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 쑥버무리가 건네는 다정한 안부

by 안녕 콩코드


​창문을 조금만 열어두어도 공기의 결이 달라졌음을 느끼는 3월 말입니다. 해토머리의 눅진한 흙을 뚫고 올라온 연둣빛 생명령이 온 세상을 채우기 시작할 때, 우리네 식탁 위에도 가장 먼저 '봄'이라는 이름의 손님이 찾아오곤 합니다. 화려한 꽃장식을 올린 화전도 아니고, 매끈하게 빚어낸 송편도 아니지만, 그 어떤 떡보다도 계절의 정취를 노골적으로 풍기는 존재. 바로 쑥버무리입니다.


흙 묻은 손끝에서 피어나는 연둣빛 안개

​쑥버무리는 이름부터가 참 투박하고도 정겹습니다. 멥쌀가루와 쑥을 대충 버무려 쪄냈다고 해서 붙여진 그 이름 안에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의 자유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쑥버무리를 만드는 과정은 흡사 대지에 내린 봄비를 그릇에 담아내는 일과도 닮았습니다.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은 어린 쑥을 뜯어와 물에 살짝 헹굽니다.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쑥에 하얀 멥쌀가루를 소복이 뿌리고, 설탕과 소금을 한 꼬집 더해 대충 휘휘 저으면 준비는 끝이 납니다. 여기서 핵심은 '푸석푸석함'에 있습니다. 가루와 쑥이 서로를 완전히 장악하지 않은 상태, 그 서먹하고도 포슬포슬한 질감이 시루 안에서 뜨거운 김을 만나면 비로소 마법이 일어납니다.


​찜통 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피어오를 때, 집안 가득 퍼지는 향기는 단순히 '음식 냄새'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서사적입니다. 그것은 깊은 겨울을 견뎌낸 대지의 숨결이자,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봄의 첫 번째 기침 소리이기도 합니다.



​'정(情)'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부재료

​예전 우리 어머니들에게 쑥버무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별식이 아니었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며 비어버린 곳간을 보며 한숨짓던 시절, 지천으로 널린 쑥은 하늘이 내린 고마운 구슬이었습니다. 쌀가루가 귀하던 때에는 쑥을 산더미처럼 쌓고 가루는 겨우 보일 듯 말 듯 묻혀 쪄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쑥버무리는 결핍을 풍요로 승화시킨 지혜의 산물이며, 자식들의 입에 조금이라도 더 파릇한 생기를 넣어주고 싶어 했던 모정의 결정체입니다.


​함께 둘러앉아 쑥버무리를 떼어 먹는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젓가락으로 집으면 후르르 가루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입안에 넣는 순간 쑥의 알싸한 향과 쌀가루의 은은한 단맛이 어우러집니다. 씹을수록 느껴지는 쑥의 질긴 듯 연한 식감은 마치 "올해도 잘 버텼다, 이제 다시 시작해보자"라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잘생긴 모양새를 뽐내지도 않고, 화려한 고명을 얹지도 않았지만, 쑥버무리가 주는 투박한 위로가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이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 그리고 사람의 손때 묻은 다정함을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찰나의 계절을 붙잡는 법

​쑥버무리는 오직 이맘때만 허락된 사치입니다. 쑥이 조금만 더 자라 줄기가 억세지면 그 맛과 향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이 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짧은 봄이 가기 전, 쑥버무리 한 접시를 두고 마주 앉아 보는 건 어떨까요? 쌀가루의 하얀 미소와 쑥의 푸른 진심이 어우러진 그 소박한 맛 속에서, 우리는 잊고 지냈던 이웃의 정과 계절의 경이로움을 다시금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내일이면 또다시 바쁜 일상이 우리를 몰아세우겠지만, 입안에 남은 쑥향 한 자락이 있다면 올봄은 꽤나 넉넉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쑥버무리는 말합니다. 삶은 때로 정교하게 빚어낸 예술품보다, 조금은 푸석하고 투박하게 버무려진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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