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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포스트 프라이버시’를 말하는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프라이버시 이후의 자본주의 ①

by 콩코드


서문

우리는 왜 ‘포스트 프라이버시’를 말하는가

한때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신성한 권리로 여겨졌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선이자, 닫힌 문과 내려진 커튼 뒤에 숨겨진 ‘나만의 공간’을 지키는 권리였다. 이런 프라이버시는 인간 존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상징하는 핵심 가치였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의 이름, 위치, 관심사, 표정은 물론이고 심지어 맥박과 뇌파까지도 ‘서비스의 편리함’이라는 명목 아래 자발적으로 내어주는 시대다. 프라이버시는 더 이상 단순히 지켜내야 할 권리가 아니라, 클릭 한 번으로 거래되고, 가격이 매겨지는 자산이자 상품으로 전락했다.


이처럼 프라이버시의 본질과 위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지금, 우리는 ‘포스트 프라이버시’라는 새로운 개념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그 변화의 현장을 톺아보고, 우리 삶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 어떻게 경제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프라이버시의 변화: 권리에서 자산으로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정보를 ‘데이터’라는 추상적인 형태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다시 사람을 ‘예측 가능한 소비자’로 재구성하는 도구가 되었다. 개인의 위치 기록, 검색 이력, 쇼핑 패턴, 사회적 관계망 등 모든 정보가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그래프로 연결되어, 시장에서 분석되고 거래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프라이버시는 서서히 그 본연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더 이상 ‘침해받지 말아야 할 권리’가 아니라, ‘교환 가능하고 활용 가능한 자산’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이 변화가 단지 기술의 진보 때문일까? 아니면 소비자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일까? 혹은 복잡하게 구조화된 경제 시스템이 개인을 특정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한 결과일까?


기술 발전과 규제의 간극

법과 제도는 언제나 기술 발전보다 한 발짝 뒤처져 왔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얼굴을 더 정교하게 인식하고,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욕망을 당사자보다 먼저 꿰뚫어 보지만, 이를 규율하는 법적 장치는 여전히 ‘개인정보 제공 동의’라는 형식적인 틀에 머물러 있다. ‘동의함’ 버튼 하나에 담긴 사용자의 선택은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이며, 우리는 그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사실상의 강제임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간극’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기술이 어떻게 프라이버시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해 왔는지, 시장이 그 변화를 어떻게 기회로 포착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 개인은 과연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함께 탐색하려 한다.


이 책이 다루는 문제의식과 방향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란 단순히 프라이버시가 사라졌다는 선언이 아니다. 이는 프라이버시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재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프라이버시가 더 이상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거래 가능하고 수익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변화의 과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윤리적·사회적·정치적 함의를 면밀히 추적한다.


책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어서 감시 자본주의와 플랫폼 경제의 실체를 살펴보고, ‘동의’라는 허구와 그 이면에 숨은 알고리즘 권력을 분석한다. 또한 국가와 기업 간 경계 없는 감시 체계, 그리고 이에 맞서는 대안적 움직임과 실천 가능성까지 폭넓게 조망한다.


이 책은 기술 발전을 맹목적으로 두려워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낭만적인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변화의 최전선에 서서 우리가 어떤 기준과 윤리, 그리고 권리를 새롭게 구성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시도다. ‘포스트 프라이버시’라는 시대적 황혼 속에서도 인간 존엄이라는 작은 불씨를 다시 지피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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