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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기만 한 사람들, 일하지 않는 노동

– 《가짜 노동》이 말하는 번아웃의 구조와 탈출의 조건

by 콩코드


우리는 정말 일을 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컴퓨터는 업무를 자동화하고, 인공지능은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일에 시달린다. 이상하지 않은가?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줄여줄 것이라는 오래된 예측과는 달리, 우리는 퇴근 이후에도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주말에도 미팅 준비를 하며, '휴식 중인 시간'에도 일을 생각한다.


덴마크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아네르스 포그 옌센은 《가짜 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라는 책에서 이 기묘한 현실을 통찰력 있게 파헤쳤다. 저자들은 우리가 진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대부분이 ‘가짜 노동’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즉, 실질적 가치를 생산하지 않거나, 전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며 자신을 소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쓸모없는 일’이야말로 현대인이 번아웃에 이르는 핵심 구조라고 경고한다.


가짜 노동이란 무엇인가?

가짜 노동(Pseudoarbejde)은 겉으로는 중요하고 바빠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의미도 없고, 꼭 필요하지도 않으며, 하지 않아도 되는 노동을 뜻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가짜 노동이 조직 내부의 과도한 문서 작업, 불필요한 보고와 회의, 형식적인 기획서와 평가 시스템, 과잉된 행정 절차 속에서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특히 대기업, 공공기관, 중간 관리자급에서 이러한 가짜 노동이 구조화되어 있으며, 그것이 일하는 사람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의 ‘성과주의’ 및 ‘투명성과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실제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 해결처럼 보이게 하는 행위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회의는 많아지지만 결론은 없고, 보고서는 산처럼 쌓이지만 실질적인 실행은 요원하다. 구성원들은 무의미함을 인식하면서도 시스템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결국 내면의 회의감과 피로감은 깊어져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바쁨의 자기기만과 집단적 무감각

《가짜 노동》은 단순히 업무의 비효율성만을 지적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바쁘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사회의 심리적 구조를 겨냥한다. 저자들은 오늘날의 노동 문화가 '시간을 채우는 데 급급한' 구조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정작 일을 하지 않더라도, ‘바쁘게 보이기 위한 노력’이 중요해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눈치를 보고, 상사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실제보다 더 일하고 있는 척한다. 이러한 위장된 노동은 개인에게 ‘일에 대한 죄책감’을 심어주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가짜 노동을 자청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감시하며, 스스로를 압박하고,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모두가 ‘바쁜 노동자’ 역할을 수행하며 진짜 자신을 잃어간다. 하지만 이 연극은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조직은 창의성을 잃고, 개인은 소진되며, 사회 전체는 가짜 생산성이라는 환상 속에서 허우적댄다.


가짜 노동을 멈추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짜 노동》의 저자들은 단순한 개인의 태도 변화가 아닌, 조직 구조와 문화 전반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제안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의 목적을 재정의하라.

‘무엇을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라,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불필요한 회의, 의미 없는 보고서, 형식적인 일정 등은 대부분 목적 없는 일들이다. 각 조직은 구성원들과 함께 일의 본질과 사회적 가치를 되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신뢰에 기반한 자율성을 회복하라.

통제와 감시가 많을수록 가짜 노동은 늘어난다. 반대로 신뢰와 자율을 주면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일의 의미를 더 잘 인식하고, 실제 성과로 연결되도록 노력한다. 보고를 위한 보고, 성과를 위한 수치가 아닌, 실질적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일하는 시간’이 아닌 ‘성과’를 중심으로 사고하라.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는 시간보다, 실제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냈는지를 중심에 두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 재택근무, 유연근무제 같은 새로운 일 방식은 그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넷째, 과잉 계획과 관리의 환상을 버려라.

모든 것을 계획하고 예측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조직을 경직시킨다. 실험과 실패,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완벽한 기획’보다는 ‘가치 있는 시도’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의미 있는 노동으로의 전환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적게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게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가짜 노동이 인간을 지치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일을 통해 삶이 나아지고, 타인과 연결되며,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 인간은 무너진다.


《가짜 노동》은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일은 정말로 해야 하는 일입니까?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야말로,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그것은 단지 일에 대한 고민을 넘어, 삶의 방식 전체를 되돌아보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바쁨이 삶을 증명해 주던 시대는 끝나야 한다. 이제는 의미가 삶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바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의미 있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번아웃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시 건강한 노동과 인간다움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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