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무덤가에 올린 약과

by 안녕 콩코드

굽이진 산길 끝에 놓인 묵직한 그리움

​차바퀴가 비포장도로의 자갈을 짓이기는 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도 끊겨버린 산길의 끝자락, 나는 엔진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문을 열자마자 달려드는 것은 코끝을 아리는 서늘한 숲의 공기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였다.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태고의 고요가 나를 맞이했다.


​트렁크를 열어 정성스레 준비한 제수 용품 상자를 꺼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 시선을 붙드는 것은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 너머로 은은한 광택을 내뿜고 있는 '약과'였다. 켜켜이 층을 이룬 반죽 사이로 조청이 깊게 배어들어, 가을 햇살을 머금은 보석처럼 짙은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이 작은 과자 한 알에는 단순히 단맛 이상의, 내가 감히 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무게와 전통의 엄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묘소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할아버지는 생전에 이 산자락을 당신의 안마당처럼 드나드셨다. 굽은 등을 하고도 산짐승처럼 날래게 길을 만드시던 그 뒷모습이, 이제는 무성해진 풀숲 사이로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의 내게 할아버지는 커다란 산 같은 존재였다. 말수가 적고 엄격하셨지만, 명절날 제사가 끝나고 나면 늘 당신의 몫으로 돌아온 약과 한 알을 슬며시 내 입에 넣어주곤 하셨다. "이게 약(藥)이 되는 과자라 약과란다. 천천히 씹어라, 그래야 깊은 맛이 나지." 할아버지의 그 투박한 손마디에서 전해지던 조청의 끈적함과 달콤함은, 어린 내게 허용된 가장 화려한 사치였다.


​당시에는 몰랐다. 약과 한 알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체에 치고, 기름에 튀겨내고, 다시 조청에 담가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그 지루한 인내의 과정을. 그것은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지는 도시의 디저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시간을 견디고, 정성을 쌓고, 마침내 속까지 달콤함이 꽉 들어차야 비로소 완성되는 음식. 그것은 평생을 정직하게 흙을 일구며 자식들을 키워낸 할아버지의 삶과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묘소가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은 점점 더 신중해졌다. 구두 끝에 닿는 마른 잎사귀 소리가 마치 할아버지의 잠을 깨우는 조심스러운 노크처럼 들렸다. 나는 품 안의 상자를 다시 한번 고쳐 잡았다. 오늘 내가 올릴 이 약과는 단순한 제물이 아니다. 그것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무언의 대화이자, 이제는 청년이 된 손자가 당신의 삶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었다는 뒤늦은 고백이기도 했다.


​마침내 시야가 탁 트이며 햇살이 잘 드는 할아버지의 묘소가 나타났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묘비 앞에서 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 곧, 나는 이 묵직한 약과를 올리고 할아버지와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도시의 소음 속에 묻어두었던 나의 진심을, 변하지 않는 전통의 맛에 담아 전해드릴 시간이었다.


켜켜이 쌓아 올린 존경의 단층

​나는 묘소 앞 평평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제수(祭羞)를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과일의 먼지를 닦아내고 포를 올린 뒤, 가장 마지막으로 약과가 담긴 상자를 열었다. 뚜껑을 열자 산속의 서늘한 공기 속으로 진득하고 고소한 생강과 조청의 향이 확 퍼져 나갔다.


​제기 위에 약과를 고여 올리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작업이었다. 사각형의 약과를 하나씩 엇갈려 쌓으며 나는 그 단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겨낼 때 생겨난 미세한 층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 그것은 마치 수십 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할아버지의 나이테 같기도 했고, 굳은살이 박인 당신의 손바닥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사람 일이라는 게 이 약과 만드는 것과 같아서, 서두른다고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반죽 속에 숨구멍이 있어야 조청이 깊게 배어드는 법이지."


​어린 시절, 명절 제사상 앞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그 비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제사가 끝나고 저 달콤한 약과를 입에 넣고 싶어 좀쑤셔 할 뿐이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사회라는 거대한 맷돌에 갈리며 살아보니, 할아버지의 그 말씀이 얼마나 절절한 생존의 지혜였는지 비로소 체감하게 된다.


