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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국가 ④

국부론,자본론,그리고 21세기 자본: 자본주의를 관통한 사상의 지도

by 콩코드


6장. 시장과 국가: 규율, 방임, 조절

자유방임(스미스), 국가와 혁명(마르크스), 조세와 재분배(피케티)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은 자원 배분의 중심 기제이며, 국가는 이를 둘러싼 질서를 유지하거나 개입하는 주체다. 스미스, 마르크스, 피케티는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각기 다른 시각에서 정의하며, 자본의 작동 방식과 그로 인한 사회적 결과를 해석한다.


이 장에서는 세 사상가의 관점을

– 규율로서의 시장(스미스),

– 혁명의 주체로서의 국가(마르크스),

– 조절 메커니즘으로서의 재분배(피케티)라는 키워드로 비교해 본다.


1. 아담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과 시장의 자율성

스미스에게 시장은 인위적인 통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질서다. 인간의 이기심은 경쟁을 유도하고, 그 경쟁은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논리는 그의 대표적인 개념인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집약된다.


자유방임(Laissez-faire): 국가는 안보, 치안, 공공시설 등 최소한의 역할에 머물러야 하며,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오히려 경제의 왜곡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도덕 감정 위의 시장 질서: 스미스는 인간을 단순한 계산적 존재가 아닌, 동정심과 도덕 감정을 지닌 존재로 전제했다. 시장은 탐욕만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과 규범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이상적 전제를 담고 있다.

분업과 성장의 선순환: 그는 분업이 생산성을 높이고, 시장의 자율적 작동이 부의 축적과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스미스의 국가관은 흔히 ‘최소 국가’로 요약되지만, 이는 무조건적인 방임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자율 질서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다.


2. 칼 마르크스: 누구의 국가인가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결코 중립적인 조정자가 아니다. 그는 국가를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이자, 지배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장치로 보았다.


계급 지배의 수단: 자본주의 국가의 법과 제도는 노동계급을 통제하고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지배 계급의 경제적 이해를 제도화한 정치적 기구에 불과하다.

혁명과 국가의 소멸: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이 국가를 전복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계급이 폐지된 사회에서 국가 자체도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국가는 일시적으로 필요한 억압 장치일 뿐, 영속적인 존재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폭력성: 그는 경찰, 군대, 법률, 교육 등 국가의 모든 장치가 자본의 축적을 정당화하고 노동자의 순응을 강요하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마르크스는 시장의 자율성에 신뢰를 두지 않았으며, 국가는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억압적 계급기구로 규정된다. 따라서 그의 해법은 개혁이 아니라, 국가 자체의 해체를 포함한 혁명이다.


3. 토마 피케티: 국가의 귀환 – 조세, 교육, 재분배

피케티는 시장의 효율성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시장만으로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고 보고, 적극적인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해법은 혁명도, 방임도 아닌, 정교한 제도 설계와 조정이다.


누진적 조세 체계: 피케티는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초과하는 구조에서, 누진소득세·부유세·상속세 등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핵심 도구라고 본다.

공공 교육과 기회 평등: 그는 조세 정책만큼이나 교육에 대한 공공 투자를 중시한다. 국가는 시민 개개인의 역량 형성과 평등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제 협력과 조세 정의: 자본의 국경 없는 이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피케티는 국제적 조세 협약, 데이터 공유, 글로벌 조세 감시 체제의 구축을 주장한다.


피케티의 국가관은 복지국가의 전통을 계승하며, 시장을 보완하고 민주주의를 지속시키는 제도적 조정자로서의 국가를 지향한다. 이는 마르크스의 ‘국가 해체론’과 스미스의 ‘자유방임론’ 사이에서, 실용적 개입을 모색하는 제3의 길이다.


5. 오늘날의 국가: 무능한 중재자인가, 유일한 대안인가

오늘날 우리는 국가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글로벌 자본의 유동성과 기술 발전은 국가의 개입 능력을 약화시키는 반면, 팬데믹, 기후 위기, 빈부격차의 확대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다시금 요구하고 있다. 이 모순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세 사상가의 시선에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스미스가 말한 시장에 대한 신뢰는 디지털 경제 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 중이다. 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과 국가의 결탁 구조는 오늘날의 불평등 현실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피케티가 제안한 데이터 기반의 조세 정의와 제도 개입은 가장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국가는 다시 질문받고 있다.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시장의 위기 앞에서 어떤 국가를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는가?


