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Class]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00년의 고독 — 환상이 현실의 가장 정직한 얼굴이 될 때

by 안녕 콩코드


아니 에르노의 차갑고 예리한 메스를 내려놓고, 이제 우리는 지독한 습기와 형형색색의 환상이 뒤섞인 마코도(Macondo)의 숲으로 들어섭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는 쿤데라의 냉소도, 에르노의 건조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의 운명을 거대한 신화의 반열로 올리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태양을 우리 앞에 띄워 올립니다. 천명관 작가의 그 야생적인 서사가 사실은 라틴 아메리카의 이 거대한 뿌리와 맞닿아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노란 나비가 날아다니는 영원한 오후

​콜롬비아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그의 서재에 들어섰을 때, 나는 제일 먼저 방 안을 가득 채운 보이지 않는 '나비'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위대한 마술사였고, 고립된 대륙의 슬픔을 전 지구적인 신화로 번역해낸 서사의 거인이었다.


​그를 마주하는 것은 천명관의 『고래』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듯한 경험이었다. 아니 에르노의 방이 정갈한 병동 같았다면, 마르케스의 방은 죽은 자와 산 자가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하늘로 승천하는 여인과 100년을 잠든 노인이 공존하는 거대한 축제 마당이었다. 와크텔이 그를 만났다면 '역사의 비극을 환상이라는 비단실로 꿰매어 영원을 만드는 재봉사'라고 불렀을 것이다. 나는 이 황홀한 혼돈 속에서, 왜 그가 현실을 기록하기 위해 '마법'을 빌려와야 했는지 묻기 위해 입을 뗐다.


​마술적 사실주의: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 가장 사실적이라는 역설

​마르케스의 세계에서 환상은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광기 어린 역사와 비극적인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유일한 언어다.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죽은 자가 외로움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풍경은 그들에게 '사실' 그 자체였다.


​질문: “작가님, 당신의 소설에서는 죽은 자가 말을 걸고 금선조가 예언을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마술'이라 부르지만, 당신은 이것이 당신 고향의 '일상'이라고 말씀하셨죠. 왜 당신에게는 환상이 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깝습니까?”


​마르케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창밖의 눈부신 햇살을 가리켰다.


​“유럽인들은 합리적인 잣대로 우리를 보려 하지만, 우리 대륙의 역사는 그 자체가 마법이었습니다. 독재자가 하룻밤 사이에 나라의 모든 시간을 바꿔버리고, 바다가 피로 물드는 현실에서 어떻게 건조한 신문 기사 같은 문장으로 진실을 말하겠습니까? 환상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의 그 거대하고 잔인한 에너지를 담아내기 위한 유일한 그릇이죠. 제가 묘사한 나비 떼는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고독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빛이었습니다.”


고독의 계보: 100년 동안 반복되는 운명의 굴레

​부엔디아 가문의 7대에 걸친 연대기는 결국 '고독'이라는 단어로 수렴된다. 사랑하려 애쓰지만 끝내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자신의 꼬리를 물고 도는 뱀처럼 똑같은 실수와 비극을 반복하는 인간들. 황정은이 말한 '미미한 연대'조차 허락되지 않는, 신화적 차원의 절대적 고독이다.


​질문: “작가님이 그리시는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문 전체, 혹은 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숙명처럼 느껴집니다. 왜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은 100년 동안 그토록 지독하게 고독해야만 했습니까?”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독의 반댓말은 연대가 아니라 사랑이죠.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마음의 성벽을 쌓았습니다. 그 성벽이 100년 동안 이어지며 고독이라는 유전자가 된 것이죠. 고독은 우리가 타인과 연결되지 못할 때 받는 형벌이자, 동시에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유일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고독의 연대기를 통해, 언젠가는 이 고독에서 벗어나 '제2의 기회'를 얻는 인류를 꿈꿨습니다.”


​기억과 망각: 전염병처럼 번지는 역사 지우기

『백년 동안의 고독』에는 '불면증과 망각의 전염병'이 마을을 덮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사람들은 사물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모든 물건에 이름표를 붙인다. 이것은 학살과 독재의 역사를 잊으라고 강요받는 민중들의 처절한 저항으로 읽힌다.


​질문: “작가님은 망각을 전염병으로 묘사하셨습니다. 역사를 잊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니 에르노가 '기억의 해부'를 통해 증명하려 했던 것과 작가님의 방식은 어떻게 다릅니까?”


​“에르노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메스를 들었다면, 저는 기억을 지키기 위해 신화를 만듭니다. 권력은 언제나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수천 명이 죽어나가도 기차에 실려 바다에 버려지면 끝이라고 믿죠. 소설가는 그 지워진 이름을 다시 불러내어 공기 중에 띄워놓는 사람입니다. 망각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듭니다. 이름을 잊으면 존재도 사라지죠. 그래서 저는 마코도라는 마을을 통해 인류의 기억 저장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마법 같은 이야기가 있어야만 사람들은 그 고통스러운 진실을 잊지 않고 전수하니까요.”


죽음의 공존: 삶의 연장선으로서의 유령들

마르케스의 소설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유령들은 산 자와 함께 생활하며, 때로는 조언을 하고 때로는 슬픔을 나눈다. 이승우 작가가 '죄와 구원'을 통해 사후의 세계와 연결되려 했다면, 마르케스는 죽음을 아예 현재의 식탁 위로 끌어올린다.


​질문: “작가님의 작품에서 죽은 자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당신에게 죽음이란 무엇이며,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이 풍경은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줍니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실패와 꿈이 우리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을 죽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유령이 나타난다는 건 과거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우리가 여전히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노예에서 벗어나 영원이라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마코도를 떠나며, 다시 우리 안의 신화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서울의 차가운 보도블록 위로 노란 꽃잎 하나가 떨어졌다.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마르케스가 내 눈에 뿌려놓은 마술의 잔상이었을까.


​만약 천명관이 마르케스를 만났다면, 두 사람은 아마 밤새도록 독한 술을 마시며 세상의 모든 기이한 이야기를 쏟아냈을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문장이 우리를 현실의 바닥에 얼어붙게 했다면, 마르케스의 문장은 우리를 그 바닥에서 들어 올려 신화의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평범한 일상 또한 누군가에겐 100년 동안 이어질 위대한 서사의 한 장면이라고.


​우리는 이제 세계편의 세 번째 정거장을 통과했다. 마르케스가 남긴 '환상의 나비'들은 우리가 다음에 마주할 거장의 '가장 깊고 검은 숭고함'을 향해 가는 길을 비춰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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