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울려 퍼진 음악
한쪽은 영국 북부 맨체스터의 잿빛 하늘 아래, 다른 한쪽은 서울의 오래된 골목과 광장에서.
오아시스와 정태춘은 서로를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노래는 각기 다른 언어로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 삶의 무게를, 우리는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오아시스는 브릿팝의 전설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정체성은, 언제나 브리튼 노동계층의 불만과 자존 사이를 진동하던 반항적 형제들이었다.
반면 정태춘은 포크 음악가였고, 시인이었으며, 때로는 거리의 투쟁가였다.
그의 노래는 도시의 비에 젖은 골목에서 들려온, 시대의 균열을 살아낸 이들의 기록이자 목소리였다.
음악은 어떤 얼굴을 갖는가
〈Don’t Look Back in Anger〉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슬픔과 자부심이 뒤엉킨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건 한 세대가 품은 집단적 체념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다짐의 눈빛처럼 느껴졌다.
그 눈빛은 정태춘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에서도 마주할 수 있다.
물에 젖은 구두를 질질 끌며 광장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 위에도, 같은 체념과 같은 다짐이 포개져 있었다.
오아시스의 노래는, 한편으론 꿈 많고 무모한 청춘의 절규였다.
반면 정태춘의 노래는 언어를 품은 풍경이었고, 고통의 기록이자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둘은 전혀 다른 언어와 질감으로, 그러나 각기 그 시대의 얼굴을 노래했다.
저항인가, 위로인가
오아시스의 노래는 저항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위로의 언어로 받아들여졌다.
〈Cigarettes & Alcohol〉은 영국 청년들의 현실도피적 향락과 무력감을 신랄하게 드러냈지만,
그 허무한 고백은 곧 그런 삶을 견디는 집단적 방식, 하나의 공통 언어가 되었다.
그들의 음악은 환멸이 빚어낸 공동체의 찬가였다.
정태춘도 다르지 않았다.
〈아, 대한민국〉은 국가주의적 수사를 차용해, 오히려 국가 폭력과 부조리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비꼬는 노래였다.
그의 위로는 단순한 공감의 제스처에 머물지 않았다.
“슬픔을 말하는 것이 슬픔을 줄여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정태춘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방식으로서 음악을 선택했다.
그들의 노래는 결국, 정치적 저항이자 정서적 위안이었다.
그런 음악은, 삶의 바닥을 딛고 올라온 이들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자의식, 상업성과의 충돌
오아시스는 분명 팝스타였다. 그러나 결코 스스로를 ‘주류’로 자처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언더도그의 태도를 유지했고,
대중의 사랑을 의식하면서도 그 사랑을 조롱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결국 상업적 성공과 반항적 자의식 사이의 균열은, 밴드의 해체라는 결말로 이어졌다.
정태춘은 보다 근본적인 거리 두기를 선택했다.
90년대, 그는 음반 심의 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자발적으로 검열 거부 운동에 나섰고,
자신의 음악이 시장에서 팔리기보다는 역사의 증언으로 남기를 바랐다.
그에게 음악은 생업이 아니라, 양심의 기록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오아시스와 정태춘, 두 사람 모두 음악가로서의 자의식과
대중예술가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뇌했다.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불편했지만, 진실했다.
서사적 음악, 기억의 풍경
오아시스는 반복적이고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통해 감정의 파편들을 흘려보낸다.
그들의 음악은 집단적 기억이라기보다,
오히려 한순간에 밀도 있게 응집된 감정의 조각에 가깝다.
반면, 정태춘의 음악은 철저히 서사적이다.
그의 노래에는 풍경과 인물, 사건과 감정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섬세하게 조율된다.
그래서 그의 곡들은 하나의 시나 에세이처럼 읽힌다.
오아시스가 감정의 질감을 노래했다면,
정태춘은 기억의 궤적을 그려냈다.
두 뮤지션 모두 음악을 통해 한 시대를 기록했고,
그 기록은 오늘도 우리 안에서 되살아난다.
마무리: 다른 언어, 같은 정서
오아시스의 영국식 냉소와 정태춘의 한국적 서정은 전혀 다른 음악 언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정서는 하나였다.
불안정한 시대에 대한 저항,
자신이 속한 세계를 직시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
좋은 음악은 국경을 초월한다.
그 이유는,
음악이 바로 언어를 넘어서는
더 깊은 감정의 공명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