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산문 연재
세상엔 스스로 삶을 꾸려가기보단 남의 인생에 기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조용히 다가와서 자신을 낮추고, 힘든 상황인 척도 하고, 같이 걷고 싶은 사람처럼 손을 내민다. 그 손끝에 연대가 아니라 욕심이 숨어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일 것이다. 그들 안엔 남의 모든 걸 가져가려는 탐욕이 가득하다.
이들은 상대가 애써 쌓아 올린 삶 위에 조용히 올라탄다. 호의를 편의로 바꾸고, 배려를 마치 당연한 권리인 양 착각하며, 결국에는 주인의 자리를 탐내기 시작한다. 헌신하는 말들을 도구처럼 쓰고, 신뢰 사이의 틈을 발판 삼아 서서히 중심으로 파고든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교묘하게 상대의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기생은 단순한 의존과는 다르다. 그것은 타인의 에너지를 빼앗아 자신의 생존을 연장하는, 치밀한 점령 행위다. 문제는 이 점령이 늘 ‘불쌍한 표정’이나 ‘서글픈 사연’으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연민을 무기로 삼으면서, 정작 스스로 서려는 이들에게는 냉정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이중적인 태도. 그 속엔 염치라는 윤리의식이 사라진 자들의 비루한 자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력 없이 함께 가길 바라고, 타인의 성취에 기대어 살아가려 한다. 자기 손으로 물을 끓이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차 한 잔을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삶은 결국 주변을 지치게 만들고, 관계를 무너뜨리며, 공동체를 조금씩 갉아먹는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이런 이들이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마저 침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 사람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하는 선의가, 정작 그들에겐 오히려 자양분이 된다. 그렇게 헌신하던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군가의 생계를 떠맡은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움과 기생의 경계 지점은 어디일까?
어느 순간부터 남에게 베푼 선의가 오히려 도움을 받은 사람의 삶을 빼앗는 일이 되는 걸까?
그리고 염치라는 건 언제부터,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게 되는 걸까?
그 선을 넘은 뒤에는 되돌아갈 길이 없는 걸까?
이 질문들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와 인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한쪽이 무너질 때, 모두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기생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도덕의 붕괴와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의 삶을 무단히 점거해 제멋대로 소비하려는 태도는
결국 공동체 전체의 감수성을 무디게 만든다.
그 무뎌진 감각 때문에 우리는
진짜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목소리조차 놓치게 된다.
그러니 분명히 말하자.
염치는 인간됨의 가장 낮은 경계선이다.
그 선을 넘는 순간, 그들은 조용히 남의 삶을 갉아먹으며
오직 자기 몫만을 키워간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다.
경계이고, 때로는 단절이다.
선의를 악용하는 이들과의 거리 두기,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타인의 수고를 갉아먹으며 얻은 삶에는 깊이도, 지속도 없다.
겉보기엔 무언가를 얻는 것 같지만, 그들은 결국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
기생의 끝은 고립이고,
탐욕이 끝까지 밀고 간 자리는 언제나 텅 비어 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헌신에 기대어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영원한 권리로 착각하는 순간,
관계는 무너지고, 삶은 왜곡된다.
삶은 나눌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서로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 연대이지,
한쪽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은 착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