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놉티콘, 감시하는 시선의 권력
텍스트의 응시: 텔레스크린, 거절할 수 없는 시선의 초대
조지 오웰의 <1984>를 읽는 경험은 불쾌한 관음(觀淫)의 대상이 되는 것과 닮아 있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마주하는 것은 거실 한복판에 자리 잡은 ‘텔레스크린’이다. 이 기계는 정보를 송출하는 수신기인 동시에, 거실 안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수집하는 송신기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
오세아니아의 시민들은 언제나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보다, ‘언제 감시받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더 큰 공포를 느낀다. 권력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시선’이라는 보이지 않는 줄자로 인간의 사유를 규격화한다. 윈스턴이 텔레스크린의 시선이 닿지 않는 좁은 사각지대에 몸을 숨기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죽음을 예감한다. 시선의 권력을 거부하는 순간, 시스템은 그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unperson)'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컨텍스트의 반전: 벨라스케스, 캔버스에 갇힌 권력의 눈동자
시선의 권력이 가장 기묘하게 시각화된 지점은 17세기 스페인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걸작 <시녀들(Las Meninas)>이다. 이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은 기이한 당혹감에 휩싸인다. 화면 중앙에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지만, 정작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거대한 캔버스 뒤에서 붓을 든 화가 벨라스케스 자신이다.
미셸 푸코는 그의 저서 <말과 사물>의 첫 장을 이 그림에 할애하며 ‘시선의 역전’을 논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일제히 캔버스 밖, 즉 ‘우리의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화면 뒤쪽 작은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엔 국왕 펠리페 4세 부부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결국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화면 속에 보이지 않는 왕 부부다. 화가와 공주, 시녀들의 시선은 모두 국왕이라는 ‘절대적 시선’을 향해 정렬되어 있다. 관람객인 우리는 왕이 서 있던 자리에 우연히 머물 뿐이며, 그 순간 우리는 그림을 보는 주체가 아니라 권력의 시선에 포획된 대상이 된다. 벨라스케스는 붓 끝으로 17세기의 파놉티콘을 설계한 셈이다.
심연의 대화: 파놉티콘, 스스로를 가두는 인간의 내면
제러미 벤담이 설계한 원형 감옥 ‘파놉티콘(Panopticon)’의 원리는 명확하다. 중앙 탑의 간수는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간수를 볼 수 없다. 시선의 비대칭성 속에서 죄수는 간수가 실제로 자리에 있든 없든, ‘누군가 보고 있다’는 전제하에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권력은 이제 외부의 채찍이 아니라 죄수의 내면으로 스며든다.
<1984>의 텔레스크린과 <시녀들>의 거울 속 시선은 바로 이 파놉티콘적 권력을 공유한다. 오웰이 그린 ‘생각죄(Thoughtcrime)’는 시선의 내면화가 정점에 달했을 때 발생한다. 내가 나를 감시하는 단계에 이르면, 반역은 행동이 아니라 생각만으로도 성립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 시녀들이 일제히 국왕을 향해 멈춰 서 있듯, 오세아니아의 시민들은 빅 브라더의 망막 안에서 박제된 채 살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벨라스케스가 이 권력의 구조 안에 자기 자신을 그려 넣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권력을 찬양하는 동시에, 그 권력의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폭로하는 목격자의 위치에 서 있다. 윈스턴 스미스가 금지된 일기를 쓰며 시스템의 균열을 목격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현대의 디지털 파놉티콘, 우리는 누구를 보는가
오늘날 우리는 텔레스크린 대신 스마트폰이라는 자발적 감시 장치를 손에 쥐고 살아간다. 이제 권력은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SNS라는 거대한 파놉티콘 안에서 타인의 시선을 갈구하고, 자신의 일상을 투명하게 전시한다.
과거의 빅 브라더가 공포로 시선을 강제했다면, 현대의 알고리즘은 ‘좋아요’와 ‘추천’이라는 여우의 기술로 우리의 시선을 유도한다. 우리는 더 이상 사각지대를 찾아 일기를 쓰지 않는다. 대신 사각지대조차 조명을 비추어 공유의 대상으로 만든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앞에 섰을 때 느꼈던 그 서늘한 시선의 역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보고 있다고 믿는 순간, 사실 세상(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우리를 가장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심연에서 묻는다. 당신은 지금 보고 있는가, 아니면 보여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