7장. 불평등과 분배: 윤리인가, 구조인가, 통계인가

각 이론의 불평등 인식 차이

불평등은 자본주의를 성찰할 때 피할 수 없는 핵심 질문이다. 자산과 소득의 격차, 기회의 불균형, 사회 이동성의 제약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체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징후다. 스미스, 마르크스, 피케티는 각각의 시대와 관점에서 이 불균형을 해석하며, 서로 다른 대응을 제시한다.


이 장은 그들의 사유를 따라가며, “불평등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접근하고자 한다.


1. 아담 스미스: 덕의 결핍으로서의 불평등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불평등을 직접적으로 논하지 않지만, 『도덕감정론』과 함께 읽으면 그의 우려는 분명해진다.


동정과 사회적 조화: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존재이며, 이 동정심이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도 도덕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과시 소비와 도덕의 붕괴: 상류층의 사치와 허영은 하층민의 자존감을 해치고, 사회적 불안을 심화시킨다.

공정한 교환의 시장: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누구나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심각한 불평등은 시장 실패와 도덕적 타락의 결과다.


스미스에게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산물이 아니라, 도덕적 감정이 약화되고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예외적 현상이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구조 개혁보다는 도덕 감정의 회복과 공정한 경쟁의 회복에 가까웠다.


2. 칼 마르크스: 착취의 결과로써의 구조적 불평등

마르크스에게 불평등은 도덕적 결핍이 아닌,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비롯된 구조적 착취의 산물이다.


잉여가치의 착취: 노동자는 자신이 창출한 가치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그 차액은 자본가의 이윤이 되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자산의 집중과 계급 고착: 자본을 소유한 소수는 자산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노동자는 그 구조에서 배제되어 계급 이동이 봉쇄된다.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교육, 종교, 언론 등은 이 구조를 정당화하며 불평등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마르크스는 이 같은 불평등이 체제의 결함이 아니라 작동 조건임을 지적하며, 개혁이 아닌 체제의 전복만이 이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그의 대안은 생산수단의 공유와 계급 폐지를 통해 실현되는 근본적 평등이다.


3. 토마 피케티: 측정 가능한 불평등, 조정 가능한 분배

피케티에게 불평등은 계급투쟁이나 도덕 문제라기보다는,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을 상회하는 구조적 추세에서 기인하는 통계적 현실이다.


r > g 법칙: 자본이 노동보다 빠르게 이윤을 낳는 구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 보유층의 부를 집중시키고 사회적 격차를 확대시킨다.

불평등의 가시화: 그는 수백 년간의 소득·자산 데이터를 분석해 불평등의 구체적 실태를 수치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개입의 정당성을 제시한다.

조세와 제도 개입: 불평등 해소는 체제 전복이 아닌 누진세, 상속세, 교육 투자와 같은 제도 조정을 통해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정치경제적 조율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간주하며, 국가의 역할과 국제적 연대를 그 핵심 해법으로 제시한다.


4. 불평등을 보는 세 가지 렌즈

스미스: 불평등의 원인(시장 실패, 도덕적 무절제), 해석방식(윤리적 문제), 해법(시장 내 도덕성 회복, 교육)

마르크스: 불평등의 원인(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 해석방식(구조적 억압), 해법(생산수단의 사회화, 계급 철폐)

피케티: 불평등의 원인(자본 수익률과 성장률의 불균형), 해석방식(계량적 추세), 해법(누진세, 재분배 정책, 공공 교육)


스미스는 도덕과 공정성의 결핍에서, 마르크스는 생산 구조의 폭력성에서, 피케티는 수치의 추세 속에서 불평등을 포착한다. 이는 불평등이 하나의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해석의 틀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5. 오늘날의 불평등: 어떤 언어로 설명할 것인가

21세기의 불평등은 세습 자산의 재생산, 플랫폼 경제의 집중, 교육 격차와 사회 이동성 정체라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이름은 ‘상속자’, ‘테크 엘리트’, ‘부동산 자산가’ 등 현대적 형태로 바뀌었다. 스미스가 경계한 도덕적 타락은 인플루언서 문화와 과시적 소비 속에서 다시 나타난다. 피케티는 이러한 현상들을 숫자와 곡선, 계량화된 그래프로 명확히 보여준다.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정치, 제도, 교육, 윤리, 그리고 삶의 기회와 존엄성을 포괄하는 총체적 문제이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언어로 설명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법을 상상하게 된다.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 부족’인가, ‘구조적 억압’인가, 아니면 ‘정책 실패’인가?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관점으로 이 문제를 다시 바라볼 것인가?


