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교적 수사 뒤에 숨은 '메멘토 모리'

한스 홀바인, <대사들>

by 안녕 콩코드


이번에는 르네상스 시기 가장 정교하고 치밀한 수수께끼 같은 그림,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The Ambassadors)>을 펼쳐봅니다. 화려한 비단옷과 첨단 과학 기구들로 가득 찬 이 화면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성공에 집착하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 하나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압도적인 화려함, 그 발치의 기묘한 형상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 그림 앞에 서면, 실물 크기로 그려진 두 남자의 당당한 풍채에 먼저 압도당합니다. 왼쪽의 장 드 댕트빌은 당시 최첨단 패션인 분홍색 비단 옷과 모피 코트를 입고 훈장을 뽐내고 있으며, 오른쪽의 조르주 드 셀브는 학자이자 성직자다운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의복을 입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2단 탁자에는 천구의, 해시계, 류트(악기), 찬송가집 등 당시 지식인들이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문명 이기들이 즐비합니다. 이들은 성공한 자들이며, 세계의 질서를 논하는 외교관들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아래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당혹감에 휩싸입니다. 두 남자의 발치에 바닥을 가로질러 대각선으로 길게 늘어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하고 납작한 형상이 떠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이 르네상스적 공간에 침입한 이 이질적인 '얼룩'은 대체 무엇일까요?


​'아나모포시스'가 숨겨둔 죽음의 경고

​홀바인은 이 그림에 '아나모포시스(Anamorphosis, 왜상)'라는 고도의 시각적 장치를 심어두었습니다. 정면에서 보면 그저 일그러진 얼룩처럼 보이지만, 그림의 오른쪽 끝에서 비스듬히 눕혀 보면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해골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홀바인은 부와 명예, 지식의 정점에 서 있는 두 대사에게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들이댑니다. 탁자 위의 물건들도 자세히 보면 완벽하지 않습니다. 류트의 줄 하나는 끊어져 있고, 찬송가는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불협화음을 암시합니다.

​왜곡된 진실: 왜 해골을 정면이 아닌 왜곡된 형태로 그렸을까요? 그것은 죽음과 본질이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방식(정면)'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화려한 겉모습에 취해 있을 때 본질을 보지 못하며, 시각을 비틀어 세상을 낯설게 볼 때에야 비로소 숨겨진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예술적 통찰입니다.


​두 대사는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격렬하게 대립하던 일촉즉발의 외교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구사하던 화려한 외교적 수사(Rhetoric)와 정치적 계산 아래에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평화와 허망한 삶의 끝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럭셔리와 '성공'이라는 이름의 왜상

​홀바인이 500년 전 던진 이 수수께끼는 2026년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비추는 날카로운 거울이 됩니다.

​하이엔드 라이프와 '편집된 자아': SNS 피드를 장식하는 오마카세, 명품 로고, 호텔 호캉스의 사진들은 <대사들>의 탁자 위 기구들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유능하고 행복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징물'을 나열합니다. 하지만 그 사진들의 구도를 조금만 비틀어보면, 그 화려함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공허함과 부채, 그리고 불안이라는 '해골'이 숨겨져 있습니다.

​불통의 수사학: 현대의 정치는 현란한 통계와 수식어로 가득합니다. 경제 지표가 좋아졌다는 화려한 수사 뒤에는, 정작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개인들의 실존적 위기가 '왜곡된 얼룩'처럼 방치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정면의 화려한 지표에만 박수를 보내느라, 발밑에 누워 있는 위기의 실체를 보지 못하곤 합니다.

​의미의 왜곡: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정보를 소비합니다. 확증편향이라는 정면 응시는 진실을 왜곡합니다. 홀바인이 우리에게 오른쪽 끝으로 가서 고개를 숙여 보라고 권유하듯, 우리 역시 타인의 고통이나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기 위해서는 고집스러운 정면 응시를 멈추고 시선을 낮춰야 합니다.


​본질은 비스듬한 시선 끝에 있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은 우리에게 '성공의 허영'을 꾸짖는 차가운 회초리인 동시에, 진실을 읽어내는 법을 알려주는 친절한 교과서입니다. 두 대사는 당당하게 서 있지만, 사실 그들이 딛고 있는 바닥은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쌓아 올린 커리어, 소유한 물건들, 타인에게 보여주는 세련된 모습들은 삶이라는 거대한 그림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 화려함에 눈이 멀어 발밑의 해골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자신이 만든 환상에 갇힌 채 난파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이 정면으로 응시하며 집착했던 그 '화려한 수사'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십시오. 그리고 시선을 낮춰 비스듬히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본질—유한한 삶의 소중함과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이야말로 홀바인이 그 기괴한 해골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고 싶었던 진짜 '성공'의 열쇠일지도 모릅니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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