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 집착적인 구멍과 추락하는 것.
그래도 나는 이곳에 도착해서 잘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베를린은 정말 쓰레기가 많고 냄새가 나고 더러운 방식으로 아름답고 생각보다 덜 변태스럽다.
나는 매일 주황색 쓰레기통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쓰레기통에는 아주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스티커에는 깨끗하게 닦인 항문이 인쇄되어 있었다. 베를린은 똥구멍을 너무 좋아한다. 그게 남자의 똥구멍이든 여자의 똥구멍이든 말이야. 나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똥구멍이나 똥, 설사 이야기만 들으면 자지러진다. 베를린과 나의 수준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안심되었다. 예술가고 자격이고 뭐고 결국 하는 얘기는 똥구멍 수준이니까.
그들의 예술이 똥구멍 수준이라는 걸 느낀 일화.
베억하인은 거대한 건물 내부의 완벽한 자유를 담보하기 위하여 내부의 자유보다 더욱 거대한, 역설적인 차별을 행했다. 그건 입뺀이라는 유명한 단어로서 담을 수 없는 차별이었다. 그러니까 본인이 베억하인의 가드라면, 지저분한 그래피티와 담배를 비빈 자국이 있는 벽에 육중하게 서서, 팔짱을 끼고 제3자를 위아래로 훑을 권리를 가졌다는 착각이었다. 그건 악명높고 유명하다는 클럽에 누군가를 들여보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눈알을 굴렸다는 게 문제였다. 생각해보면 타자를 향해 눈알을 굴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목격한 장면. 내 앞에 있던 어느 금발의 여성과 친구들이 입장 거부를 당했다. 금발 여성은 왜 안 되냐며 난동을 부렸고 결국 가드들과 싸움이 붙었다. 여성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고 결국 가드들과 격투끝에 그 여성은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
아. 이런 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태란 말입니까. 나 역시 입장을 거부당했다.
물론 자존심이 없는 나는 울적한 주말마다 베억하인에 줄을 섰고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똥구멍같은 클럽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여기와서 즉흥적으로 공연을 보러간다.
-크랙 클라우드. 베억하인 옆 작은 공연장에서 한 공연이었고 미국 밴드 옴니와 함께 했다. 옴니에 대한 참회. 나는 그들의 음악이 정말 너무나도 구리다고 생각했기에 먼 발치에서 물을 깔짝대며 대충 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기타리스트는 이상적인 너드 킹, 에피돔 오브 너드, 너드 갓이었으므로 그를 보기 위해 찔끔대며 앞으로 나갔다.) 크랙 클라우드는 물론 대단했다. 그 날 속이 안 좋아 밥을 덜 먹은 탓에 아사 직전 상태에서 공연을 보았던터라 즐기지 못했던 게 아쉬울 정도였다.
숙소에 돌아와서 유튜브에 옴니를 검색해보았고, 도대체 왜 그들의 라이브가 그토록 구리게 들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말 멋진 밴드였다!
-뉘른베르크. 크랙 클라우드를 본 이후 즉흥적으로 보러 갔는데 정말 멋진 밴드였다. 오프닝 밴드도 좋았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오프닝의 그 분은 공연장의 붉은 색 조명과 더불어 미칠듯한 퇴폐를 선보였는데 1920년대의 미친 베를린 뒷골목이 이랬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헤드라이너인 뉘른베르크도 정말 멋진 밴드 였다. 멤버는 단 두 사람. 두 사람이 그 공간을 장악했다.
앞으로 몇몇 개의 공연을 더 예약해두었다. 걸 인 레드는 웃돈을 주고 표를 사기도 했다.
우버 아레나에서 열린 공연에 갔다. 주인공인 걸 인 레드가 베를린 공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 베를린. 너네 섹스 정말 많이 한다며?
하지만 걸 인 레드, 마리는 공연 내내 내가 모르는 무언가,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듯 행동했고 울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게 베를린은 그렇게 음란한 도시가 아니었다. 변태가 변태인 걸 드러내고 다니면 별로 변태적이지 않다. 노이쾰른에 가면 낮에 가끔 가죽 하네스 상의를 입고 다니는 남자들이 보이는데 그들은 변태가 아니다. 자기 취향이 이렇다 저렇다 솔직히 말하는 건 변태가 아니다. 네 어디에 손가락을 넣어도 돼? 라고 손가락을 넣기 전에 미리 물어보면 그건 변태가 아니다. 질문의 대답 중 ‘싫어’의 가능성도 있기도 하고 이곳에 사는 남자들은 적어도 말끝마다 IF YOU WANT를 밥먹듯 내뱉기 때문이다. 베억하인의 레드 룸은 애초에 성관계를 하라고 만들어진 곳이기 때문에 변태적인 공간이 아니다.
