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공화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시 묻다

by 콩코드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헌법의 첫 문장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읊는다. 교과서에도, 기념식 연설에도, 정치인의 입에도 수없이 오르내리는 말이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민주 공화국에서 ‘국민’이라는 말은 단순히 세금을 내고 투표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국가의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책임지는 시민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시민’이라는 단어는 점점 가벼워지고, ‘주인’의 자리는 비어 가는 듯하다.


시민이라는 말은 본래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시민’은 단순한 거주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전쟁이 일어나면 스스로 무장을 하며, 평시에는 공적 업무를 분담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시민을 마치 수동적인 소비자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서비스 기구가 제공하는 복지를 누리면서, 필요할 때만 목소리를 내고, 그 외의 시간에는 무관심 속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반복될수록, 민주 공화국의 기둥은 서서히 부식된다.


민주주의는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잘 짜인 기계처럼 스위치만 켜면 저절로 돌아가는 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끊임없는 유지와 참여가 필요한, 살아 있는 유기체에 가깝다. 선거철에만 관심을 보이고, 그 이후에는 정치와 사회 문제를 남의 일처럼 여긴다면, 민주주의는 서서히 기능을 잃는다.


역사는 이를 수없이 보여주었다. 로마 공화정의 몰락을 떠올려 보자. 초기 로마 시민들은 공적 업무에 적극 참여하며 도시 국가를 유지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로마가 제국으로 확장되자, 시민들은 점차 정치적 책임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되었고, 그 공백을 권력자들이 채웠다. 카이사르와 같은 인물이 권력을 장악한 것은 단순히 한 정치가의 야망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이 공적 책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독재는 언제나 국민의 무관심과 체념 속에서 자란다. 권력을 쥔 이들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할 때, 이를 견제해야 할 시민이 침묵한다면, 공화국은 순식간에 껍데기만 남는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무관심이다.


우리는 종종 “정치가 엉망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치란 본래 ‘시민들의 집합적 삶의 운영 방식’을 뜻한다. 정치가 혼탁하다는 말은 곧 우리 자신이 그만큼 무관심했다는 방증이다. 스위치를 켜놓기만 하면 저절로 작동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직접 관리하고, 보수하며, 지켜야 할 제도다. 방치한다면, 그 제도는 어느새 타인의 손에 넘어간다.


권리와 의무는 쌍을 이룬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권리’라는 언어에 익숙하다. 표현의 자유, 복지의 확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시민으로서 권리를 요구하고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권리가 실현되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뒤따라야 한다.


예컨대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면, 타인의 표현을 존중하고, 허위 정보나 혐오 발언으로 공동체를 해치지 않으려는 책임이 필요하다. 복지를 누리려면 세금을 성실히 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공적 부담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잃은 듯하다. SNS를 보면 “내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는 넘쳐나지만, 그 권리를 지탱하는 공적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이 흐른다. 이는 마치 다리를 건너면서도 다리의 보수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같다. 언젠가 다리가 무너지면 모두가 함께 추락하게 된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우리의 의무’를 등한시한다면, 민주주의는 끝없는 갈등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공화국의 시민이란 자신의 요구를 외칠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절제하고 때로는 양보할 줄 아는 존재여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무한한 방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자기 규율에서 비롯된다.


작은 실천이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사회적 책무는 거창한 구호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을 비워두는 일, 길 위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운전, 온라인에서 혐오와 가짜 뉴스를 퍼뜨리지 않는 태도….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이 모여 공화국의 질서를 세운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사회 변화를 영웅적인 지도자나 정치적 사건의 결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진정한 뿌리는 평범한 시민의 일상 속에 있다. 내가 오늘 남을 배려하는 작은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은 보이지 않게 공동체를 조금 더 안전하고 견고하게 만든다.


시민의 책무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실현될 때 가장 강력하다. 그것은 곧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를 연결하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불편해지는 만큼, 사회는 조금 더 품격 있게 유지된다.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묻고 점검해야 한다. “나는 지금 시민으로서 행동하고 있는가?”


책임을 외면하는 시대, 시민의 무게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정치인은 결과를 남 탓으로 돌리고, 기업은 사회적 파장을 비용으로만 계산하며, 개인은 “내 삶 챙기기도 벅차다”며 공동체의 문제에서 발을 뺀다. 이러한 태도가 확산될수록, 공동체는 점점 약해지고 위기 상황에서 쉽게 무너진다.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늘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라고 묻는다. 그러나 그 질문은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두려워져, 모두가 서로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주 공화국의 시민이란, 단순히 법을 지키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나라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가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라고 묻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가?” 책임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다.


공화국의 주인은 오늘도 시험대에 오른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상태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매 순간 시험대에 오르는 과정이다.

선거는 그 시험의 한 장면일 뿐이다. SNS에서의 분노와 비판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실제 행동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거부하며, 타인의 권리를 자신의 것처럼 존중하고 있는가?


역사가 보여주듯, 공화국의 미래는 정치인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 있다. 프랑스혁명, 한국의 민주화 운동, 세계 곳곳의 시민 혁명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용기에서 시작되었다. 주인은 언제든 자신의 집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민주 공화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여전히 시험대 위에 서 있다. 무관심은 독재의 문을 열고, 책임과 연대의 실천만이 그 문을 닫는다.


시민이라는 이름의 약속

민주 공화국은 선언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책임을 자각하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참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는 단지 ‘국민’이 아니라 공동체의 주인이다. 그리고 그 주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살아 숨 쉬게 된다.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무관심의 침묵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책임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인가. 그 답은 정치권도, 미디어도 아닌, 우리 시민 각자의 행동 속에 있다. 우리의 선택이 민주주의의 내일을 결정하며, 그 선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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