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장의 보고서와 구두 설명으로 사실을 전부 알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어떤 보고가 올라왔을 때 윗선에선 섣부른 칭찬이나 반대는 금해야 옳다. 윗선의 섣부른 칭찬은 그 보고서의 진실성에 불구하고 윗선에 승인받은 것으로 간주되어 널리 통용된다. 보고서 자체가 지닌 결함(법 저촉, 결과적으로 재정손실)이 더 이상 제기되지 않을 공산이 큰데 윗선의 섣부른 칭찬으로 해당 보고가 진정한 것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를 안고 있는 셈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첫째 보고서 작성자가 그 보고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예 모른다는 것이고(경력 20년을 넘긴 실무자와 팀장이 모를 리 없다. 그 정도 문제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하다고 자인하는 것밖에 안 된다.), 둘째는 나중에 안 경우에도 문책이 두려워 쉬쉬한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맹점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다. 윗선의 섣부른 칭찬으로 사실상 추인(승인)된 보고서는 보고서의 내용에 중대한 흠결이 있음을 안 부서원들이 난색을 표하며 보고서의 의견(타인의 보고서를 베끼고 내부 의견수렴 없이 강행)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허울뿐인 외피만 남는다. 이쯤 되면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치를 허위로 조작하고 보고서를 은근슬쩍 바꿔 윗선에 보고한다. 윗선을 속이는 일이 계속되는 것이다. 윗선의 섣부른 칭찬과 부서의 한 건 주의가 절묘하게 결합한 처참한 민낯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로 붙인다.
법을 집행할 책임 있는 자가 윗선에 허위 보고로 자신뿐만 아니라 부서원 전체를 법 위반으로 내몬 대표적인 사례다. 관계 부서는 이제라도 경위를 밝혀 엄중 조치하기를 바란다. 흐지부지 넘기면 허위라도 포장만 그럴듯하게 하면 윗선이고 뭐고 다 통과되더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기 알맞다. 알맹이 없는 보고서, 실행계획이 미진한 보고서에 더해 허위 보고서의 등장까지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정도를 걸으며 열심히 일하는 직원만 불쌍하다.
꽃길만 걸으라니. 아직도 전임의 그늘에서 못 벗어난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현상은 주로 후임의 권력이 여전히 안정되지 못하거나 어떤 사유로든 전임이 득세할 때 나타난다. 단순 실수라고 넘기기엔 뿌리가 깊고 넓다. 뿌리는 살려놓고 가지만 쳐서 생긴 일이다. 뿌리에서 거듭 서툰 가지가 솟는다. 어떤 면에선 꽃길만 걸으라는 상찬을 받은 당사자의 표정이 궁금하다. 저 문구는 망국적 현실을 초래한 전임 진영의 대표적 문구다. 마치 당사자가 전임의 아류 혹은 전임의 앞잡이라는 은유가 아니겠나 싶었다. 실수가 되려 현실을 정확히 지적하는 역설. 딱히 할 말도 없게 생겼다. 휘하 부서장의 전횡과 분탕을 용인한 분이시니 충분히 자격이 있다. (잠시) 꽃길만 걸은 후 꽃길의 주인공, 그 아류와 함께 응분의 대가를 곧 치르라. 눈이 번쩍 뜨이는 은유이지 않은가. 한 번은 코미디로 또 한 번은 비극으로. 잘 가라는 말은 못 하겠다.
끝간 데 없이 밀어붙이면 된다는 저 우둔함 앞에
지난날 너희들이 그렇게 하자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져봐야 소용없다. 그게 뭐 대수냐고 덤비는 놈들이다. 앞뒤가 다른 말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뱉는 족속들에게 들려줄 말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렇게 짐승처럼 살다 죽어라. 대화 자체가 안 되는 사람을어떻게든 광장으로 이끌어 이해와 조정, 타협에 이르려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상대가 자발적으로 응하지 않는 한 어떤 호의라도 상대의 뱃심만 괜스레 키울 뿐 소용이 닿지 않는다. 처음엔 배려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알고, 나중에 주인 빕상을 차지하려 덤빌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이다. 이 사태에 책임이 있음에도 단 한 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인면수심이 극에 달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더 바랄 것 없다. 역사와 함께 뚜벅뚜벅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