세 사상가는 서로 다른 언어와 틀을 제공하지만, 한결같이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의지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8장. 역사의 운동: 진보적 시장, 모순적 자본, 순환과 반복

진화론, 변증법, 장기 데이터에 기반한 역사 해석

경제 이론은 단순히 현재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깊은 차원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며 결국 소멸하는지를 탐구한다. 스미스, 마르크스, 피케티는 모두 자본주의를 정적인 시스템으로 보지 않았다. 각각의 사유를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궤적과 그 변화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이 장에서는 이 세 사상가의 역사 인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창을 열어본다.


1. 스미스: 시장의 진보 – 문명의 도약을 이끄는 힘

스미스에게 역사는 진보의 서사다. 사회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교환의 욕구와 노동 분업의 확대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


4단계 이론: 수렵 → 유목 → 농경 → 상업 사회로의 발전은 인간의 생산력과 분업 능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시장과 문명: 상업 사회는 사치와 부를 낳지만, 동시에 교육, 예술, 윤리의 성장도 촉진한다. 시장은 문명을 이끄는 도구이며, 자유로운 거래는 인간성을 고양시킨다.

역사의 낙관성: 외부 충격(전쟁, 폭정 등)을 제외하면 역사는 점진적 발전의 궤도를 따라간다는 낙관적 전망을 가졌다.


스미스의 시간 개념은 직선적이고 비순환적이며, 자본주의는 인류 문명의 가장 진보된 형태로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 번영의 조화를 실현하는 체제로 이해된다.


2. 마르크스: 자본의 모순 – 변증법적 운동과 체제 전환

마르크스에게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며, 진보는 단선적 발전이 아니라 내재한 모순을 통해 비약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역사유물론: 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관계가 사회의 근본 구조를 결정하고, 새로운 생산력과 기존 생산관계의 충돌이 역사적 전환점을 만든다.

변증법: 자본주의는 잉여가치 착취, 자본 집중, 주기적 경제 공황 등 스스로 내포한 모순으로 인해 결국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조건을 쌓아가며, 이는 사회주의로의 불가피한 이행을 예고한다.

계급투쟁의 역사관: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 → 사회주의로 이어지는 연속적 전환은 필연적 발전이며, 인간 해방은 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마르크스의 시간 개념은 내적 필연성을 지닌 변증법적 운동이다. 자본주의는 종착점이 아니며, 그 모순이 역사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3. 피케티: 순환과 반복 – 데이터에 나타난 불평등의 귀환

피케티는 역사적 이론보다는 방대한 장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의 궤적을 통계적으로 해석한다.


r > g 법칙과 순환적 불평등: 자본 수익률(r)이 경제 성장률(g) 보다 높을 때, 부의 집중은 필연적으로 심화된다. 이는 산업혁명 이전의 세습귀족 사회와 유사한 불평등 구조가 현대 자본주의에서 재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세기의 예외적 완화: 두 차례 세계대전, 대공황, 복지국가의 출현 등은 일시적으로 불평등을 완화했으나, 이후 자본 우위 구조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

역사의 반복성: 피케티는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을 갖고 있어, 이를 제어하지 않으면 과거 불평등의 반복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 경고한다.


피케티의 역사관은 직선적 진보나 혁명적 단절이 아닌, 구조적 불균형의 순환과 반복이다. 그는 급진적 단절 대신, 정밀한 제도적 조정을 통해 불평등의 순환 고리를 끊는 해법을 제안한다.


4. 역사관 비교

스미스: 역사 전개 방식(점진적 진화), 자본주의의 위치(문명의 정점), 역사적 낙관/비관(낙관주의), 해결 전망(시장의 자유와 도덕)

마르크스: 역사 전개 방식(변증법적 단절), 자본주의의 위치(역사적 중간 단계), 역사적 낙관/비관(필연적 위기), 해결 전망(혁명과 체제 전환)

피케티: 역사 전개 방식(장기적 순환), 자본주의의 위치(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반복 구조), 역사적 낙관/비관(조건부 경고), 해결 전망(제도적 조정과 재분배)


5. 자본주의 이후의 시간: 상상 가능한 미래는 무엇인가

스미스는 자유로운 교환과 시장의 확대를 통해 점진적이고 평화로운 진보를 낙관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내부 모순이 쌓여 필연적으로 체제 붕괴와 해방으로의 혁명적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보았다. 피케티는 과거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제도적 개혁과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 혁신, 기후 위기, 세습적 자산 집중, 민주주의 불안정 등 복합적 위기 속에서 자본주의가 계속 움직이는 체제임을 목도한다. 이 체제가 진보할지, 파국으로 치달을지, 아니면 과거의 반복일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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