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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유기, 식인 증언과 기억 ③

잊힌 자들의 역사: 《마오의 대기근》과 기억의 윤리

by 콩코드


5장. 인간의 붕괴: 윤리와 공동체의 해체

가족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웃으며, 어려움을 견디는 가장 작은 공동체 단위다. 그러나 마오 시대의 대기근은 이 마지막 울타리마저 무너뜨렸다.

윤리는 더 이상 삶의 기준이 아니었고, 생존이 유일한 판단 근거가 되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더는 슬픔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


그곳에서는 서로를 지키고 돌보는 마음 대신, 자기 생존을 위한 절박한 투쟁만이 남았다.

형제는 형제를, 어머니는 자식을, 이웃은 이웃을 의심했고, 결국 인간관계는 파편처럼 흩어졌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윤리적 경계는 사라졌다.


대기근은 단지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의 붕괴를 초래한 역사적 비극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때로는 인간성의 가장 깊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사자와 유기, 가족의 붕괴

기근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썼다.

부모는 아이들의 몫을 먼저 떼어주었고, 노인들은 스스로 굶기를 선택하며 희생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굶주림은 가장 근본적인 이타심마저 무너뜨렸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쓸모없는 입’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집에서는 숨이 끊어진 직후 시신을 조용히 옮겼지만,

다른 곳에서는 죽어가는 이들을 방에 홀로 남겨두고 마을 공동체에 알리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가족은 점차 기능을 잃었고, 생존의 무게 앞에 붕괴되었다.

아사자는 남은 자들의 마음마저 무겁게 짓눌렀고,

유기는 사회적 연대와 인간애의 마지막 끈마저 끊어냈다.


디쾨터는 방대한 자료를 통해 유기 사례들을 생생하게 조명한다.

부모가 아이를 버리는 비극적인 선택부터,

형제가 서로를 몰래 떠나보내는 처절한 모습까지 기록했다.

심지어는 살아 있는 가족을 ‘죽은 척’ 처리해 배급을 줄이려는 극단적인 시도도 있었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더 이상 안식처나 안전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생존을 위협하는 냉혹한 관계로 변질되고 말았다.


“나는 여덟 살이었고, 엄마는 날 숲에 데려다 놓고 돌아갔습니다. 그녀도 울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울음은 마지막이었어요.” — 한 생존자의 증언


이 증언은 단순한 생계의 붕괴를 넘어선, 윤리의 붕괴를 의미한다.

더 이상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이 무의미해진 시대,

사랑은 사치가 되었고, 책임은 짐이 되었다.


그 속에서 인간다움은 점점 사라져 갔다.


식인 사례,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행동

디쾨터는 『마오의 대기근』에서 중국 전역의 공식 문서와 생존자 구술을 면밀히 조사하여, 인간이 극한에 처했을 때 어떤 선택을 강요받았는지를 기록한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식인의 사례다.


이것은 단순히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한 자극적 서술이 아니다. 오히려 체제가 얼마나 잔혹하게 인간을 궁지로 몰았는지를 보여주는, 윤리적 경계가 무너진 참혹한 증언이다. 인간 존엄이 무너진 그 극한의 순간을, 디쾨터는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기록한다.


처음에는 시신을 훔쳐먹는 행위로 시작되었다. 공동묘지에서 막 매장된 시체를 파내 껍질을 벗기고 삶는 일이 벌어졌다. 점차 이 극단적인 행위는 일부 지역에서 마치 ‘정보’처럼 퍼져 나갔다. “어느 집에 아이가 죽었대”, “오늘 밤 남쪽 묘지로 가자”는 속삭임이 돌았고, 사람들은 그 말을 따라 움직였다.