나는 베를린보다 서울이 훨씬 변태적이라고 느꼈는데 서울은 모든 것의 의도를 숨기기 때문이다.
구멍 속으로 숨기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구멍으로, 베를린이 내게 소개한 그 기다란 구멍으로.
아르투르.
마우어 파크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극장에서 키메라를 보았다. Lichtblick-Kino. 여러 명을 거쳐 그나마 안정적으로 친구가 된 남성 J가 말하기를 자기가 생각하기에 여기가 베를린에서 가장 작은 극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빌론의 상영관2가 훨씬 작았다.) 팝콘을 파는 곳은 아니었다. 나는 작은 제로 콜라를 다 마셨고 영화의 중반부 때부터 오줌이 마려워서 힘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일어나자 내 바람막이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휴대전화 전등을 켜고 바닥을 살폈지만 누군가 떨어뜨린 피스타치오 이외에는 없었다. 다음날 알았다. 잃어버린 건 디올 립스틱. 어떤 가치.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개-재를 담은 작은 함이었으면 어떡하지 잠깐 상상했다.
아주 작은 것이 추락하는 소리.
아르투르는 씨 에이 피 아이 티 에이 엘 아이 에스 엠에 굴복해 자신의 초현실적인 능력 키메라를 다른 도굴꾼에게 팔기 결정하고 결국 땅굴속에 갇혀 죽게된다.
다음 날 나는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서 가서 뵈클린의 죽음의 성을 한참동안 보았다. 고흐의 그림이 있는 공간은 막혀있었다. 아르투르가 갇혔던 사방이 막힌 지하 땅굴처럼. 나는 비록 고흐의 땅굴에 갇히지는 못했지만 다른 섹션에서 죽음의 성을 보게 되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그림의 정 가운데에 검은 부분. 빨려들어가는 블랙홀이 있다.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 아르투르는 땅굴 복도에서 죽게되지만 결국 선명한 붉은 실을 잡아당겨 죽은 여자친구인 베냐미나와 재회하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고 숨을 들이키던 차에 화면은 블랙아웃된다.
J는 자기가 폴리아모리를 추구한다고 했고 파트너가 있다고 했다. 파트너는 논 바이너리고 현재 베를린에서 미친 듯이 일을 하며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직업이 없다고 했다. 그는 출판사와의 소통에 대해 내게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나 역시 출판사와 별로 컨택한 적이 없어서 뭐라 대답해 줄 수는 없었다.
나는 어쩌다가 J와 함께 그가 산다는 마우어 파크 근처의 동네를 걸었다. 며칠 전? 그러니까 베억하인에서 쫓겨나기 전 날. 정말 팬시하고 깨끗했고 레스토랑에 걸린 알전구 표면은 반짝반짝 닦여있었고 이케아 가방을 메고 카트를 미는 노숙자도 적었고 주황색 흡연 쓰레기통도 깨끗했다. 그 쓰레기통에 똥구멍 스티커는 붙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한국에서부터 곪기 시작해 베를린 한복판에서 터져버린, 가슴 한복판의 피지낭종의 구멍을 채울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다녔기에 그가 무슨 라이프스타일을 가졌고 자기 파트너가 무슨 성향인지 J가 BDSM 데이팅 어플을 하는지 안하는지 난 좆도 관심이 없었단 소리다. 나는 그가 결혼을 했어도 상관이 없었고 퍼리여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냥 친구가 필요했다. 베를린 길거리를 같이 걸을 친구. 한달용 친구 말이다. 친구는 내게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하리라. 울지 않게 만들어주는 장벽. 왜냐면 길거리에 주인과 산책을 나온 개만 보면 나는 죽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제 정체성에 대하여 남에게 발설한다는 사실이 J에겐 굉장히 중요한 일처럼 보였기에 나는 호응해줬다. 그래. 그건 중요한 일 일 것이다.
