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본 별똥별은 왜 외로웠을까: 공유되지 못한

경이의 슬픔

by 안녕 콩코드


​윌리엄 폰 히펠은 그의 저서 《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에서 인도양의 한복판, 유람선 갑판 위에서 겪은 기막힌 찰나를 고백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주한 눈부신 별똥별. 인류 중 오직 자신만이 목격했을지도 모르는 그 압도적인 우주의 연출 앞에서, 그는 특별함을 만끽하는 대신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방금 그거 봤어요?"라고 물을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일화는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형질 하나를 관통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거대한 경이 앞에 서더라도, 그것을 타인의 눈동자에 비춰 확인받지 못하면 온전한 실재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만 아는 것’의 특별함보다 ‘함께 아는 것’의 안도감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티거’가 되고 싶어 합니다. 숲속에 오직 나 하나뿐인 존재, 누구와도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을 가진 존재가 되는 것이 자아의 완성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맞닥뜨리는 진실은 사뭇 다릅니다. 히펠이 갑판 위에서 느꼈던 그 기묘한 결핍은 우리가 왜 혼자 맛있는 것을 먹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진짜 맛있다"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먹을 때 더 큰 포만감을 느끼는지 설명해 줍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뇌는 ‘공유된 실재(Shared Reality)’를 확인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원시 시대의 인류에게 혼자만 발견한 열매나 혼자만 목격한 맹수의 흔적은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집단과 공유하고, 서로의 눈을 맞추며 "저기 위험이 있다" 혹은 "저기 먹을 것이 있다"는 공통의 인식을 형성할 때 비로소 생존 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전송하는 행위는, 현대판 ‘공유된 실재’를 확인받고 싶은 본능의 발현인 셈입니다.


​해석되지 않은 감각은 기억에서 표류한다

​별똥별은 분명 히펠의 눈앞에서 타올랐습니다. 물리적 사실로서의 별똥별은 존재했지만, 심리적 사실로서의 별똥별은 타인의 "네, 정말 굉장하네요!"라는 확인이 없이는 미완성 상태로 남습니다. 타인의 반응은 내 감각이 오류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단한 영화를 보고 나오며 곁에 있는 친구의 표정을 살피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나의 감동이 타인의 공감을 얻을 때, 비로소 그 감동은 객관적인 가치를 획득하고 우리 기억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립니다. 반대로 아무리 놀라운 일을 겪어도 그것을 말할 상대가 없다면, 그 경험은 마치 꿈처럼 희미해지며 실재감을 잃어버립니다. "공유되지 못한 경험은 절반만 존재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의미란 언제나 관계라는 스펙트럼을 통과할 때만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친화력, 진화가 선물한 가장 날카로운 무기

​히펠은 인간의 ‘친화력’을 진화의 무기라고 명명했습니다. 강한 발톱이나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서로의 마음을 읽고 경험을 공유하며 협력하는 능력이었습니다. 별똥별을 보고 옆 사람을 찾았던 히펠의 본능은 사실 우리 조상들이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고닦았던 가장 예리한 생존 기술이었습니다.


​이 친화력은 단순한 '사교성'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타인의 주관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자, 나의 주관적 세계를 타인에게 확장하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예술에 열광하고 문학에 몰입하는 이유도 결국 작가가 느낀 그 ‘별똥별’ 같은 순간을 나도 함께 느꼈다는 확인에서 오는 안도감 때문일 것입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위로 중 하나입니다.


고독한 티거보다 평범한 이웃이 행복한 이유

​우리는 종종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남들과 다른 취향, 남들이 가지 못한 장소, 남들은 모르는 정보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히펠의 고백처럼,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 광경을 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축복이라기보다 소외에 가깝습니다. 혼자만의 비밀은 무게가 되어 우리를 짓누르지만, 공유된 기억은 날개가 되어 우리를 연결합니다.


​티거는 노래합니다. "난 하나뿐이야!"라고. 하지만 그 노래를 들어주는 곰돌이 푸와 피글렛이 없다면 티거의 존재는 얼마나 쓸쓸했을까요? 우리는 티거의 고유성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푸의 다정함을 갈구합니다. 결국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보았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찰나의 불꽃을 영원으로 만드는 법

​인도양의 밤하늘에서 사라진 별똥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히펠이 그 경험을 책으로 써서 전 세계 독자들과 공유하는 순간, 그 별똥별은 수천만 명의 마음속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죽음과 망각을 이겨내는 방식입니다. 나의 경험을 타인의 서사로 전이시키고, 서로의 감각을 연결함으로써 우리는 찰나의 불꽃을 영원한 문장으로 바꿉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의 생에서 수많은 별똥별을 목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대단한 성취일 수도, 소소한 일상의 기쁨일 수도, 혹은 남모를 슬픔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히펠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릴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내 곁에 "와, 저거 봤어요?"라고 물을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혼자 보는 우주보다 둘이 나누는 대화가 더 광활한 법입니다. 우리의 친화력은 그렇게 서로의 세계를 겹쳐놓으며, 이 차갑고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끊임없이 증명해 나갑니다. 별똥별이 눈앞에서 불타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그 빛을 함께 본 당신의 눈동자 속에 그 별은 여전히 살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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