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곳에서 뱅크시의 그라피티를 만난다면? 발이 묶인 듯 서서 한참 응시하지 않을까 싶다. 공인된 작품이 아니라면 뱅크시의 작품이 맞는지, 아니면 모작인지를 판정하느라 그림에 코를 박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다음엔 그림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 그림이 일련의 뱅크시 작품과 궤를 같이하는, 그러니까 뱅크시 작품임을 방증할 경향을 보이는지, 구도 혹은 양식에서 어떤 점이 뱅크시를 연상케 하는지 등을 살피려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다고 알아볼 식견이 있을까 싶은 걱정은 잠시 밀쳐두고서 말이다.
후미진 골목에 그려져 사람들 눈에 잘 안 띈다고는 해도 장기간 마을 사람들이나, 필시 그들의 말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을 그림 좀 본다는 사람들이 뱅크시 작품의 품격을 못 알아볼 리 없다는 의문을 떨쳐낼 수 없었다. 모작일 소지가 다분하다...... 고 결론을 내리고도 한동안 뱅크시에 붙들린 두 눈은 그림이 그려진벽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 더 그곳에 갈 기회가 있어 부러 찾았지만, 이번엔 헛걸음. 좁은 골목길 좌우로 빽빽이 건물이 들어선 베네치아에서 이정표도 없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기억은 때로 과장되기 마련이다. 어떤 수필처럼 깊은 추억은 명료한 사실을 묻고 아련하게 남는 편이 나으리라. 덕분에 내겐 그 작품이 주역이 아니어서 더 아릿한 안개꽃처럼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풍광은 물론 물빛과 바람, 공기마저 좋은 베네치아가 아니었다면, 반 팔 정도의 길이로 불규칙하게 뻗은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 문득 코앞으로 곤돌라가 지나는 좁다란 물길을 만나지 않았다면, 수면 위로 햇살이 뽀얗게 내려앉은 광경을 욕심내며 혼자 볼 요량이었다면, 기억 저편으로 무심코 흘렸을 장면이었다.
퇴락한 여염집 벽면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느닷없이 마주친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여행객은 여행객대로 그림을 보며 철 지난 설픈 감정을 덜어낸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뱅크시의 진본이 아니더라도 뱅크시의 그림 같은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달떴던 것도 누구 말마따나 여행의 일부였겠다 싶다. 그때만은 이성이 감정의 시녀가 되더라도 그냥 두고 말 것이었다. 숙제는 남았다. 다시 그곳을 찾아야 하리라는 것. 지난 10월 20일 인사동에서 열린 뱅크시 전이 막을 내렸다.
왼쪽부터 문제의 그림, 거리 풍경 순
후기
혹시나 싶어 뱅크시가 베네치아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 찾았다. 설마 했던 사실 하나는 뱅크시가 베네치아에서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는 것(노점을 열었다는 기사도 있다!)과 내가 본 그림은 아니지만 베네치아에 공인된 뱅크시 작품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어느 흐린 날 뱅크시가 내가 본 그림을 슬쩍 그리고 자리를 떴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 예상 밖의 곳에서 뱅크시를 되뇔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진귀한 경험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