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머문 자리, 다정한 뒷모습

by 안녕 콩코드


​해 질 녘의 공기는 유독 밀도가 높습니다. 낮 동안 흩어져 있던 소음들이 잦아들고, 세상이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지요.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 발견한 이 한 장의 찰나는, 잊고 지냈던 유년의 온도를 단숨에 불러일으킵니다.


​[서로의 보폭을 맞추던 시간]


​사진 속 세 사람의 뒷모습은 마치 정물화처럼 고요하면서도, 그 안에는 치열하고도 다정한 삶의 박동이 흐르고 있습니다. 가장 왼쪽, 짙은 와인빛 후드티를 입은 아빠의 어깨는 언제나처럼 듬직합니다. 한 손에는 푸른 짐 꾸러미를,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의 장난감 차를 묵묵히 끌고 가는 그 모습. 가장의 무게란 때로 저토록 일상적이고도 구체적인 가방의 무게로 치환되곤 합니다. 투박한 걸음걸이 끝에 매달린 장난감 차는, 당신의 고단함보다 자식의 즐거움이 우선이었던 한 남자의 무언의 고백처럼 읽힙니다.


​그 곁을 지키는 엄마의 뒷모습은 부드러운 유채화 같습니다. 바람에 옅게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가벼운 옷차림은 그날의 공기가 얼마나 평화로웠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아빠와 보폭을 맞추며 걷는 그 걸음 사이에는 수천 마디의 대화보다 깊은 신뢰가 고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노란 헬멧을 쓴 작은 존재가 있습니다. 킥보드 위에 올라타 위태롭지만 씩씩하게 바퀴를 굴리는 아이. 부모라는 거대한 두 섬 사이를 오가는 작은 배처럼, 아이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뒤에서 지켜주는 두 개의 그림자가 자신의 우주를 온전히 지탱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기억의 켜를 쌓는 저녁]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앞모습을 마주합니다. 웃음 짓는 얼굴, 화난 표정, 기대에 찬 눈빛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어쩌면 뒷모습에서 완성되는지도 모릅니다. 상대가 앞서 나갈 때 묵묵히 그 등을 바라봐 주는 것, 아이의 서툰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거리를 조절하는 것. 그 지극한 배려가 모여 '가족'이라는 이름의 풍경을 만듭니다.


​사진 속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지만, 세 사람이 그리는 선형은 무척이나 견고합니다. 노을은 이들의 뒤에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속삭이는 듯합니다. "오늘 하루도 참 애썼다"고, "내일도 우리는 함께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영원히 퇴색되지 않을 온기]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 사진 속 아이는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고, 부모님의 어깨는 그때보다 조금 더 작아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이 허기진 날 이 사진을 꺼내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홧홧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저 뒷모습들이 나를 향해 보내주었던 무조건적인 응원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길 위에서 보낸 그 찰나의 순간들은 이제 영원한 그리움의 조각이 되어 내 안에 박혀 있습니다. 보폭이 조금 달라도, 걷는 속도가 조금 느려져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던 저녁의 기억이 있으니까요.


​어둠이 내리기 직전,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가장 완벽한 하나였습니다. 사진 속 그날처럼, 오늘도 당신들의 뒷모습에 가만히 나의 마음을 포개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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