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붉은 끈.
우버 아레나에서 열린 닉 케이브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베를린에서의 한달은 거진 마무리가 되었다. 틴더에서 만난 친구들도 전부 매치를 취소했다. 에비앙 플라스틱 병도 전부 팔아서 고양이에게 줄 간식을 샀다.
오늘 아침엔 베딩 경찰서에서 우편이 왔다. 내가 여기 도착하고 겪었던 마이너한 도메스틱 바이올런스에 대한 진술을 적어 우편으로 붙여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영어로 내용을 적고, 편지를 봉해 경찰서로 향했다. 베딩 경찰서에 가서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지 않으면 경찰서에 입장할 수 없었다. 내가 경찰서에서 받은 편지를 가져왔다고 하니까 한 경찰이 나왔다. 그가 문을 반만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광대뼈에서부터 눈썹 윗부분까지 길게 상처가 난 사람이었다. 빨갛게 그어진 상처가 반들반들해서 연고를 바른 것 같았다. 내가 편지를 보여주자 그는 읽어보더니 말했다.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비가 오는 날.
나는 베를린을 떠날 때까지, 아르투르가 보았던 어떤 붉은실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을까 내내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다. 붉은실이 가진 유명한 상징처럼 사랑을 찾던 건 아니었다. 아. 그 누구고 뭐고, 나는 사람과는 사랑할 수 없다. C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없다. 사람과의 사랑은 언제나 자유 의지와 질투와 죽이고싶은 충동과 분비물이 전제가 되었지만 인간을 제외한 짐승이나 사물들은 아니었다. 나는 쥘리아 뒤크루노의 영화 티탄에서 왜 주인공 알렉시아가 자동차를 사랑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알렉시아가 사랑했던 가짜-아빠와의 관계의 결과는 구라와 멸시, 밀어내기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자동차와 사랑한 결과는 매끈한 신인류의 탄생이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도대체 자동차와 뭘 하는거냐고 물었지만 알렉시아는 자동차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개-재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의 재가 담긴 유골함에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디에 굴복해야할까. 나는 올라갈까, 내려갈까?
이제 이틀 뒤면 집에 갈 것이다. 별 다른 계획 없이 Nettelbeckplatz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달려가는 구급차들이나 볼트 택시, 경찰차들을 응시했다. 숙소 창문 너머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집회를 내려다 보았다. 튀긴 엔초비를 먹으면서. 군중들, 기다란 고드름처럼 날카로운 모양으로 하고 베딩의 소다색 하늘 사이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빛, 그 사이로 내게도 붉은실이 튀어나오는걸까? 아니, 그건 붉은실이 맞긴 할까? 거대한 자동차 바퀴 밑에 깔린 사람들은 도로 바닥에 길고 긴 핏자국이 아닐까?
내가 베를린에 들고 간 세 권의 책은 이랬다.
1. 리얼리티 샌드위치- 앨런 긴즈버그
2. 투계-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3.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여행에서 리얼리티 샌드위치는 초반에 읽다 말았고 별로 인상 깊지 않았다. 내게 앨런 긴즈버그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순간은, 그가 더 클래시의 컴뱃 록 앨범에서 내레이션을 했을 때뿐인 것 같다. (♬링크♬) 투계는 간절하게 읽고 싶었지만 읽지 않았다. 투계를 가져온 사실을 까먹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소설집임에는 틀림없다. 첫 단편이 굉장했으니까.
독자들이 칠레의 밤을 읽는 이유는, 그의 장광설을 참고 읽는 이유는 마지막 문장을 읽기 위해서다. 독자들이 야만적인 탐정들의 재수 없는 섹스 판타지와 볼라뇨 본인을 본 딴 캐릭터보고 잘생겼다느니 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참고 읽는 것도 주인공들이 종국에는 찾아낼 그 여성 예술가를 맞이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다.
하여간 칠레의 밤의 아주 유명한 마지막 문장은, “그 후 지랄 같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내일은 드디어 베를린을 떠나는 날이고 나는 칠레의 밤 마지막 페이지만 잠깐 읽었다. 지랄 같은 폭풍. And Then The Storm of Shit Begins. 원문은 모르겠다. 나는 이곳에 와서 내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결하고 가리라 여겼지만 춤만 잔뜩 추었고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무명이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그냥 트레조어에서 춤만 존나 추었을 뿐이다. 가끔 쇠구슬이 서로에게 다가가 부딪혀 반동에 의해 물러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나는 베를린에 있는 동안 내 감정의 아주 작은 파편이라도 녹아 없어지길 바랐고, 그것만이 목표였지만 실패했다. 그냥 나는 엄청나게 좆됐고 좆됐으며 좆됐을 뿐이다. 나는 큰 사랑을 잃었고 자질구레한 사랑에도 실패했고 잘한다고 자부했던 것은 허상이었다. 어떡하지. 앞으로 어떻게 삶을 견뎌내야 하지, 이 문장만 머리에서 반복됐다.
나는 웃었다.
나는 이 모든 게 사랑 때문에 겪은 감정이라고, 꾸고 있는 꿈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이 사랑이 내게 결코 채워질 수 없을 기이한 모양의 구멍을 남겼기 때문에 더욱 독보적인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서술한 이야기는 모두 이 기이한 모양의 구멍을 묘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개를 생각한다. 아직 보내지 못했기에 왓츠앱 입력하기 칸에 남아있는 영어 문장을 생각한다. 나는 실패와 무관심과, 구멍과 회문에 대해 생각한다.
앞으로 내게 지랄 같은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20240903~20241003
베를린에서 비선형적인 시간대로 씀. 맞춤법 검사 없이, 비문을 고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올림. 이 아둔하고 어리숙한 문체가 베를린에서의 나였다.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떠난 날은 10월 3일. 정확히 두 달 뒤 한국의 대통령은 계엄령을 발표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