​빈틈없이 완벽해 보이려 애쓰던 나의 날들이 오히려 공허했던 이유는, 내 마음속에 조청 같은 진심이 배어들 '숨구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튀겨지고 싶어 안달복달하며 불의 세기만 키웠던 내 젊음은, 정작 속까지 익지 못한 채 겉만 타버린 실패작은 아니었을까.


​나는 약과 세 알을 정성스럽게 괴어 올렸다. 엇갈려 쌓인 약과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하나의 단단한 탑을 이루었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가문의 역사이자, 당신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정직이라는 전통의 무게였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고, 흉년이 들어도 씨앗만큼은 정갈하게 보관하셨다. 그 투박한 고집이 당시에는 답답해 보였으나, 이제 보니 그것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할아버지식의 엄격한 예법이었다.


​제상 위에 올려진 약과는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기름기가 겉돌지 않고 속으로 깊게 수렴된 그 빛깔은, 자기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어른의 품격을 닮아 있었다. 나는 마지막 약과를 올리고 손을 털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나지막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산바람을 타고 묘비 주위를 맴돌았다. 이제 제상은 완성되었다. 화려한 꽃이나 비싼 음식은 없지만,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기다림과 정성'의 결정체인 약과가 그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술잔을 채우기 전, 잠시 눈을 감고 할아버지의 손을 떠올렸다. 제사가 끝나면 내 손에 쥐여주시던 그 끈적하고 따뜻했던 약과의 온기. 그 작은 조각 하나가 어린 손자의 기억 속에 '전통'이라는 거창한 단어 대신 '다정한 존경'으로 각인되어 있었음을,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을까. 켜켜이 쌓인 약과의 단층 사이로, 할아버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조금씩 섞여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무덤가에 퍼지는 조청 향기와 무언의 대화

​제기 가득 술을 채워 올린 뒤, 나는 묘소 앞 거친 흙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두 번의 절을 올리는 동안 이마에 닿는 차가운 대지의 감촉이 생소하면서도 아득했다. 몸을 일으켜 앉자, 가을바람을 타고 제상 위의 약과 향기가 더욱 짙게 풍겨왔다. 기름에 튀겨지고 조청에 절여진 그 향기는 할아버지의 낡은 두루마기에서 나던 특유의 냄새와 섞여 내 코끝을 감돌았다.


​나는 약과 한 알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대로 가장자리 귀퉁이를 조금 떼어 묘소 주변 풀숲에 뿌렸다. "고시레." 나직한 읊조림과 함께 땅으로 돌아간 약과 조각은 대지와의 화해를 청하는 작은 의식이었다.


​"할아버지, 사실 요즘 너무 숨이 차요."


​참아왔던 고백이 터져 나왔다. 도시의 삶은 마치 조청이 덜 밴 설익은 반죽 같았다. 겉은 번지르르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속은 퍽퍽하고 메말라 있었다. 남들보다 더 높이 쌓아 올려야 한다는 강박, 더 달콤한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나는 내 안의 '숨구멍'들을 스스로 메워버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경계하시던 '조급함'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떼어낸 나머지 약과 조각을 내 입에 넣었다. 혀끝에 닿는 첫 맛은 달콤했지만, 씹을수록 생강의 알싸한 맛과 계피의 묵직한 향이 올라왔다. 그것은 삶의 진실을 닮아 있었다. 무조건적인 달콤함은 금방 질리기 마련이지만, 고통과 인내가 섞인 단맛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이 산자락 아래에서 침묵하며 사셨다. 가뭄이 들어 논바닥이 갈라질 때도, 장마에 자식 같은 곡식들이 떠내려갈 때도 할아버지는 원망 대신 묵묵히 삽을 들고 다시 길을 내셨다. 그 인내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지금 내 앞에 놓인 약과처럼 단단하고 깊은 어른의 삶을 완성했던 것이다.


