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달콤한 파멸, 세이렌이 던진 지독한 질문

by 안녕 콩코드
프레드릭 레이튼, [어부와 세이렌], 1856-18 58년경 캔버스에 유채, 66.3x48.7cm, 개인소장


​오늘날 우리에게 '사이렌(Siren)'은 그리 달콤한 단어가 아닙니다. 도심의 정적을 날카롭게 베어내는 구급차의 비명, 혹은 거대한 재난의 전조를 알리는 서늘한 경고음으로 각인되어 있지요. 이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위험을 감지합니다. 하지만 이 서늘한 소리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 역사상 가장 감미롭고도 치명적이었던 '노랫소리'와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매혹자, 세이렌의 이야기입니다.


​날개를 잃고 바다로 숨어든 유배자들

​우리가 흔히 '세이렌'이라고 하면 매끄러운 비늘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인어의 모습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이 상상했던 초기 신화 속 그들의 형상은 사뭇 기괴하고도 장엄했습니다. 여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몸은 날카로운 독수리의 날개와 발톱을 가진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모습이었죠.


​그녀들이 왜 이런 기묘한 형상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합니다.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는 대지의 여신 페르세포네와의 인연에서 시작됩니다. 본래 페르세포네를 모시던 순결한 시종이었던 그녀들은, 주인이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될 때 그녀를 지키지 못한 죄로 신들의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혹은, 사라진 주인을 찾기 위해 대지를 떠나 하늘을 날 수 있도록 스스로 날개를 구했다는 설도 있지요.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지상의 하늘에서 추방당한 그녀들은 척박한 바다 암초 위로 숨어들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그들의 찬란했던 날개는 거친 바닷바람에 젖어 무거워졌고, 중세의 상상력을 거치며 매혹적인 인어의 형상으로 변모해갔습니다. 하지만 외형의 변화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한 번 들으면 영혼까지 저당 잡힌다는 그들의 치명적인 '목소리'였습니다.


​지식이라는 이름의 가장 잔인한 미끼

​세이렌의 유혹은 흔히 관능적인 육체적 유혹으로 오해받곤 합니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던진 미끼는 훨씬 더 고차원적이고 잔인했습니다. 그들은 굶주린 선원들에게 고기를 약속하지 않았고, 외로운 항해사에게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영웅 오디세우스에게 던진 유혹의 핵심은 다름 아닌 '지식'이었습니다.


​"이곳으로 오세요, 고귀한 오디세우스여.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답니다. 트로이 벌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말이죠."


​그들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지점, 즉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망'과 '세상의 진리를 소유하고 싶다는 지적 허영'을 노래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인간에게 "당신이 가야 할 길과 그 끝을 알려주겠다"는 속삭임보다 더 강력한 유혹이 있을까요?


​오디세우스는 이 유혹에 맞서기 위해 기발한 전략을 세웁니다. 부하들의 귀를 단단한 밀랍으로 막아 소리를 원천 차단하게 한 뒤, 자신은 돛대에 몸을 꽁꽁 묶게 한 것이죠. 그는 유혹을 피한 것이 아니라, 그 유혹의 고통을 온몸으로 직면하며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처절하게 사투를 벌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이 본능적인 갈망을 제어하고 승리한 인류 최초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세이렌] 1900년경 캔버스에 유채, 53cmx81cm, 소더비 컬렉션 소장


시대가 만든 프레임: '위험한 여성성'의 탄생

​역사 속에서 세이렌은 오랫동안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존재'의 대명사로 소비되어 왔습니다. 거친 파도와 싸워야 했던 남성 중심적 항해 사회에서, 바다의 변덕스러움은 곧 통제 불가능한 여성의 매력으로 치환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남성을 홀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설정은, 남성의 실패를 여성의 유혹 탓으로 돌리려는 고대 가부장제 사회의 방어 기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중세를 거치며 세이렌의 이미지는 더욱 왜곡되었습니다. 날개를 잃고 꼬리가 두 개 달린 인어(Melusine)로 그려지며 정욕과 죄악의 상징이 되었죠.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세이렌을 다시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녀들은 어쩌면 정해진 경로만을 항해해야 하는 경직된 사회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존재들이었을지 모릅니다. 체제 순응적인 항해를 거부하고, 바다라는 거대한 미지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당당히 내는 '주체적인 목소리' 그 자체였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삶을 에워싼 현대판 세이렌들

​신화 속 세이렌은 사라졌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수많은 세이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쉼 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정보의 홍수, 타인의 화려한 삶을 전시하며 결핍을 자극하는 SNS의 알고리즘, 그리고 "지금 당장 이것을 소유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자본의 달콤한 속삭임들. 이들은 현대인의 귀에 밀랍을 채울 틈도 없이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댑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유혹을 피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된 채 귀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오디세우스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지탱할 '나만의 돛대'를 찾을 것인가. 여기서 돛대란 우리가 삶에서 지켜내야 할 고유한 가치관이자, 흔들림 없는 중심을 의미합니다. 그 중심이 단단하다면 우리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파멸하지 않고 항해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귀스타브 모로, [세이렌], 19세기경 유화,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소장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울릭세스와 세이렌들],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00.6x202cm, National Gallery of Vict oria, Melbourne


진정한 항해는 노래를 통과한 뒤에 시작된다

​세이렌의 노래는 결국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무엇에 영혼을 팔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너를 지탱하는 돛대는 얼마나 단단한가?"라는 지독한 물음 말이죠.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섬을 무사히 지나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귀향의 길에 접어들었듯, 우리 역시 삶의 수많은 유혹과 소음들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본질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이렌의 노래는 우리를 죽이기 위한 소음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삶에 진심인지 확인하게 하는 시험대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의 귓가에 들리는 그 매혹적인 목소리는 당신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당신만의 돛대에 스스로를 묶고 폭풍 같은 유혹을 견뎌낼 준비가 되셨습니까? 진정한 항해는, 그 노래를 비로소 '들었을 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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