그런 막상 팀과 내가 정신없을 때에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필수 사항만 처리하고 유튜브를 보는 등 내가 '도와달라 내미는 손'잡아주지 않았다.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힘겨울 때에는

손을 내밀라고 말한다

벅찰 때에는

도움을 청하라고 말한다

죽고 싶을 때에는

말을 하지 왜 죽느냐고 말한다


씨팔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손을 내밀면

도움을 청하면

말을 하면


저마다의 이유로

각자 나름의 사정으로

외면할 거면

모른 채 할 거면서


씨팔

말이나 말던지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2021.08.21




프로젝트 오픈날에 그가 했어야 할 어찌 보면 사소한 일(등록된 결과의 중복방지처리)을 하지 않아 고객의 항의를 받게 되었다.


"그거(중복방지) 하기로 했어요?"

하며 다가오는 그를 보자 극한으로 몰려왔던 스트레스와 내 안에 쌓였던 그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나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아... 씨팔"

하고 내뱉어버렸다. 그는 말없이 돌아섰고, 그날 퇴근하지 않은 채 새벽 세시에 수정본을 서버에 반영했다.

'할 수 있는 거면서...@'


그 후 그에게 서너 차례 사과를 거듭하며 화해를 시도했지만, 그는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와의 앙금은 영영 해소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향해 떠나갔다. 그와 두어 개 프로젝트를 더 수행한 회사는 '실력은 있으나 까칠한 성격인 그' 다시 뽑지 않겠다고 내게 알려왔다.(해고니 이런 개념은 아니고.. 아시는 분은 다 알겠지만. ^^  다른 소속으로 일을 구해 잘해 갈 것이다)


살면서 도움 줄 것도 아니면서 세상사에 이러쿵저러쿵 개똥철학을 내뱉는 경우를 몇 번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막상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급박한 상황에서는 외면이라는 선택을 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전해질 약간의 손해, 자신에게 전가될 약간의 책임을 나눠지길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 나눠지지 않으면 누군가는 큰 짐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를 모를 리 없건만.


이젠 두 해나 지나버려 아련해졌지만...

그 씁쓸했던 기억, 서글펐던 시간을 떠 올려보며.


2023년 10월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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