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이름의 내비게이션: 우리가 아픔을 느껴야

하는 이유

by 안녕 콩코드


​어느 조용한 오후, 손가락 끝에 아주 작은 가시 하나가 박혔다고 상상해 보세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하지만, 타이핑을 할 때마다, 혹은 세수를 할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신경을 건드립니 다. 결국 우리는 가시를 빼내기 위해 핀셋을 들고 거울 앞에 섭니다. 그 작은 아픔이 우리로 하여금 '나의 몸'을 들여다보게 만든 것입니다. 리베카 솔닛은 그의 통찰 깊은 문장을 통해 고통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이 말은 고통이 단순한 괴로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우리 몸과 마음이 보내는 가장 정직한 '긴급 신호'임을 일깨워 줍니다.


고통, 생존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보호막

​우리는 흔히 고통을 제거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는 축복이 아닌 재앙에 가깝습니다. 의학계에는 '선천성 무통각증'이라는 희귀한 질환이 있습니다. 뜨거운 난로에 손을 올려두어도, 뼈가 부러져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위험한 삶을 삽니다. 고통이라는 경보 장치가 고장 났기에, 자신의 몸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치명적인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솔닛의 말처럼 고통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격리하는 보호막입니다. 뜨거운 물체에 닿았을 때 반사적으로 손을 떼게 만드는 찰나의 비명은, 우리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발동하는 본능적 방어기제입니다. 즉, 고통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신호인 동시에, 더 큰 파멸로 가기 전에 멈춰 서라는 강력한 권고입니다.


​마음의 통증: 돌봄이 필요한 곳을 가리키는 손가락

​고통의 목적은 비단 육체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마음의 병, 즉 불안, 슬픔, 고독 역시 저마다의 목적을 지니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우리는 왜 상실 앞에서 가슴이 미어지는 통증을 느낄까요? 왜 타인과의 관계가 어긋날 때 잠 못 이루는 괴로움에 시달릴까요?


​그것은 우리 내면이 '지금 이곳에 돌봄이 필요하다'고 소리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닛이 강조했듯,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소중한 인연의 가치를 배울 수 없을 것이고, 실패의 쓰라림이 없다면 성장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의 통증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에 결핍을 느끼는지, 그리고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정확한 이정표가 됩니다.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외면에서 직면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억누르거나 마취시키려 애씁니다. 진통제로 통증을 잠재우고, 바쁜 일상으로 마음의 허기를 가립니다. 하지만 신호를 무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엔진 경고등이 켜졌을 때 테이프로 불빛을 가린다고 해서 엔진의 결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가리키는 곳을 '응시'하는 것입니다. "왜 아픈가?"라는 질문은 "어디를 돌봐야 하는가?"라는 실천적 물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무언가를 지킬 힘이 있고, 치유할 의지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픔을 정직하게 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을, 그리고 내가 속한 세상을 돌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아픔이 건네는 다정한 경고

​리베카 솔닛의 문장은 고통 속에 침잠해 있는 이들에게 뜻밖의 위로를 건넵니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아픔은 당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당신의 생명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훈장입니다. 고통은 우리를 할퀴고 지나가는 불청객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안전한 삶의 궤도로 돌려놓으려는 가장 충직한 파수꾼입니다.


​오늘 하루,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작은 불편함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것이 육체의 뻐근함이든, 마음 한구석의 서늘함이든 상관없습니다.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온전히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진심으로 돌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결국 그 아픔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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