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도려내어 시대를 기록하다
쿤데라의 '가벼움'이라는 냉소적인 공기를 지나, 이제 우리는 다시 뜨겁고도 지독한 '기억의 살점'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밀란 쿤데라가 망명객의 시선으로 세계의 허무를 우아하게 비웃었다면, 이번에 우리가 만날 거장은 자신의 치부를 가장 날카로운 문장으로 해부하여 '보편의 역사'를 세운 여성입니다. 바로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입니다.
박완서 작가가 가졌던 그 '부끄러움에 대한 정직함'이 프랑스식의 서늘하고도 객관적인 '칼날 문체(écriture plate)'를 만났을 때 어떤 폭발력을 갖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정이 거세된 진실의 취조실
파리 외곽의 정갈한 자택에서 마주한 아니 에르노는 작가라기보다 엄격한 법의학자에 가까웠다. 그녀의 서재에는 화려한 수사나 낭만적인 장식은 없었다. 오직 사실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카페가 지적인 농담으로 가득했다면, 에르노의 방은 숨소리조차 데이터로 기록될 것 같은 서늘한 객관성으로 가득 찼다.
와크텔이 그녀를 인터뷰했다면 '기억이라는 부패하기 쉬운 재료를 냉동 보관하여 진실로 굳히는 연금술사'라고 평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생활, 치욕, 욕망, 그리고 낙태와 같은 금기시된 기억들을 한 치의 오조준 없이 정면으로 응시한다. 나는 그녀에게 박완서의 '부끄러움'과 은희경의 '해부학적 시선'을 겹쳐 보이며, 왜 당신은 이토록 자신을 잔인하게 전시하는지 묻기 위해 입을 뗐다.
칼날 문체: 수식어를 거부하는 언어의 골격
에르노의 문학을 규정하는 단어는 '플랫 라이팅(Flat Writing)'이다. 그녀는 형용사와 부사를 걷어내고, 오직 명사와 동사로만 이루어진 메스를 휘두른다. 그것은 독자에게 감동을 강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독자의 살갗을 베어 그 통증을 스스로 느끼게 한다.
질문: “작가님, 당신의 문장은 지독할 정도로 건조합니다. 소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낭만마저 거부하는 그 '칼날 같은 문체'는 어디서 기인한 것입니까? 독자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신가요?”
에르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은 나를 취조하는 듯했다.
“아름다운 문장은 종종 진실을 가립니다. 저는 독자를 위로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습니다. 기억을 '복구'하기 위해 씁니다. 계급의 격차, 성적인 욕망, 수치심 같은 것들은 수식어로 치장하는 순간 변질됩니다. 저는 사진기처럼 정직해지고 싶었습니다.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기억은 허구가 됩니다. 저는 기억의 뼈대만을 남겨두어, 독자가 그 단단한 진실에 부딪혀 스스로 상처받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충격이니까요.”
사적 기억의 공공성: ‘나’라는 표본을 통한 시대의 증언
그녀의 대표작 『세월(Les Années)』에서 그녀는 '나'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 혹은 '그녀'라고 지칭한다. 개인의 연대기가 곧 프랑스 현대사의 연대기가 되는 순간이다. 그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아버지의 죽음(『남자의 자리』), 어머니의 치매(『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은 계급과 여성의 역사가 된다.
질문: “작가님은 자신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립니다.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시대의 기록이 될 수 있다고 믿으시나요?”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나의 욕망, 나의 수치심, 나의 가난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특정한 시대와 계급이 만들어낸 산물이죠. 제가 저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단순히 고백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시대가 한 인간의 내면에 어떤 무늬를 새겼는지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나'는 하나의 실험실이자 표본입니다. 나를 정직하게 해부할 때, 비로소 그 시대를 살아낸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진실이 드러납니다.”
부끄러움의 사회학: 계급의 벽과 신분 상승의 대가
나의 시선: 에르노는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서 지식인 계급으로 진입하며 겪은 '문화적 배신감'과 '부끄러움'을 반복해서 다룬다. 박완서가 전쟁의 비극에서 부끄러움을 찾았다면, 에르노는 부모의 거친 손마디와 교양 없는 말투에서 그 감정의 기원을 찾는다.
질문: “작가님에게 '부끄러움'은 문학적 동력인 것 같습니다. 신분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여전히 그 과거의 부끄러움을 현재로 소환하여 스스로를 괴롭히시는지요?”
“부끄러움은 잊히지 않는 문신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죠. 제가 지식인이 되었다고 해서 부모의 가난과 무지를 지우는 것은 배신입니다. 문학은 그 배신에 저항하는 수단입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는 행위는 제가 과거의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같습니다. 또한 그 부끄러움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 계급의 사다리를 오르는 모든 인간이 지불해야 하는 영혼의 통행료이기도 하죠.”
여성의 신체와 금기: 침묵을 깨는 피의 기록
나의 시선: 『사건(L'Événement)』에서 그녀는 1960년대 불법이었던 낙태의 경험을 끔찍할 정도로 상세히 기록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신체를 통해 사회적 폭력을 저항했다면, 에르노는 자신의 신체를 통해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의 거대 담론을 해체한다.
질문: “낙태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을 이토록 세밀하게 기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문학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닌다고 보시는지요?”
“여성의 몸은 오랫동안 남성의 언어에 의해 해석되어 왔습니다. 침묵은 곧 굴종이죠. 피가 흐르고 고통이 수반되는 그 '사건'을 정직한 언어로 명명하는 것 자체가 혁명입니다. 그것은 법이 금지하고 도덕이 외면한 진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는 일입니다. 제 기록을 통해 그 고통을 겪은 수많은 여성이 더 이상 유령으로 남지 않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신체적 기억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입니다.”
뼈만 남은 진실의 뒷모습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나는 내 기억의 책장을 뒤적였다. 수식어로 가득했던 나의 과거들이 아니 에르노의 '칼날' 앞에서 하나둘씩 벗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만약 박완서가 아니 에르노를 만났다면, 두 사람은 언어는 달라도 '부끄러움이라는 정직한 고통'을 공유하며 깊은 침묵 속에 손을 맞잡았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가벼움으로 존재의 허무를 뚫어냈다면, 아니 에르노는 무거운 사실들로 존재의 실재를 증명한다. 그녀의 글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그 어떤 화려한 문장보다도 단단하고 영원하다.
우리는 이제 세계편의 두 번째 정거장을 통과했다. 에르노가 남긴 '해부된 진실'은 우리가 다음에 만날 거장의 '마술적 상상력'을 맞이하기 전, 우리의 감각을 가장 예리하게 벼려주는 숫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