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과 담론이 교차하던 ‘좌변기 민주주의’의 풍경
문명의 중심에서 화장실을 바라보다
화장실은 흔히 사적인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전혀 달랐다. 로마의 공공 화장실은 거리 곳곳에 존재했으며,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시민들이 함께 사용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위생 시설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와 정치적 수사, 일상의 유머와 정보가 교차하는 커뮤니티의 중심이었다.
‘도시 문명은 하수도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로마는 하수 체계와 수로 건설에 있어 인류사적 전환점을 이룬 문명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의 정점에는 '공공 화장실'(latrina publica)이 있었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볼일을 보지 않았다. 앉아서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수군거리고, 웃고 울고 싸웠다. 놀랍게도, 그 행위는 앉은 채로 이루어졌다. 바로 화장실에 나란히 앉아, 말 그대로 ‘대화’를 나누며.
앉아서 사는 사람들: 로마 화장실의 구조
고대 로마의 공공 화장실은 오늘날의 '프라이버시' 개념과는 매우 거리가 먼 구조였다. 길게 이어진 긴 돌벤치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뚫린 구멍들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물이 흐르는 하수 통로가 지나갔다. 벤치 아래에는 세척용 물줄기가 흐르는 수로가 별도로 마련돼 있어 나무 막대기에 스펀지(tessillum)를 단 청결 도구를 여러 사람이 공유했다.
놀랍게도 칸막이는 없었다. 모든 사람은 같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심지어 어떤 곳은 중앙에 분수가 설치돼 있었을 정도다. 정면으로 마주 보고 앉는 구조도 있었으며, 넓은 공간에 20~30명이 동시에 용변을 보던 경우도 흔했다.
이 구조는 어떤 의도를 반영하는 것일까? 프라이버시는 고려되지 않았지만, 개방된 구조 속에서 이 공간은 ‘공론의 장’이자 ‘공동체 감각’을 강화하는 장소로 기능했다.
수다방 로마: 볼일 보는 그곳에서 정치가 시작되다
공공 화장실은 도시인들의 수다와 정보 교환의 공간이었다. 로마의 정치와 경제, 군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화장실에서 오갔다. ‘광장’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면, ‘화장실’에서는 더 노골적이고 솔직한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수다가 곧 사회적 감시와 소통의 형태였다는 것이다. 공공 화장실은 계층을 초월한 만남의 장이자, 시민 간의 유대를 다지는 기회였다. 장터에서 들은 소문을 확인하거나, 오늘의 시세나 정치적 풍문을 교환하기에 이보다 자연스러운 장소는 없었다.
실제로 로마의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는 "진짜 민심은 화장실에서 들린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고위 관리들이 일부러 대중 화장실을 찾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표면적으로는 시민들과 어울리는 ‘서민 행보’였지만, 진짜 목적은 민심 청취와 권력 감시, 혹은 정치적 발언의 은밀한 유포였다.
배설과 권력: 평등과 위계가 교차하는 자리
고대 로마의 공공 화장실은 겉보기에 계층 구분이 없었다. 귀족도, 평민도, 노예도 같은 벤치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다. 먼저, 화장실의 위치와 관리 상태, 장식 수준은 신분을 반영했다.
황제 전용 혹은 귀족 전용의 고급 화장실에는 벽화나 대리석 벤치, 향기로운 허브가 놓이기도 했다. 일부 화장실은 사적인 사교 모임이나 음모의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했고, 반대로 하층민 전용 화장실은 위생이 열악하고 하수 정비도 제대로 되지 않아 질병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공간이 가진 특이성은, 권력의 위계가 가장 느슨해지는 곳이라는 점이다. 옷을 벗고 앉은 채로, 누가 누구인지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나누는 대화는 오히려 가장 진실한 감정과 정보를 노출하게 만들었다.
몸과 말, 그리고 냄새
로마의 공공 화장실은 후각적 공간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화장실에서 '소리'와 '냄새'를 숨기려 한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비교적 개방적이었다. 화장실은 말의 냄새와 몸의 냄새가 함께 있는 장소였다. 누군가는 냄새를 풍기며 농담을 던졌고, 누군가는 농노의 신세를 한탄했으며, 또 누군가는 방금 본 검투 경기의 결과를 열변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기 검열은 느슨했고, 대신 인간적인 교감이 일어났다. 말과 배설이 한데 섞여 있는 장소 — 그 자체가 로마 화장실의 매혹적인 특징이다.
왜 이토록 개방적이었을까?
현대의 시선으로 보면 매우 당혹스러운 구조이지만, 당시 로마인들에게는 자연스러웠다. 왜일까? 몇 가지 배경이 있다.
공동체 중심적 생활 구조: 개인보다 ‘시민 공동체’가 중심이던 시대였다. 공공성을 중시한 로마 문화는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위생’을 긍정했다.
욕실 문화와의 연속성: 로마인들은 목욕탕도 함께 사용했다. 수치심보다 개방과 청결, 건강을 중시했고, 배설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하수 기술과 위생 의식: 첨단 하수 시스템 덕분에 비교적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고, 청결은 곧 도시 문명의 상징이었다.
신체에 대한 태도: 로마는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신체는 건강과 미덕의 표현이며,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장치였다.
현대 사회와의 연결: 잃어버린 대화의 자리
현대의 화장실은 철저히 개인화되어 있다. 우리는 칸막이 너머의 인기척도 불편해하며, 어떤 소리도 내지 않으려 애쓴다. 공공 화장실은 말 그대로 ‘공공’이지만, 그 안에서는 오히려 더 고립되고 조용하다.
로마의 공공 화장실을 떠올리면, 우리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함께 앉아 이야기하는 공간을 잃었는가?
‘부끄러움’과 ‘예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감정인가?
화장실에서의 침묵은 정말 사회적 진보일까?
현대인은 프라이버시를 얻었지만, 그 대가로 공유된 대화와 공동체 감각을 잃었다. 고대 로마의 화장실은 그 점에서, 몸과 몸 사이, 말과 말 사이의 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결론: 로마의 화장실, 민주주의의 원형
‘공공 화장실’은 단지 위생 시설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구조와 인간 관계, 권력과 감정의 층위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고대 로마의 화장실은 그러한 면에서, 인간이 가장 솔직하고 평등해질 수 있는 공간의 원형을 보여준다.
앉아 있다는 것. 그것은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상태를 뜻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위아래가 아니라, 옆 사람과 함께 있는 존재가 된다.
고대 로마의 화장실은 바로 그런 민주적 감각의 출발점이었다.
볼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단순한 행위 속에 숨겨진 인간 사회의 깊은 의미를, 우리는 다시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