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대,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by 안녕 콩코드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은 단순히 비극적인 해난 사고를 옮겨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능한 권력이 초래한 참사와 그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인간 본연의 민낯을 담은 거대한 서사시입니다.


​화폭을 뚫고 나오는 죽음의 냄새

​루브르 박물관의 거대한 벽면을 가득 채운 이 그림 앞에 서면, 가장 먼저 압도적인 '무게'와 마주하게 됩니다. 가로 7미터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는 짙은 황갈색과 검은빛이 뒤섞인 파도가 집어삼킬 듯 넘실대고, 그 위에는 썩어가는 시신들과 죽어가는 이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그림의 하단, 화면 밖으로 흘러내릴 듯 배치된 시신의 발을 보십시오. 제리코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실제 시체 안치소를 드나들며 사체의 변색과 부패 과정을 집요하게 관찰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화폭 너머로 비릿한 바다 내음과 피 냄새, 그리고 극한의 공포가 내뱉는 거친 숨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것은 감상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직시해야만 하는 '고통의 실체'입니다.


​1816년, 국가라는 이름의 난파선

​이 비극은 1816년 7월,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가 세네갈로 향하던 중 암초에 부딪히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선장이었던 위그 뒤루아 드 쇼마레는 실무 경험이 전무한 낙하산 인사였습니다. 배가 난파되자 선장과 고위 관료들은 구명정 6척을 차지하고 도망쳤으며, 남겨진 147명의 하급 군인과 승객들은 급하게 만든 뗏목 하나에 몸을 실어야 했습니다.


​제리코가 묘사한 순간은 뗏목 위에서 보낸 지옥 같은 13일 중, 멀리 수평선 너머로 구조선 '아르고스호'의 돛단배가 작게 보인 찰나입니다.

​피라미드 구조의 처절함: 화면 하단에는 자식을 잃고 망연자실한 노인과 시신들이 깔려 있습니다(절망). 그 위로 희망을 발견하고 서로를 밀치며 일어서는 이들이 있고, 정점에는 붉은 천을 흔드는 흑인 청년이 서 있습니다(생존 의지).

​감춰진 진실: 그림은 역동적이지만 실제 역사는 추악했습니다. 13일 동안 뗏목 위에서는 굶주림과 갈증을 이기지 못한 살인, 그리고 인육을 먹는 처참한 행위가 벌어졌습니다. 구조된 인원은 단 15명뿐이었습니다.

​제리코는 이 그림을 통해 묻습니다. "국가가 당신을 버렸을 때, 당신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오늘날의 뗏목, 시스템이 부재한 바다 위에서

​이 그림이 오늘날 우리에게 유독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거대한 '메두사호'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책임의 외주화: 1816년의 무능한 선장은 오늘날 안전보다는 효율을, 책임보다는 회피를 우선시하는 부조리한 시스템의 얼굴로 되살아납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누가 이 배를 몰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각자도생의 스펙터클: 그림 속 인물들이 구조선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은,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진 시대에 스스로를 구원해야만 하는 현대인의 고군분투와 겹쳐집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뗏목 위에서 타인의 고통을 딛고서라도 수평선 너머의 희망(성공, 생존)을 향해 처절하게 천을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혐오와 연대의 갈림길: 뗏목 위에서 벌어진 비극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의 혐오와 갈등 역시 자원이 부족한 뗏목 위에서의 사투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제리코가 가장 높은 곳에 배치한 인물이 당시 가장 소외받던 '흑인'이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결론: 파도를 멈추는 것은 붓이 아니라 눈이다

​제리코는 이 그림을 완성한 후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서른둘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인간의 고통과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메두사호의 뗏목>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침몰하고 있을 수많은 '메두사호'를 향한 경고장입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보며 참혹함에 눈을 돌리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감는 순간, 무능한 선장은 다시 키를 잡고 뗏목 위에서는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는 '감상'이 아니라 '감시'입니다. 우리의 사회적 뗏목이 누구를 바다로 밀어내고 있는지, 그리고 저 수평선 너머의 희망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거센 파도 속에서도 끝내 천을 흔들었던 그 손들의 무게를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지옥 같은 바다를 건너 함께 육지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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