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권력과 폭력의 기계화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

by 안녕 콩코드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직하고도 잔혹한 전쟁 기록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얼굴 없는 권력'이 어떻게 폭력을 기계화하고, 평범한 인간을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지 추적해 보겠습니다.


​밤을 가르는 총성, 그리고 노란 셔츠의 사내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마드리드의 프린시페 피오 언덕. 화면 중앙을 가득 채운 강렬한 등불 하나가 비극의 현장을 잔인하리만큼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 빛의 중심에 한 사내가 서 있습니다. 방금 막 노동을 마친 듯한 거친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채, 그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총구들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그의 노란 셔츠는 등불의 빛을 흡수해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것 같습니다. 그의 양팔은 십자가에 못 박힌 성자처럼 벌어져 있고, 손바닥에는 못 자국을 연상시키는 상처가 보입니다. 발치에는 이미 앞서 처형당한 동료들의 시신이 엉망으로 뒤엉켜 피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고야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저 거대한 어둠에 맞서 두 팔을 벌린 이 사내는 영웅일까요, 아니면 무력하게 으깨어질 운명의 소모품일까요? 이 그림이 그려진 지 200년이 넘었지만, 사내의 공포 섞인 눈망울은 여전히 우리를 쏘아보고 있습니다.


얼굴을 잃은 군대, 폭력의 시스템

​이 그림이 역사화로서 가지는 가장 소름 끼치는 지점은 처형 집행자들의 묘사에 있습니다.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인 이들은 화면 오른쪽에서 등을 돌린 채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익명성의 공포: 우리는 저 군인들의 얼굴을 단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 고야는 그들을 개별적인 인간이 아니라, 똑같은 복장과 똑같은 자세로 정렬된 '살육의 기계'로 그렸습니다. 얼굴이 없다는 것은 감정이 없다는 뜻이며, 감정이 없다는 것은 대화나 호소가 불가능하다는 공포를 자아냅니다.

​폭력의 기계화: 군인들이 들고 있는 총구는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평행을 이루며 사내의 가슴을 향합니다. 그들은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명령을 수행하는 톱니바퀴일 뿐입니다. 개인의 도덕적 갈등은 시스템의 효율성 아래 완벽히 지워졌습니다.

​대조되는 종교와 권력: 저 멀리 배경에 보이는 교회의 실루엣은 무력합니다. 신의 구원도, 국가의 보호도 저 빛나는 노란 셔츠의 사내를 구해주지 못합니다. 법과 정의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방아쇠를 당기는 시스템'뿐입니다.


​1808년 5월 2일, 나폴레옹 군대에 저항해 들고 일어났던 마드리드 시민들은 다음 날인 5월 3일 새벽, 이처럼 기계적인 절차에 따라 '청소'되었습니다. 고야는 승리자의 영광이 아닌, 패배한 자들의 처절한 진실을 캔버스에 박제했습니다.


현대판 '얼굴 없는 총구' – 익명성과 디지털 폭력

​고야가 묘사한 '익명의 폭력'은 2026년 오늘날, 더 정교하고 광범위한 형태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디지털 익명성의 칼날: 온라인상의 수많은 악플과 마녀사냥은 고야의 그림 속 프랑스 군인들과 닮아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숨긴 채 대중이라는 이름 뒤로 숨어 특정 개인을 향해 일제히 총구를 겨누는 행위는 현대판 '5월 3일의 처형'입니다. 가해자는 시스템(플랫폼) 뒤에 숨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피해자는 등불 아래 노출된 사내처럼 무방비하게 파괴됩니다.

​관료주의와 책임의 분산: 현대 사회의 거대 기업이나 행정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부조리 역시 '익명의 권력'에 의해 자행됩니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은 고야의 군인들이 보여주는 획일적인 뒷모습과 궤를 같이합니다. 책임은 조각조각 나뉘어 그 누구도 전체의 비극에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그것이 바로 기계화된 폭력의 본질입니다.

​보여지는 것의 폭력: 노란 셔츠의 사내를 비추는 저 강렬한 등불은 오늘날 '미디어의 조명'과 같습니다. 누군가의 사생활이나 고통이 만천하에 중계되고 소비되지만, 그 조명은 구원이 아니라 처형을 돕는 도구로 쓰이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팔을 벌린다는 것

​고야의 그림이 절망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내일 아침이면 차가운 시신으로 변할 운명이지만, 사내는 죽음의 기계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거대한 익명의 벽 앞에서, 스스로 빛나는 노란 셔츠를 입고 "나는 여기 살아있는 인간으로 존재한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용기를 배웁니다. 시스템이 개인을 지우려 할 때, 익명성이 우리를 비겁하게 만들 때, 우리는 스스로를 비추는 등불을 들어야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기계적인 수치나 데이터로 보지 않고, 그 안에 깃든 살아있는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고야가 200년 전의 밤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세밀한 위로입니다.


​당신을 겨누고 있는 세상의 총구 앞에서, 당신은 어떤 색의 셔츠를 입고 서 있겠습니까? 무너진 정의의 언덕 위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외치는 저 사내의 손바닥이, 오늘 당신의 무력감을 깨우는 거울이 되길 바랍니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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