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식탁 위에서 피어난 둥근 온기

by 안녕 콩코드


​어느덧 해가 짧아지고 바람의 끝이 제법 매서워진 저녁입니다. 당신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혹시 거칠게 몰아치는 세상의 속도에 밀려 마음 한구석이 깎여나가진 않았나요. 혹은 너무 오래 혼자 견디느라, 사랑이라는 감정의 결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해지지는 않으셨나요. 오늘은 그런 당신에게, 제가 아는 가장 작고도 단단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도심의 낡은 골목, 비좁은 빌라 2층에 사는 한 노부부의 식탁에서 시작됩니다. 두 분은 인생의 사계절을 오롯이 함께 통과해온 이들입니다. 남편은 젊은 시절 목수로 일하며 손마디가 굵어졌고, 아내는 평생 수많은 옷감을 기우며 눈이 침침해졌지요. 그들에게 사랑은 더 이상 가슴 뛰는 수식어나 화려한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차라리 매일 아침 끓이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나, 낡은 소파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닳은 리모컨 같은 것에 가깝습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의 위로

​많은 이들이 위로를 거창한 곳에서 찾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배려들입니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할머니보다 십 분 먼저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주전자에 물을 올리지요. 할머니가 자고 일어났을 때 목이 마르지 않게,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물을 컵에 따라 식탁 위에 올려둡니다.


​할머니는 그 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할아버지가 말로 "사랑해"라고 속삭이는 법은 거의 없지만, 할머니는 그 컵의 온도를 통해 남편의 마음을 읽습니다. 밤새 식지 않은 마음이 그 물잔에 고여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지치고 힘든 이유는 대단한 실패 때문이라기보다, 이런 작은 배려를 주고받을 여유조차 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더 유능해지라고, 더 빨라지라고, 더 완벽해지라고 채찍질하죠. 하지만 사랑은 그 반대의 지점에 서 있습니다. 사랑은 당신이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귀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조용한 응원입니다.


​상처를 덮어주는 비단 같은 마음

​어느 날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아끼던 오래된 찻잔을 씻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두 분의 결혼기념일에 사온, 이제는 단종되어 구할 수도 없는 소중한 물건이었지요. 할머니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깨진 조각 앞에 주저앉았습니다. 미안함과 속상함에 눈물이 핑 돌았죠.


​그때 방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느냐"며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다가와 할머니의 손을 먼저 살폈습니다. "손은 안 다쳤소? 찻잔이야 다시 사면 그만이지만, 당신 손은 다시 살 수가 없지 않소."


​사랑은 상대의 실수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상대의 상처를 덮어주는 비단입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애정을 잃어가는 이유는 자꾸만 '옳고 그름'을 따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로는 논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랬구나, 정말 속상했겠네"라는 짧은 공감 한마디, 그리고 깨진 조각을 대신 치워주는 묵묵한 손길에서 시작됩니다.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정답이 아닐 겁니다. 그저 당신의 서툰 하루를 비난하지 않고, "오늘도 고생 많았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따뜻한 체온일 테지요.


​다시, 사랑을 선택한다는 것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은 종종 말합니다. "사람에게 데어서 이제는 마음을 열기가 겁이 나요"라고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마음을 준다는 것은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다시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것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생동감을 위해서입니다.


​앞서 말한 노부부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사업에 실패해 끼니를 걱정해야 했을 때도 있었고, 큰 병치레로 서로를 원망하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그들이 여전히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이유는, 사랑이 '느낌'이 아니라 '의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었을 때만 좋아하는 것은 감상이지만, 비바람이 불 때 뿌리를 덮어주고 시든 잎을 따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 혹은 당신이 잊고 지냈던 누군가를 떠올려 보세요. 그 사람의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그가 가진 작고 초라한 슬픔까지도 껴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당신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사랑의 불씨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당신이라는 소중한 계절을 위하여

​글을 마치며, 잠시 창밖을 내다보셨으면 합니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겠지요. 저 불빛들은 누군가의 귀갓길을 비추기 위해 제 몸을 태우고 있습니다.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런 불빛 같은 존재입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이,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의 풍경은 조금 더 따뜻해집니다.


​오늘 밤에는 자신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길 바랍니다. 거창한 위로의 말을 찾지 않아도 좋습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보들보들한 이불을 끝까지 끌어올리고, 깊은 숨을 내쉬어 보세요.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여보세요. "오늘도 참 잘 살았다."


​사랑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 당신이 마실 물 한 잔에,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에,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보고 잠시 멈춰 서는 당신의 예쁜 마음 안에 이미 깃들어 있습니다. 그 마음을 잃지 마세요. 당신은 사랑받기에 충분하고, 다시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당신 안에 분명히 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부디 평온하고 안온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다정한 온도로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