더 나아가, 사람을 죽이고 그 고기를 나눈 사례도 있었다. 이는 단순한 야만이나 범죄로 치부할 수 없다. 디쾨터는 이를 극한 상황에서 윤리 감각이 완전히 붕괴된 순간으로 해석한다. 그들이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었기에 살고자 했고, 체제가 그 ‘살아남을 선택’을 빼앗았기에 경계를 넘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 동생은 먹지 말자고 했지만, 우리 어머니는 달랐어요. 그녀는 우리에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말했죠.” — 한 생존자의 증언


이 극단의 선택은 당사자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과 침묵을 안겼다. 말할 수 없었기에, 그 고통은 더 깊고 무거웠다.


공동체적 가치의 파괴와 개인의 고립

마을은 더 이상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가 아니었다. 감시는 날로 강화되었고, 굶주림은 사람들 사이에 깊은 불신과 적대감을 심어주었다. 공동 식당은 모두가 함께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된 현장이 되었으며, ‘당에 충성하는 집안’과 ‘의심받는 집안’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자리했다.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는 가운데, 개인은 점점 고립되었고, 온전한 인간관계는 붕괴되었다.


어떤 이들은 자식이 굶주리는 것을 참지 못해 간부에게 달려가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체포와 공개 비판이었다. 간부들은 곡식을 나누기보다 권력과 공포로 마을을 통제했다. 그 결과 마을은 신뢰를 완전히 잃었고, 이웃은 서로를 돕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 신고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변해버렸다. 인간 사이의 온기가 사라진 그곳에는 오직 불안과 경계만이 남았다.


공동체적 가치인 나눔과 협력, 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냉혹한 생존 법칙들이었다. “살아남으려면 침묵하라”, “남보다 먼저 줄을 서라”, “누구보다 먼저 굶지 마라” 같은 냉소적 규칙들이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마을에서 웃음소리는 끊겼고, 잔치도, 놀이도, 제사도 모두 멈춰버렸다. 삶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었다. 그저 죽음을 하루하루 미루는 고통스러운 투쟁에 불과했다.


인간, 무너진 자리에서

마오의 대기근은 단순한 육체적 굶주림을 넘어, 인간다움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냈다. 이 장은 인간이 어떤 극한 환경에서 도덕을 잃고, 가족을 버리며, 공동체를 해체하는지를 조명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체제가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정책이 강제로 밀어붙이며, 침묵이 합리화한 결과였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묻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 그리고 권력과 체제는 인간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


디쾨터의 기록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한다. 진정으로 인간을 해치는 것은 굶주림 그 자체가 아니라, 굶주림을 방조하고 악용하는 권력이라는 사실을.



6장. 책임 없는 권력: 마오와 관료들의 역할

그 시대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계였다. 죽음은 단지 숫자로 집계되었고, 굶주림은 ‘일시적 현상’으로 포장되었다. ‘희생’이라는 말로 불려야 할 고통은, ‘통계’라는 말로 지워졌다. 그러나 디쾨터는 단호히 묻는다. 그 수천만의 죽음 앞에 정말 아무도 책임이 없는가?

그는 이 책을 통해 분명히 말한다. 이 참극은 단순한 “실패한 이상주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조직된 폭력의 산물이었으며, 반복적인 거짓과 침묵 속에서 체계적으로 집행된 비극이었다. 그 중심에는 마오 주석이 있었고, 그의 명령을 실행하며 현실을 왜곡한 수많은 간부들과 관료들이 있었다.


곡식의 허위 보고, 허상의 생산량, 공포와 침묵을 확산시킨 조직 체계는 모두 위로부터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마오는 실상을 보고받았고, 보고를 부정했으며, 현실을 왜곡하는 자를 오히려 승진시켰다. 중앙정부는 굶주림의 진실을 알면서도 ‘계획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생산과 충성을 요구했다.


디쾨터는 이 구조 속에서 마오 개인만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는 더 넓은 책임을 묻는다. 중앙의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실행한 관료들, 보고를 조작한 간부들, 침묵으로 동조한 조직 구성원들, 모두가 이 거대한 재앙의 공모자였다.