​내가 겪고 있는 도시의 소음과 좌절들도, 어쩌면 이 약과가 기름 솥에서 뜨겁게 튀겨지는 과정과 같은 것은 아닐까.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야만 반죽 사이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비로소 인생의 깊은 지혜라는 조청이 스며들 수 있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묘비 뒤에 숨어 계신 게 아니라, 이 약과의 단단한 질감을 통해 나에게 '견디는 법'을 다시 가르쳐주고 계셨다.


​바람이 불어 묘소 주변의 억새들이 일제히 몸을 눕혔다. 그 소리는 마치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괜찮다, 다 그런 거다"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약과를 천천히, 아주 오래도록 씹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전통의 맛은 단순한 미각의 즐거움을 넘어 내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영약(靈藥)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은 비옥한 땅이나 거창한 금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 그리고 고난을 맛으로 승화시키는 인내의 미학이었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할아버지가 건네주시던 약과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손주가 살아가며 마주할 차가운 세상에 미리 발라주는 달콤하고도 단단한 코팅제였다. 존경이라는 감정은 화려한 수식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투박한 음식 한 알에 담긴 한 인간의 일생을 온전히 이해할 때 완성되는 것이었다.


시간을 견딘 달콤함을 품고 세상으로

​기울어가는 오후의 햇살이 묘비를 길게 눕힐 즈음, 나는 비워진 술잔을 거두고 제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은 약과를 종이에 정성스레 싸서 품에 넣자,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제단의 온기가 가슴팍으로 스며들었다. 올라올 때의 발걸음이 과거의 기억을 쫓는 무거운 회상이었다면, 이제 내려가는 발걸음은 할아버지의 철학을 등에 업은 단단한 귀환이었다.


​돗자리를 털어 접고 마지막으로 묘소를 향해 깊은 목례를 올렸다. "할아버지, 또 올게요." 산바람에 실려 보낸 인사는 대답 대신 숲의 바스락거림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이미 충분한 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일생을 통해 증명해 보인 '기다림의 가치'는 이제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도시의 소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묵직한 이정표가 되어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 구두 밑창에 밟히는 흙과 돌의 감촉이 아까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다. 인생이란 결국 약과를 만드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수천 번 체에 걸러낸 고운 마음가짐 위에, 세상이라는 뜨거운 기름 솥을 견뎌내고, 마침내 고독과 성찰이라는 조청에 푹 담겨야만 비로소 깊은 맛을 내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과정 없는 결과만을 탐하며, 속이 텅 빈 가짜 단맛에만 매달려 왔음을 고백하며 산을 내려왔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자 멈췄던 디지털 기기들이 다시 깨어났다. 쏟아지는 업무 연락과 사회의 소음들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지만, 신기하게도 더 이상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았다. 나는 차창을 열고 마지막으로 산의 공기를 들이마신 뒤, 주머니 속 약과 조각을 한 번 더 만져보았다. 이 작은 과자 한 알에 담긴 시간의 무게가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도시로 돌아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백미러를 통해 멀어지는 산줄기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그곳에 계시지만, 동시에 내 안에 계셨다. 내가 마주할 내일의 고단함은 이제 나를 태워 없애는 불길이 아니라, 내 영혼의 층을 더 세밀하게 갈라 깊은 지혜가 스며들게 할 필수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집에 도착해 식탁 위에 남은 약과를 올려두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도 약과는 여전히 그 투박하고 정직한 갈색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약과를 베어 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고소함, 혀끝에 남는 묵직한 여운. 그것은 내가 앞으로 살아내야 할 인생의 목표였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하고 가벼워진다 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는 사람의 뒷모습은 약과의 단층처럼 견고하고 아름답다. 나는 이제 그 뒷모습을 닮아가려 한다. 할아버지의 무덤가에 올렸던 그 작은 약과 한 알이 가르쳐준 존경과 인내의 맛을 잊지 않은 채, 나는 내일 아침 다시 한 번 나만의 진실한 삶을 켜켜이 쌓아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