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회: <군주론>(마키아벨리) × 1933년 독일 '

수권법' ㅣ 법이 폭력의 면죄부가 될 때

by 안녕 콩코드
1936년 8월 1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에서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가 나치 경례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출처: 중앙일보


Archive 1. 권력의 해부학 (정치와 사회의 이면)

​01회: <군주론>(마키아벨리) × 1933년 독일 '수권법' ㅣ 법이 폭력의 면죄부가 될 때

​텍스트의 직시: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은밀함

​피렌체의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집무실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펜을 들었다. 그가 써 내려간 문장들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권력의 민낯을 가감 없이 폭로하는 인류사의 '가장 위험한 거울'로 남아 있다. 그의 대표작 <군주론(Il Principe)> 제18장에서 그는 군주에게 도덕적 성자가 될 것을 권하지 않는다. 대신, 짐승의 방법을 숙지하라고 조언한다.


​"군주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꾀를 동시에 가져야 한다. 사자는 덫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고, 여우는 늑대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정치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아니라, 혼돈과 야만이 소용돌이치는 지상의 생존 게임이었다. 그는 국가의 안녕(Salute)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군주는 '악행의 길'로 들어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난받을지언정 결과가 공동체를 보존한다면, 그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이른바 '정치적 현실주의'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가 간과한 지점이 있었다. 그가 제안한 '필요한 악'이 사적인 야망을 가진 광인(狂人)의 손에 쥐어지고, 그것이 '법'이라는 신성한 외피를 입었을 때 벌어질 참혹한 연쇄반응에 대해서 말이다.


위 사진은 1933년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이후 히틀러가 수권법(Enabling Act)을 추진하며 연설한 장소인 크롤 오페라하우스(Kroll Opera House)의 내부


​컨텍스트의 충돌: 1933년, 의사당의 화염과 '수권법'

​시계를 1933년 3월 23일, 베를린의 크롤 오페라 하우스로 돌려보자. 독일 의사당 방화 사건 이후 광기에 휩싸인 독일 사회는 '질서'를 갈구하고 있었다. 이때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이 내민 카드는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Gesetz zur Behebung der Not von Volk und Reich)', 이른바 수권법(授權法)이었다.


​이 법의 골자는 단순하면서도 파괴적이었다. 의회가 가진 입법권을 행정부, 즉 정부에 4년간 양도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을 임의로 제정할 수 있게 허용하는 이 법은, 민주주의의 심장인 입법부를 스스로 멈추게 하는 '자살 특약'과 다름없었다.


​현장의 풍경은 마키아벨리가 묘사한 여우의 꾀와 사자의 폭력이 공존하는 현장이었다. 투표장 밖은 나치 돌격대(SA)가 에워싸고 "우리는 법안을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바다를 보게 될 것"이라며 협박했다. 히틀러는 단상에 올라 감언이설로 중도파를 회유했다. 결과는 압도적인 가결이었다. 법치주의의 형식을 빌려 법치주의를 살해한, 인류사에서 가장 정교하고도 합법적인 '폭력의 면죄부'가 발행된 순간이었다.


수권법에 대한 정부 요인들의 서명

* 수권법 서명자 명단: 위에서부터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 총리 아돌프 히틀러, 내무장관 빌헬름 프리크, 외무장관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재무장관 루츠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


​심연의 대화: 정당성은 누구의 것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독일의 수권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서늘한 진실을 목격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필요에 의해' 악을 행하더라도 그것은 오직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 논리를 비틀어, 자신의 욕망을 '국가의 필요'로 둔갑시켰다.


​수권법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여우의 기술'이 현대 관료제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 무기가 되는지를 증명한다. 법은 본래 강자의 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그러나 수권법은 법 자체가 폭력을 수행하는 기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천 명의 반대파를 숙청하고 유대인을 탄압하는 행위가 '합법'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이것은 마키아벨리가 경고했던 짐승의 정치가 아니라, 짐승이 법전(法典)을 씹어 먹고 괴물이 된 풍경이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의 위기가 폭력적인 혁명이나 쿠데타로 올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가장 거대한 폭력은 언제나 가장 조용한 투표함 속에서, 가장 깔끔한 법령 제정의 절차를 통해 시작되었다고.


​우리 시대의 '수권법'은 없는가

​연재의 첫 장을 덮으며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500년 전의 텍스트와 100년 전의 컨텍스트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


​현대 사회에서도 권력은 여전히 '민생'과 '안보', 혹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초법적인 권한을 탐한다. 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소수의 기본권을 유예시키거나, 복잡한 법망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들은 1933년의 망령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비정함을 읽으라고 했지, 그 비정함에 굴복하라고 하지 않았다. 법이 정의의 도구가 아닌 폭력의 면죄부로 쓰일 때, 우리는 그 법의 문장 뒤에 숨은 '여우의 눈동자'를 알아챌 수 있는가.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교차하는 이 심연에서, 우리는 깨어 있는 목격자가 되어야만 한다.



[다음 회 예고]

제02회: 시선의 감옥, 파놉티콘의 원형

: 조지 오웰의 <1984>와 벨라스케스의 명화 <시녀들>이 보여주는 '감시의 미학'을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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