그 시대의 가장 잔혹한 진실은,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멈출 수 없도록 설계된 체제였다는 사실이다. 책임이 분산되며 흐려지고, 그 속에서 권력은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바로 이것이 ‘책임 없는 권력’의 본질이다.


디쾨터의 분석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권력이 책임지지 않을 때, 역사는 누구를 심판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는 말한다. 기록하는 자가, 말하는 자가, 기억하는 자가 그 심판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디쾨터가 분석한 마오의 심리와 정치적 논리

프랑크 디쾨터는 마오를 단순히 독재자나 시대를 잘못 읽은 비이성적 지도자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마오를 냉철하고 계산적인 정치가로 분석한다. 이상주의와 급진적 슬로건 뒤에는 철저한 권력 강화 전략이 숨어있었으며, ‘대약진운동’은 그 전략의 핵심 수단이었다.


디쾨터에 따르면, 마오의 대약진운동은 진정한 의미의 경제 개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철강을 직접 생산하라거나, 인민공사를 조직해 집단농장을 운영하라는 지시는 겉으로 보기엔 생산 독려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모든 과잉 동원은 경제적 성과보다 정치적 충성을 가시화하는 의례였다는 것이다.


철강 경쟁은 생산량보다 복종의 열기를 측정하는 도구였고, 집단화는 협력의 제도화가 아닌, 개인의 선택지를 박탈하는 지배 장치였다. 허위 보고는 실책이 아닌, 체제 충성의 언어였다. 현실을 알리는 것보다 ‘당의 지도 이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처럼 디쾨터는 마오가 의도적으로 사실보다 충성을 선택하도록 체제를 설계했다고 본다. 생산은 실제 성과가 아니라, 복종의 증거였고, 그 증거는 공포, 침묵, 과잉된 열망으로 포장되었다. 이 안에서 진실은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존재가 되었으며, 충성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요컨대, 디쾨터는 마오를 광기의 상징이 아닌, 권력 기술의 정점에 선 인물로 규정한다. 그의 비극은 무지의 산물이 아니라, 계산된 폭력과 조작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조작 속에서 수천만의 생명이 사라졌다.


이러한 분석은 우리에게 더욱 불편한 진실을 던진다. 참극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정치 과정 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의 설계자는 언제나 자신의 손을 깨끗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


마오는 줄곧 ‘국민의 의지’를 운운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민심의 반영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국민의 뜻’으로 둔갑시키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프랑크 디쾨터는 이를 정치적 환상의 체계화로 본다. 그는 마오가 대기근의 한가운데서도 곡물 수출을 강행하고, “자본주의적 사상을 벌하라”고 지시한 수많은 기록을 제시하며, 이 지도자가 현실보다 자신의 이념과 권력 유지를 더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즉, 마오는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알고도 외면했고, 그 외면을 체제 속에 구조화했다. 국민이 굶주려 죽는 와중에도, 체면과 명분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부정했고, 그 부정은 수백만 생명을 앗아간 주된 기제가 되었다.


중앙과 지방: 권력의 분산, 폭력의 이동

프랑크 디쾨터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폭력의 수직적 구조다. 중앙은 불가능한 생산 목표를 설정했고, 지방은 그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실적을 조작하고, 주민을 억압했다.


중앙은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않았지만,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결과만을 요구함으로써, 폭력을 방조하거나 묵인했다. 이는 책임 회피의 가장 교묘한 형태였다.


지방 간부들은 체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잉 충성’을 선택했고, 그 충성은 고발과 징발, 탄압과 체벌의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말하자면, 중앙의 추상적 명령이 지방에서 물리적 폭력으로 변환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한 지역에서 실제 수확량의 세 배가 보고되면, 마오는 “그렇다면 더 징발하라”고 지시했다.

명령은 단순했고, 결과는 잔혹했다. 간부들은 민가에 들이닥쳐 마지막 곡식까지 걷어갔고, 남겨진 주민들은 굶주림 속에 죽어갔다.


그러나 상부에 올라간 보고서에는 단 한 줄.