내게 구멍과, 구멍 안으로 추락하는 모든 감정의 잔여물들이 중요하고, 그 찌꺼기를 잉크삼아 글로서 꾹꾹 써내려가는 게 베를린 여행에서(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가장 중대한 일이듯이 말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빨려 들어가기.
내 필명은 훌리오 메뎀의 북극의 연인들의 주인공 중 한명에게서 가져왔다. 스페인 이름 아나는 앞으로 읽어도 아나이고 뒤로 읽어도 아나이다.
어디 가서 이렇다하게 밝히진 않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훌리오 메뎀의 영화는 루시아 이 엘 섹소인데, (어디 가서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영화가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쓸모없이 주인공 파즈 베가의 나체를 집요하게 훑고 쓸모없이 섹스신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엔딩 장면을 보고 울었고 아직도 그 눈물의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메아리 혹은 잔상과 노이즈가 지속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주었거나 재생산되는 것 같다. 정신 나간 소설가나 갑자기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린 남자나 정신 나간 섹스들.
특히 한 장면. 이 장면이 특히나 내게 변주로서 항상 다가온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여성이 루시아의 앞에서 책을 든다. 그는 루시아에게 소설은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여자는 검지를 책 위에 꽂고 입으로 소리를 낸다. 쿠우우우, 쿠우우우우-. 그 여자가 의도한 바는 책 표면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을 통해 스토리가 흘러 내려간다는 것이다. 흘러 내려갔던 스토리는 또 다시 그 구멍을 통해 위쪽으로 흘러 올라가는 것이다.
回文.
쿠우우우, 쿠우우우우-.
나는 항상 음흉한 의도로 만난 사람들에게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줘. 나중에 소설에 쓰게 되면 크레딧을 꼭 달게.
쿠우우우, 쿠우우우우-.
내가 스물한살에 보았던 루시아와 책에 뚫린 가상의 구멍을 회전하는 어떤 이야기들은 2024년 베를린의 한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된 라 키메라라는 영화의 카메라 회전과 결합했다. 카메라는 아르투르의 전신에 이어 그의 머리꼭지를 지나 한 바퀴 돈 뒤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넓은 강의 수면에 투명하게 비추는 풍경. 데칼코마니. 한차례 비가 온 뒤 웅덩이에 비추는 아르데코 형식의 바빌론 로사 룩셈부르크 점 건물. 강박적인 대칭과 직각으로 점철된 아르데코 건축물.
가끔 구글 맵이 여행자를 괴롭힐 때, 우리는 구글 맵 화살표에 따라 한 바퀴 회전하기도 한다. 나 역시 루프트한자를 타고 뱅글뱅글 돌아 이곳으로 왔고 그렇게 회전하다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섞여 더 이상 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줄 알았으니까.
개의 재.
부모님과는 이틀에 한 번씩 연락하는데, 부모님은 개의 재를 어떻게 처리할지 내게 말하지 않았다. 이미 처리했을 수도 있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이 잿가루가 개의 재면 어떡하지 발을 구른다. 나는 쌀국수를 먹으러 베트남 식당에 갈때마다 식탁에 개의 사진을 올려두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고, 엄마는 우리 개가 베를린까지 갔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나는 J를 만날 때마다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해달라고 했다. J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 중 재미있는 이야기가 두 개 있었다. 크레딧을 달고 나중에 내 소설에 써먹을 요량으로 여기에 기록하지는 않겠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잠깐 다녀왔던 프라하에서 산 노트에 적었다. J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는 그 이야기에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았기에 내 사생활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개가 죽었어.
C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새끼가…….
J가 베딩에 놀러와서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 가야할 때 S41를 타야했다. 나는 지상철에서 그가 열차를 기다리는 곁에 함께 있었다. 그가 뭐라고 말했고 내가 물었다.
너는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해?
J가 한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다. J와 헤어지고 나서 새벽까지 잠들었고 일어나서 트레조어에 갔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프링글스를 먹으면서 아침까지 춤을 추었다. 너는 페미니스트야? J에게 그렇게도 물었는데 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와 악수했다.
내가 자주 탄 열차는 S42, ringban이라고 써있었다. 나는 링반이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버뮤다 지대처럼 어느 구간을 뱅뱅 도는 그런 열차가 아닐까 생각했다. 뜻은 찾아보지 않을 예정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