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산문 연재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나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것만큼 어리석고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요?
과거가 미래를 말해준다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언행을 오래 지켜봤다면,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실망을 안겨주는지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며, 변명과 회피로 일관하던 사람에게 ‘이번만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를 거는 일은, 꺼져가는 촛불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것과도 같습니다.
잠시 불꽃이 깜빡이며 살아나는 듯 보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 꺼질 불은 꺼지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변화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매우 드물며, 깊은 자기 성찰과 실제적인 고통의 대가를 치른 사람에게서만 비로소 시작됩니다. 입으로만 ‘달라지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이들은 대개 자신을 단 한 치도 내려놓지 않지요. 그런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지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개차반은 더합니다.
상대의 감정에는 관심조차 없고, 모든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만 해석하며, 번번이 실망과 상처를 안겨주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조차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혹시나’를 품곤 합니다.
그동안 수없이 무너지고 다치게 했던 사람이, 염치도 없이 다시 나타나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말 한마디만 던져도, 마음 한 켠이 또다시 흔들리는 겁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여전히 기대하고 싶은 겁니다.
스스로 외롭고, 상처받았으며, 언젠가는 그 모든 고통이 보상받을 날이 올 거라고, 어딘가에서는 진심이 통하리라 믿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결과는 늘 같습니다.
과연, 첫걸음부터 난장판입니다. ‘이번엔 달라질지도 몰라’ 했던 사람은 변한 듯 보이다가도, 똑같은 실수, 똑같은 무책임, 똑같은 냉소로 돌아옵니다. 허망한 기대는 그렇게 어김없이 또 다른 허망으로 되돌아올 뿐입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자책과 분노입니다.
하지만 그 분노는 대개 상대를 향하지 않습니다. 정작 향하는 곳은, 그런 사람에게 또다시 기대를 걸었던 어리석은 자기 자신입니다.
이쯤에서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바랄 걸 바라야' 합니다.
희망 자체가 잘못된 감정은 아닙니다. 하지만 희망은 어디까지나 ‘가능성’ 위에 세워질 때만 의미를 갖습니다.
가능성조차 없고, 과거의 경험이 이미 수차례 그것을 부정해 왔으며, 지금 이 순간조차 어떤 책임감도 보여주지 않는 대상에게 기대를 건다면, 그것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착각입니다.
그리고 그 착각은 때때로 가장 깊숙이, 가장 아프게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됩니다.
허망한 기대는, 결국 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환상과 자기기만 위에 세워진 허술한 성채일 뿐입니다.
그 성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만큼 불안정하고, 그 잔해는 늘 우리 마음 위로 떨어져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그러니 이제는 스스로에게 분명히 말해줘야 합니다.
“기대하지 마. 바랄 걸 바라.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아.”
그 말은 냉소가 아니라, 단호함입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대를 거두며 조금씩 단단해지는 법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