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로렌 슬레이터, 이야기로 심리학을 쓰다

나의 심리상자 열기

by 콩코드

로렌 슬레이터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종종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녀의 글은 심리학 교과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소설도 아닙니다.

차갑게 객관적인 실험 데이터를 다루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만의 상처와 기억을 조용히 꺼내 놓습니다.

마치 실험실의 비커 속에서 과학과 문학이 동시에 끓고 있는 듯한 글쓰기입니다.


이 독특한 글쓰기 방식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로렌 슬레이터의 삶 자체가 과학과 문학, 이성과 감정의 경계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트라우마와 글쓰기의 시작

로렌 슬레이터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울증과 강박,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 힘든 혼란 속에서 그녀의 세계는 늘 ‘자신의 마음’이라는 미로였습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단어로 붙잡아 두어야만 무너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그녀는 심리학을 전공하며 임상심리학자로 활동합니다.

그러나 학문이 제공하는 이론과 치료 기법만으로는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선택한 길은 문학이었습니다.

실험실의 건조한 언어가 설명하지 못한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와 서정의 힘으로 그려내기로 한 것입니다.


과학과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글쓰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책에서 로렌 슬레이터는 20세기 심리학 실험의 명장면들을 차례로 탐험합니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스탠포드 감옥 실험, 하리 할로우의 애착 실험 등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충격적인 실험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단순히 실험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마치 소설가처럼 장면을 재현합니다.

독자가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차가운 기계 소리, 불빛, 피실험자의 떨림까지 느낄 수 있도록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실험이 던지는 인간적·윤리적 질문을 놓치지 않습니다.


“나는 이야기꾼이고, 동시에 심리학자다.
내 글은 실험실의 기록이자, 인간 마음의 자서전이다.”
– 로렌 슬레이터


스키너와의 만남

이 책에서 중심에 놓인 인물은 B. F. 스키너입니다.

그는 인간을 ‘조건화되는 존재’로 바라본 행동주의 심리학의 거장이었습니다.

스키너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스키너 박스’는

쥐와 비둘기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지만,

결국 인간의 행동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야심 찬 주장을 담고 있었습니다.


로렌 슬레이터는 이 스키너 상자를 하나의 상징으로 바라봅니다.

우리 모두가 보이지 않는 상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지만, 사실은 보상과 처벌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단순히 스키너를 비판하거나 옹호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이론과 실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안내합니다.


왜 지금, 스키너의 상자를 열어야 하는가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보상 체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SNS의 알림음, 온라인 게임의 레벨업, 마트의 포인트 적립까지,

우리의 행동은 끊임없이 조건화되고 있습니다.

스키너가 실험실에서 다루던 쥐와 비둘기의 모습이

21세기 스마트폰을 손에 든 우리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로렌 슬레이터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과학 실험의 역사를 따라가며,

독자가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자유와 인간다움을 다시 발견하게 합니다.


다음 회를 위한 작은 실험

이번 연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한 가지 작은 실험을 제안합니다.


오늘 하루, 스마트폰의 알림을 모두 꺼보세요.

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해 보세요.

그 불안, 혹은 해방감이 바로

‘스키너 상자’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다음 회 예고
2회 ― 스키너 상자의 탄생: 인간을 조종할 수 있을까?
행동주의 심리학의 핵심 개념과 스키너의 실험을 통해
인간 행동을 ‘과학적으로 통제’하려 했던 시대의 야망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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