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자들의 역사: 《마오의 대기근》과 기억의 윤리
8장. 기억의 투쟁: 중국 현대사에서 이 책의 의미
기억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기억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는 곳에는 반드시 잊으라는 압력 또한 공존한다.
중국 현대사에서 ‘대약진운동’과 그로 인한 대기근은 대표적인 침묵의 대상이다. 공식 교과서는 이를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일시적 난관’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가볍게 넘어간다.
그런 어둠 속에서 프랑크 디쾨터는 『마오의 대기근』이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깨뜨리고 기억을 소환했다. 이 작업은 단순한 과거 서술을 넘어, 망각에 맞선 끈질긴 투쟁, 곧 ‘기억의 투쟁’이었다.
중국 내에서의 침묵과 왜곡
중국 공산당 정권 하에서 대기근은 국가 기억의 금기 영역으로 남아 있다. 4,500만에 달하는 희생자 수는 공식 기록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으며, 민간 차원의 추모 활동이나 공개 토론 역시 엄격히 억제됐다.
심지어 ‘대약진운동’이라는 용어조차 “성과와 실패가 교차한 혁신적 시도”로 미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마오쩌둥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극도로 민감한 주제로 남아 있으며, 그를 ‘실수한 위인’으로 덮어내는 서사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 내 학자들이 대기근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거나 피해자 증언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의 공식 기록에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학문은 곧바로 정치적 검열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엄혹한 현실 속에서, 디쾨터는 외부 학자로서의 위치를 활용해 금단의 문서들을 해독하고 감춰진 진실을 세계에 드러냈다.
그가 활용한 내부 문건, 지방 간부 회의록, 조사 보고서 등은 대부분 비공개 자료였다. 본래 ‘숨기기 위한 기록’이었던 이 사료들을 통해 디쾨터는 거짓의 언어를 해체한다.
그가 한 일은 단순히 ‘사실’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 자체를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 책이 제기하는 역사적 윤리
『마오의 대기근』이 던지는 가장 예리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 잊히고 있는가? 그리고 그 잊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선택된 이야기들로 구성된다. 누가 기록하고, 누가 침묵하는가는 곧 그 사회의 윤리적 기준과 직결된다.
디쾨터는 죽음의 원인을 단순한 ‘자연재해’나 ‘행정 실수’로 축소하지 않고, 이를 정치적 결정의 산물, 더 나아가 윤리적 붕괴로 규정한다.
이는 마오 개인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전체주의 체제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무책임’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겨냥한 것이다.
그는 역사 서술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도덕적 판단과 기억의 복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대기근을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비극’으로 인식하게 하며, 역사가 과거를 기록하는 기술에 그치지 않고 침묵 속 진실을 되살리는 윤리적 실천임을 강조한다.
“망각에 맞서는 역사”의 가능성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행위를 넘어, 오늘을 형성하는 힘이다. ‘기억의 정치’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지울 것인가를 둘러싼 사회적 투쟁을 의미한다.
『마오의 대기근』은 바로 그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 책은 단지 중국의 비극을 서구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역사학자와 시민들에게 기억에 대한 책임을 일깨웠다.
특히, 학문이 체제에 종속되기 쉬운 사회에서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은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는 도덕적 실험이기도 하다.
디쾨터의 저작은 무덤이 묻어버린 목소리들을 다시 불러내고,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증언의 자리를, 읽는 이들에게는 진실을 응시할 윤리적 책임을 부여한다.
그는 단호히 말한다.
“기억되지 않은 비극은 반드시 반복될 위험을 품고 있다. 침묵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이렇듯 이 책은 한 국가의 역사적 기록을 넘어, 전 세계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인 역사 윤리로 확장된다.
끝나지 않은 책, 계속되어야 할 기억
『마오의 대기근』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중국 내에서는 여전히 출간이 금지되어 있고, 그 주제는 사회적 금기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존재하며, 전 세계 수많은 독자의 손에 들려 그 비극을 기억하게 한다.
그 기억은 정치적 침묵에 균열을 내고, 국가 권력의 무책임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기억의 투쟁’은 결국 누군가는 계속 말하고, 누군가는 계속 듣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디쾨터는 바로 그 말하기를 멈추지 않은 자였다.
에필로그: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역사는 흔히 ‘사건들의 나열’로 이해된다. 전쟁, 혁명, 대기근, 재난 등 수많은 사건이 기록되고, 숫자로 환산된다.
그러나 프랑크 디쾨터의 『마오의 대기근』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 숫자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인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있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지 않는가?
인간 존엄에 대한 근본적 질문
대기근은 단순한 자연재해나 통계적 수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수천만 명의 삶이 무참히 짓밟히고 말살된 비극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 존엄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붕괴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굶주림과 아사, 공포와 고립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쉽게 절망에 빠지고, 내면 깊숙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지를 우리는 목도한다.
디쾨터가 기록한 것은 단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그 고통받는 개인들, 파괴된 가족들, 그리고 침묵 속에 묻힌 공동체들의 목소리를 되살린 강력한 증언이다.
역사는 ‘사건’을 넘어 ‘사람’에 대한 응시일 때 비로소 인간 존엄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은 단순히 수백만 명의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 속에서 고통받았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선택, 좌절과 희망이다.
‘사건’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응시
대기근으로 인한 4,500만 명, 혹은 그 이상의 희생자는 그 규모만으로도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숫자에 압도되어 우리는 종종 ‘사건’이라는 추상적 개념에만 집중하고, 그 안에 감춰진 구체적인 인간의 이야기를 간과한다.
디쾨터는 바로 이 숫자들 사이에 숨겨진 무수한 인간의 얼굴을 복원하고자 했다.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 가족들의 애절한 기억, 그리고 지방 기록 속 감춰진 진실은 이 거대한 숫자 뒤에 존재하는 인간 삶의 구체성과 무게를 다시금 우리 앞에 드러낸다.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대기근’이라는 거대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안에서 고통받았던 개인들의 생생한 고통과, 무참히 짓밟힌 인간성의 실체였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단지 숫자로 환원된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이어갔던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과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진정한 역사 읽기의 본질이다.
현재를 위한 역사 읽기
역사는 결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권력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인간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마오의 대기근』은 단지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벌어진 한 비극적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과 이상이 어떻게 현실을 왜곡·파괴하는지,
그리고 정치적 무책임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이다.
우리는 그 기억을 통해 오늘날의 권력 남용과 정보 조작, 억압의 문제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역사를 잊는 사회는 반드시 같은 비극을 되풀이할 위험에 처한다.
디쾨터가 밝혀낸 진실은 ‘망각의 벽’을 깨뜨리며, 우리 모두에게 기억의 책임을 엄중히 부과한다.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며,
미래를 향한 희망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끝맺으며
이 책을 덮으며 우리는 묻게 된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명확하다.
우리는 그저 숫자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고통과 저항, 그리고 생명의 존엄을.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윤리적 책임이다.
역사 앞에서 겸손하고 진실하며,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기근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프랑크 디쾨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죽음의 숫자’를 넘어,
‘인간의 얼굴’을 마주하는 용기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그 얼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