“일부 주민의 건강 상태 저하.”

죽음은 삭제되었고, 허기조차 통계의 언어로 포장되었다. 체제는 진실을 삼켰고, 통계는 침묵을 정당화했다.


즉, 지방의 거짓은 중앙의 폭력을 불렀고, 중앙의 기대는 다시 지방의 폭력을 정당화했다.

거짓과 폭력은 서로를 먹여 살렸고, 이 구조는 끊임없는 악순환의 피라미드를 형성했다.


죽음은 실적 아래 파묻혔고, 실적은 마오에게 ‘충성의 증거’로 바쳐졌다.

곡식 대신 숫자가 오갔고, 시체 대신 보고서가 채워졌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권력은, 수천만의 침묵 위에 세워졌다.


무책임과 체계적 억압의 연쇄

디쾨터는 대약진운동 시기, ‘무책임’이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체계의 본질이었다는 점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책임이 사라진 체제에서, 실수는 반복된다.

하지만 이 시기엔, 실수조차 실수로 불리지 않았다.

정책의 실패는 ‘반혁명분자의 방해’로 전가되었고,

허위 보고는 ‘정치적 성찰’이라는 미명 아래 은폐되었다.


모든 잘못은 외부로 돌려졌고, 어떤 통치자도, 어떤 간부도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이 부재한 권력은, 억압을 선택했고, 그 억압은 다시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이것이 마오 시대의 통치 메커니즘이었다.


중앙은 단 한 번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방은 그 실수를 그대로 따랐고, 오히려 충성의 대가로 보상받았다.

그 결과,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반성은 사라졌으며, 억압은 일상이 되었다.


관료들은 주민을 위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체제를 연장하는 톱니였고, 마오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전달자였다.

그 관료 체계는 마오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위로 충성하고 아래로 통제하는 구조’였다.

이 구조는 민주적 책임의 완전한 결여를 뜻했고, 권력은 아무런 견제 없이 확대되었다.


기근이 절정에 이른 후반기, 마오는 여전히 “경제는 어렵지만 사상은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디쾨터는 이 발언을 ‘도덕적 파산 선언’이라 부른다.

수천만의 죽음 앞에서조차, 그는 사상의 승리를 외쳤고, 그 외침은 무책임한 권력의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책임 없음’이라는 범죄

수천만 명이 굶주린 이 참사는 마치 누구의 책임도 아닌 듯 취급되었다.

그러나 그 무게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디쾨터는 냉정히 기록한다.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아무도 법정에 서지 않았으며, 어떤 기념비도 세워지지 않았다.”


죽음은 통계로 환원되었고, 기억은 침묵 속에 묻혔다.

체제는 반성 없는 채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기억되지 않은 고통은,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책임 없는 권력은, 가장 잔혹한 범죄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권력은 결국 인간에 의해 유지되며,

책임이 수반되지 않을 때 얼마나 비인간적인 참극으로 귀결되는지를.


마오와 그의 체제는 책임을 묻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했고,

그것이 바로 수천만 생명을 앗아간 참사의 본질이었다.


끝나지 않은 책임의 질문

오늘날 우리는 다시 묻는다.

책임 없는 권력은 과연 정당할 수 있는가?


역사는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참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된다.

프랑크 디쾨터는 『마오의 대기근』을 통해

기억의 의무와 책임의 정치를 다시금 되살려낸다.


이 장은 단순한 고발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체제가

어떻게 인간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묻는

도덕적 기록이자, 무거운 경고이다.



7장. 기록된 고통: 사료와 통계 너머의 목소리

역사는 단지 기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역사는 기록에 담기지 못하고,

억압되고 누락된 기억 속에서 존재한다.

프랑크 디쾨터는 『마오의 대기근』에서

그 숨겨진 진실을 차분히 파헤친다.

이 장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나 연대기가 아니다.

사라진 목소리를 되살리고,

숫자 뒤에 감춰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비로소 이름을 부여하는 기록이다.


