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를 대면하라
성(性)이라는 은밀한 금기를 넘어, 이제 우리는 인류가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처절하게 억눌러온 본능, 바로 '폭력'의 심연으로 내려갑니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고 폭력을 미워한다고 말하지만, 왜 스크린 속의 잔인한 액션에 열광하고 타인의 파멸에 묘한 쾌감을 느낄까요? 19화에서는 우리 안에 잠든 포식자의 발톱을 드러내 보겠습니다.
오프닝: "당신은 도덕적인 사람입니까, 아니면 단지 처벌이 두려운 겁쟁이입니까?"
자,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누군가를 해치고 싶다는 충동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까? 운전 중 무례하게 끼어든 차를 보며, 혹은 나를 모욕하는 상사의 뒷모습을 보며 당신의 뇌세포 한구석에서는 이미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상영되었을 겁니다. 우리는 교육과 법이라는 쇠사슬로 이 야수를 묶어두고 있지만, 야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억눌릴수록 더 기괴한 방식으로 분출될 기회만을 노릴 뿐이죠.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화로운 동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만 년간 서로를 죽이고 정복하며 살아남은 '살인 원숭이'의 후예입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의 선량한 가면을 찢어버릴 두 권의 서늘한 텍스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Das Unbehagen in der Kultur)』과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공격성에 관하여(Das sogenannte Böse)』를 소환합니다.
문명은 폭력을 먹고 자란다 : 『문명 속의 불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생애 후반기에 인류를 향한 가장 비관적인 진단을 내놓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구(에로스)만큼이나 강력한, 파괴와 죽음을 향한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문명 속의 불만』에서 그는 문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 파괴적인 본능을 억압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문명은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강요하지만, 우리의 본능은 "네 이웃을 공격하고, 이용하고, 고문하라"고 속삭입니다. 이 본능을 억누르기 위해 문명은 '초자아'라는 감시자를 우리 내면에 심어 죄책감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본능을 발산하지 못해 점점 더 불행해지고, 우울해지며, 신경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사실 인류 전체가 거대한 '정신적 감옥'에 갇혀 집단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는 대가입니다.
공격성은 생존의 엔진이다 : 『공격성에 관하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는 『공격성에 관하여』에서 폭력을 도덕적 선악의 문제가 아닌 '생물학적 필연'의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동물의 공격성이 종의 보존을 위해 진화한 필수적인 본능임을 증명합니다. 영역을 지키고, 식량을 확보하며,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공격성은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이죠.
문제는 인간입니다. 늑대 같은 맹수들은 동족끼리 싸울 때 상대가 항복의 몸짓을 보이면 공격을 멈추는 강력한 '본능적 억제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날카로운 이빨도, 발톱도 없이 진화했기에 그런 억제 기제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능이 발달하며 총과 폭탄이라는 '인공적 이빨'을 갖게 된 것이죠. 로렌츠는 인간을 '자신의 무기를 통제할 본능적 브레이크가 고장 난 위험한 원숭이'라고 정의합니다. 우리의 폭력성이 이토록 잔인한 이유는, 우리가 너무 똑똑해진 나머지 우리 자신의 야수성을 제어할 생물학적 능력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심층 분석: "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가?"
자, 여기서 우리는 현대 사회가 이 억눌린 공격성을 어떻게 교묘하게 '상품화'하고 있는지 목격해야 합니다.
대리 만족의 시장: 스포츠 경기, 격투기, 잔인한 공포 영화와 게임들. 이것들은 문명이 허용한 합법적인 '폭력의 배출구'입니다. 우리는 선수들이 부딪히고 피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내면의 타나토스를 잠재웁니다. 문명은 우리를 온순하게 길들였지만, 우리의 뇌는 여전히 피 냄새를 기억합니다.
증오의 집단화: 프로이트는 개인의 공격성이 외부의 적을 향할 때 집단 내부의 결속이 강해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치적 혐오, 인종 차별, 악플 문화는 현대판 '마녀사냥'입니다. 우리는 '정의'라는 이름표를 붙여 타인을 난도질함으로써, 죄책감 없이 우리 안의 파괴욕을 분출합니다.
기술에 의한 거리두기: 로렌츠가 경고했듯, 현대의 무기는 버튼 하나로 수천 명을 죽일 수 있게 합니다. 희생자의 눈을 보지 않아도 되는 기술적 거리는 우리의 본능적 거부감을 무력화하고 폭력을 더욱 기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듭니다.
결론: "당신 안의 괴물과 화해하십시오"
19화의 결론은 당신의 위선적인 평화주의를 조롱합니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문명이라는 철장에 갇힌 맹수일 뿐입니다.
『문명 속의 불만』은 우리가 왜 문명 속에서 끊임없이 불행을 느끼는지 그 근원을 보여주며, 『공격성에 관하여』는 우리 손에 들린 거대한 힘을 다룰 생물학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경고합니다. 폭력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믿음은 오만입니다. 진정한 도덕은 우리 안에 폭력의 불꽃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불꽃이 파멸이 아닌 창조의 에너지로 쓰이도록 끊임없이 감시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제 당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응시하십시오. 당신은 그 불꽃을 다스리는 주인입니까, 아니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입니까?
"당신은 오늘, 본능을 억압당한 채 거세된 양처럼 살아가는 '문명의 노예'가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면의 파괴적 에너지를 직시하고 이를 삶을 개척하는 강력한 의지로 승화시키는 '야성의 지배자'가 되시겠습니까? 당신이 자신의 어둠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가짜 평화가 아닌 진짜 인간의 힘이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