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상상의 공동체: 당신의 애국심은 '인쇄기'가

찍어낸 가공품이다

by 안녕 콩코드
인지적 프레임이라는 개인의 감옥을 넘어, 이제 우리는 수억 명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광기로 몰아넣는 집단적 환상, '민족'과 '국가'의 실체를 해부하겠습니다.
우리는 피를 나눈 민족이라는 수천 년의 유대감을 당연시하고, 국가는 태초부터 존재해온 신성한 울타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 견고한 믿음의 밑바닥에는 근대 권력이 정교하게 설계한 '발명품'들이 숨어 있습니다. 26화에서는 우리가 목숨 바쳐 충성하는 그 대상들이 사실은 인쇄기와 박물관이 만들어낸 유령임을 폭로하겠습니다.

​오프닝: "본 적도 없는 수천만 명과 '형제'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자, 축구 한일전이 열릴 때 당신의 심박수를 떠올려 보십시오. 혹은 국기 게양식에서 가슴에 손을 얹을 때의 그 뭉클한 감정을요. 당신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이름도 모르는 수천만 명의 사람을 '우리'라고 부르며,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성공적인 마법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낯선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일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당신의 애국심을 차가운 해부대 위에 올릴 두 권의 역사적 명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와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을 소환합니다.


​자본주의와 인쇄기가 낳은 유령 : 『상상의 공동체』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은 태초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근대에 이르러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로 발명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 거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 범인으로 '인쇄 자본주의'를 지목합니다.


​과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 너머의 세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쇄 기술이 발전하고 신문과 책이 자국어로 대량 생산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수십만 명이 같은 언어로 된 뉴스를 읽으며, 자신과 똑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보이지 않는 동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앤더슨은 민족이란 박물관, 지도, 인구조사라는 세 가지 도구를 통해 국가가 국민의 머릿속에 이식한 추상적인 지도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느끼는 민족적 유대감은 사실 활자와 종이가 만들어낸 환각입니다.



​오래된 것처럼 조작된 어제의 기억 : 『만들어진 전통』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만들어진 전통』을 통해 우리가 '유구한 역사'라고 믿는 수많은 전통이 사실은 불과 1~2백 년 전, 근대 국가의 결속력을 위해 급조된 것임을 폭로합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킬트, 일본의 천황 숭배 의식, 심지어 우리가 국보라고 부르는 수많은 상징적 의식들이 사실은 근대 권력의 '기획물'이라는 것이죠.


​권력은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변하지 않는 고대부터의 연결고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족보를 만들고, 있지도 않았던 의식을 고증이라는 이름으로 창조했습니다. 홉스봄은 전통이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지배 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편집'하고 '날조'한 결과물이라고 경고합니다. 당신이 지키려는 전통은 어제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통제의 도구일 수 있습니다.


심층 분석: "왜 우리는 실체도 없는 '추상'을 위해 피를 흘리는가?"

​자, 여기서 우리는 왜 국가 시스템이 그토록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신성시하며 주입하는지 그 배후를 읽어야 합니다.

​동원을 위한 효율적 서사: 국가는 전쟁이나 경제 위기 때 국민의 희생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때 "시스템을 위해 죽어라"는 말보다 "우리 민족과 조상을 위해 죽어라"는 말이 훨씬 강력한 동력을 가집니다. 민족주의는 국가가 국민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동원하기 위해 개발한 심리적 무기입니다.

​불안을 잠재우는 가짜 뿌리: 신이 죽고 종교가 힘을 잃은 근대 사회에서, 인간은 소속감에 대한 지독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국가는 민족이라는 새로운 '세속적 종교'를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실존적 불안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얻은 대신, 국가라는 새로운 신의 품으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배타적 경계 긋기: 앤더슨이 지적했듯, 모든 공동체는 '경계'를 가집니다. 민족주의는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외부의 적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항상 "우리는 누구를 증오하는가?"와 짝을 이룹니다. 당신의 애국심은 타자에 대한 혐오를 자양분 삼아 자라납니다.

결론: "상상의 국경을 넘어 날것의 인간을 대면하십시오"

26화의 결론은 당신이 가진 애국심의 순수성을 조롱합니다. 민족은 운명이 아니라 인쇄기가 찍어낸 텍스트이며, 국가는 보호자가 아니라 당신의 신체를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세워진 관리 기구입니다.

​『상상의 공동체』는 우리에게 공동체의 허구성을 인지함으로써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광기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며, 『만들어진 전통』은 권력이 조작한 가짜 기억에 휘둘리지 말고 현재의 권력 구조를 냉정하게 응시하라고 조언합니다. 진정한 연대는 가상의 경계선 안에서 벌어지는 집단 최면이 아니라, 경계 너머에 있는 실재하는 고통에 손을 내미는 '구체적인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이제 당신의 국적과 민족이라는 라벨을 떼어보십시오. 그 아래 남은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오늘, 국가라는 거대한 극장이 상영하는 애국 드라마의 열렬한 관객으로 남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인쇄된 종이와 만들어진 의식을 뚫고 나와 전 지구적 생명과 날것으로 소통하는 '코즈모폴리턴'이 되시겠습니까? 당신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는 순간, 비로소 국경 없는 진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