디쾨터의 사료 접근 방식: 지방 기록과 내부 문서

디쾨터는 기존의 ‘공식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남긴 지방 기록, 당 내부 문서, 비공개 보고서, 간부 회의록, 시정연설문 초안 등

‘비공식적인 진실’이 담긴 자료들에 주목한다.

이 자료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계와 대중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디쾨터는 이러한 사료를 바탕으로, 단순한 정책 실패를 넘어

정치적 기만과 폭력의 체계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밝힌다.


예컨대, 저장성의 한 지역에서 작성된 사망자 보고서에는 하루 만에 200명이 굶어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상부에 보고된 내용은 ‘계획 초과 달성’이라는 문구만 반복된다.

이처럼 현실과 공식 기록 사이의 간극이 바로 디쾨터가 주목한 핵심이다.

“공식 기록이 숨기고자 했던 진실을, 내부 문서는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사료를 단순한 수집물이 아니라 권력의 거울로 바라보는 그의 접근법은, 기존 중국 현대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완전하지 않다. 사망자들은 단지 숫자로 존재할 뿐, 이름은 기록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이에 디쾨터는 묻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과연 어디에 남아 있는가?”


개인 증언과 집단 기억의 가치는 디쾨터가 이 책 곳곳에 생생히 담아낸다.

그들은 학자도, 간부도 아니며, 때로는 이름조차 기록에 남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어떤 통계보다도 강렬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살아남은 자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개인 증언과 집단 기억의 가치

디쾨터는 책 곳곳에 생존자들의 짧은 증언을 담는다. 그들은 학자도, 간부도 아니며, 때로는 이름조차 남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말은 어떤 통계보다도 강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살아남은 자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먹이기 위해 밥을 세 번 굶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공동 식당에서 밥을 더 달라고 했다가 맞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말이 줄었다.”

“우리 집에는 조용한 사람이 둘 있었다. 아버지와 형이다. 둘 다 먼저 죽었다.”


이러한 증언들은 역사학적으로는 ‘주관적’일 수 있으나, 오히려 그 주관성 속에 집단 기억의 핵이 자리한다.

디쾨터는 이 생생한 증언을 통해 국가가 침묵한 진실을 개인의 기억 속에서 되살린다.

그의 역사 서술은 단순한 구조 분석을 넘어, 윤리적 복원의 의미를 띤다.


‘기록된 역사’와 ‘살아남은 이야기’의 간극

기록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기록 자체가 권력의 도구로 작동한다. 디쾨터는 이 현상을 “억압의 언어와 기억의 침묵 사이의 균열”이라고 명명한다.

그 시대의 ‘공식 역사’는 거대한 대약진과 승리를 강조하는 한편, 굶주림과 죽음은 ‘과도기적 문제’로 축소되고 은폐되었다.

반면, ‘살아남은 이야기’는 그 거짓을 고발하지만, 쉽게 기록되지 못했고 오랫동안 금기와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


이 간극은 단순한 정보의 차이를 넘어, 인간 존엄성의 차이를 의미한다. 기록된 역사 속에서 죽음은 차갑게 숫자로 환원되지만, 생존자들의 증언 속에서는 그 죽음이 고통으로, 얼굴로 되살아난다.

디쾨터는 이 두 세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숫자에 감정을 입히고 문서에 목소리를 더한다. 그가 끊임없이 인용하는 생존자들의 언어는, 통계가 결코 답하지 못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죽었는가? 우리는 왜 잊혔는가?”


말해지지 않은 고통에 말을 걸다

디쾨터의 『마오의 대기근』은 단순한 책장이 아니라, 묵음(黙音)의 무덤을 헤집고 나온 목소리들의 연대기다.

이 장은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선 윤리적 소환이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게 하고, 기억될 수 없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적 사명이라고 믿는다.


죽음은 단순한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고, 말해지는 순간 다시 역사의 일부가 된다. 디쾨터는 그 역사 앞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무덤은 닫혔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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