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길, 파국과 유토피아 사이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에게 묻다

by 안녕 콩코드

​문명의 운명을 논하는 두 권의 '벽돌 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의 파국을 해부하며 현재의 위기를 경고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개척할 미래의 신세계를 예언하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입니다.


​두 거장의 시선은 정반대의 극점에 놓여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환경 파괴와 잘못된 선택이 불러온 문명의 필연적 몰락을 과거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반면, 하라리는 과학 기술이 질병과 죽음마저 정복하여 인류를 신(Homo Deus)의 경지에 올려놓을 수 있는 궁극적인 초월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두 거대한 담론의 그림자 속에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질주하고 있거나, 혹은 기술이 제공하는 달콤한 유토피아에 곧 도착할 운명인 걸까요?



​다이아몬드가 놓친 것: 문명의 몰락은 '필연'이 아니다

​다이아몬드는 이스터 섬, 마야 문명 등 과거 사회의 붕괴를 분석하며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이라는 '환경 결정론'을 핵심에 놓습니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고 강력합니다. 인간이 환경의 한계를 무시하면 문명은 몰락한다.


​하지만 그의 비극적인 예언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합니다. 문명은 환경 문제 때문에 붕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 위기에 '잘못 대응'했기 때문에 몰락합니다. 붕괴는 자연의 필연이 아니라, 집단적인 정치적・문화적 '선택의 실패'에서 비롯됩니다.


​가령, 그린란드 바이킹의 붕괴는 추위 자체보다도,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고 이웃 민족과 협력하는 것을 거부한 그들의 사회적 경직성과 문화적 자만심 때문이었습니다. 문명의 붕괴는 조지프 A. 테인터가 주장하듯, 복잡성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효용을 넘어섰을 때 일어나는 '복잡성 감소'라는 합리적(혹은 불가피한) 조정일 수도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렌즈는 인간의 능동적인 선택과 대안 창출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어둡게 봅니다.



​하라리의 딜레마: '데이터 종교'의 노예가 될 신(神)

​한편,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문명 붕괴의 경고등이 켜진 현실에서 정반대의 방향, 즉 과학 기술을 통한 초월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의 비전은 '기술 결정론'이라는 더 위험한 함정을 내포합니다.


​하라리가 예견하는 '데이터 종교(Dataism)'가 인류의 새로운 신앙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기술 진보가 윤리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낙관에 기초합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데이터 처리'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인간의 자유 의지와 감정을 종속시킬 때, 우리는 과연 '신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하라리의 세계는 기술 엘리트 계층만이 '호모 데우스'로 등극하고, 대다수 인류는 쓸모없어진 '무용 계급'으로 전락하는 극심한 기술적 불평등 사회를 예고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초월은 인류 전체의 해방이 아니라, 소수 권력층의 영생과 지배를 공고히 하는 수단일 수 있습니다.


​《호모 데우스》는 당장의 기후 위기, 빈곤, 민주주의의 퇴행 등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먼 미래의 기술적 환상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파국과 유토피아 사이: 지금, 여기의 책임감

​다이아몬드가 비관적 과거에 갇혀 있고, 하라리가 낙관적 미래에 취해 있다면, 우리는 이 두 극단 사이의 '중간 지대'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문명의 지속 가능성은 과거의 몰락에 대한 공포나 미래 기술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의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작은 선택들'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거대 기술이 아닌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도 개혁,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의 복원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노력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문명의 단절적 붕괴나 기술에 의한 초월적 대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두 거장의 주장이 초래할 수 있는 '현실에서의 책임감 약화'입니다. 문명이 붕괴한다면 '나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회피하거나, 기술이 알아서 구원해 줄 것이라며 현실의 문제를 방관하는 태도 말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필연적 붕괴나 자동적인 초월이 아닌,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협력과 윤리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온 과정이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가능성은 데이터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서로 연대하는 '지금, 여기'의 실천에서 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