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진실과 선동의 미학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by 안녕 콩코드


정적 속에 박제된 1793년 7월 13일

​욕조 안의 물은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화면 하단을 적신 붉은 선혈은 방금 막 혈관을 빠져나온 듯 생생한 빛을 발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광기가 파리 시내를 뒤덮고 있던 여름날 오후, 코르디에르 거리의 한 어두운 방에서 시대의 선동가 장 폴 마라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포착한 이 순간은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이할 정도로 고요합니다. 마라의 고개는 오른쪽으로 힘없이 꺾여 있고, 그의 오른손은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고발하거나 구제하려 했던 깃펜을 놓지 못한 채 바닥을 향해 늘어져 있습니다. 그 깃펜 끝에서 시작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의 가슴에 꽂혔던 칼날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숨을 죽이게 됩니다. 다비드는 왜 이 처참한 살인 현장을 이토록 숭고하고 경건하게 그려냈을까요? 마치 성당의 제단화에서 내려온 순교자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이 정적은 사실,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자리가 아니라 더 큰 광기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서막이었습니다.


붓 끝으로 빚어낸 ‘혁명의 우상’

​역사 속의 실제 마라는 그림처럼 매끄럽고 평온한 피부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만성적인 피부병으로 인해 전신의 가려움과 통증에 시달렸고, 이를 달래기 위해 늘 식초를 섞은 물이 든 욕조 안에서 수건을 머리에 감은 채 집무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의 피부는 짓무르고 진물이 났으며, 성격 또한 그 고통만큼이나 날카롭고 과격했습니다.


​하지만 다비드는 친구였던 마라의 시신 앞에서 ‘진실’ 대신 ‘정치’를 선택합니다. 그는 마라의 몸에서 피부병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냈습니다. 대신 근육질의 탄탄한 상체와 빛을 받아 도드라지는 매끄러운 피부를 선사했습니다. 이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속 그리스도의 육신을 연상케 하는 의도적인 장치였습니다.


​또한, 마라의 왼손에 들린 편지를 보십시오. 암살자 샤를로트 코르데가 그를 만나기 위해 쓴 위조된 호소문입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을 만큼 불행합니다.” 이 문구는 마라를 ‘불쌍한 자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다 죽어간 자비로운 지도자’로 각인시킵니다. 사실 마라는 그 편지를 읽으며 코르데가 가져온 ‘처단해야 할 반혁명 세력의 명단’을 확인하려 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다비드는 이처럼 소품 하나, 빛의 각도 하나까지 세밀하게 조정하여 ‘살인 현장’을 ‘성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것은 기록이 아니라, 대중의 분노를 결집시키기 위한 가장 정교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였습니다.


​2026년의 거울, ‘필터’ 뒤에 숨은 우리들

​다비드의 붓질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편집된 정의’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은 23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를 비추는 서늘한 거울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매일같이 수만 명의 ‘마라’와 ‘다비드’를 마주합니다. 스마트폰 액정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모습만을 필터로 보정하고,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진실만을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편집해 내보냅니다. SNS는 현대판 <마라의 죽음>이 매초 생성되는 거대한 갤러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숭고한 가치’로 포장합니다.


​마라의 욕조 주변을 가득 채웠던 그 뜨거운 분노는 지금 온라인상의 ‘댓글’과 ‘해시태그’로 치환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하고, 그를 단죄함으로써 내가 정의로운 편에 서 있다는 안도감을 얻으려는 심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다비드가 마라의 상처를 성스럽게 묘사해 대중의 복수심을 고취했듯, 현대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편향된 확신에 끊임없이 먹이를 주며 반대편을 향한 증오를 정당화합니다.


​우리는 과연 마라를 죽인 코르데의 진심—공포정치를 멈추고 싶어 했던 한 개인의 고뇌—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다비드가 칠해놓은 매끄러운 피부와 숭고한 빛에 매료되어 그 이면의 칼날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깨진 거울 조각을 이어 붙이는 작업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예술적으로는 불후의 걸작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위험한 기록입니다. 이 그림이 완성된 후, 프랑스는 더 가혹한 공포정치 속으로 빠져들었고 수많은 이들이 마라의 이름으로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사람을 성자로 만드는 작업은 필연적으로 다른 수천 명을 악마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 그림을 다시 보며 ‘세밀하게’ 읽어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선동은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오며, 증오는 대개 정의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글을 마치며 다시 한번 그림 속 마라의 손을 봅니다. 그가 쥐고 있는 깃펜은 오늘날 우리의 키보드이고, 그가 담긴 욕조는 우리가 매몰되어 있는 확증편향의 늪일지도 모릅니다. 박제된 역사 속에서 걸어 나와 이 그림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편집된 진실’ 너머의 인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리듬은 반복된다고들 합니다. 1793년의 붉은 욕조가 주는 교훈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이나 분노를 ‘아름답게’ 소비하기 시작할 때, 이성은 잠들고 괴물이 눈을 뜬다는 것입니다. 캔버스 밖으로 걸어 나오는 당신의 손에는, 다비드의 붓이 아닌 진실을 비추는 등불이 들려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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