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베를린 [2]

by 김아나


밀어내는 것.



그는 나와 같은 나이였다. 나처럼 천성이 내성적이고 음흉한 사람이 해외에서 친구를 만나려면 어플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를 틴더에서 만났다. 그는 매치가 되자마자 내게 말을 걸었고 틴더 내에서 길게 문자로 대화할 바에는 내일 당장 바로 만나자고 했다. 긴 문자는 무엇일까. 끝없이 이어지는 앨런 긴즈버그의 미친 장시처럼 끝없는 대화라는 뜻일까? 그랬다. 나는 베를린에서 앨런 긴즈버그를 읽고 있었고 지금도 읽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베를린에서 앨런 긴즈버그라, 하여튼 우리는 바로 다음 날, 크로이츠베르크의 미팅 포인트라는 어느 카날, 묽은 설사색 물이 말 그대로 고여 있는 다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활하고 여러 개의 정류장에 걸친 한강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베를리너든 이런 똥물 앞에서 만나는군. 흐르지도 않고, 고여 있고, 정체된. 플러시 버튼이 없는 변기. 사람들이 갈색 개와 산책했다. 나는 걸어가면서 개가 싼 똥만 보면 사진을 찍었다.


그날 내 숙소에는 어느 랜덤한 여성(영국 출신의 어느 여성 혹은 노숙자) 이 내 방에 침입해 경찰을 부른 날이었다. 옆방의 (그 늙은 여자는 자신이 내 방에 침입한 흑인 여성의 행동에 어느 정도 원죄가 있는 듯한 말투로 말했는데) 늙은 여자가 내게 할 수 있는 어떤 속죄의 의미로서 경찰을 불렀다. 나는 경찰에게 내 여권과 부킹닷컴 예약 명세를 보여주었다. 나는 경찰이 내게 숙소 바깥으로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한동안 랜덤 레이디에 대해 문자를 보냈고 약속 시간을 삼십 분 미뤘다.



카날 앞에서 독일어보다 더욱 내게 이국적으로 다가오는 낯선 억양을 가진 세 명의 무리가 기타를 치는 중이었다. 나는 다리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


어디 있어? 너를 어떻게 찾지?


나는 검은색 옷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어.


여기 있는 99%의 사람들이 다 그러고 있어.


그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나는 대략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설명했다.


나는 그날 검은색 옷을 입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과도하게 담뱃재를 터는 버릇이 있었고 그 탓에 검은색 옷에 재가 많이 묻었다. 내가 손등으로 담뱃재를 털자 길게 회색 무늬가 생겼다. 그는 폴 토마스 앤더슨과 정확히 똑같이 생겼고(그보다는 키가 작았지만) 그래서 나는 그를 골랐고, 검은색 옷을 입지 않았다. (그는 정말 폴 토마스 앤더슨의 2012년의 모습과 똑같이 생겼다. 그보다는 나이가 어린 느낌이었지만. 나는 2012년에 그 누구보다도 폴 토마스 앤더슨의 얼굴을 매일 매일 자세히 쳐다보고 베를린 영화제의 프레스 콜을 수천 번 돌려보았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폴 토마스 앤더슨의 2012년 영화 더 마스터에서 내가 배운 영어는 Intercourse with your aunt와 Looney bin이었다. 그 당시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은 김기덕이 받았고 더 마스터는 은곰상이었다. 나는 그 결과를 새벽까지 기다렸다.) 미색 셔츠에 바지와 벨트를 맸다. 주말에 심심하면 똥물 위에 뜬 보트를 탄다고 했다. 수풀로 가서 친구와 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그는 너드였고 안경을 썼고 행동거지가 어딘가 주춤대는 식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사회 과학 연구를 한다고 했다. 사림의 사회학적 행동을 모아서 결과를 도출하는 연구라고 했고 사실, 학생 등을 가르치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정체된 똥물 곁에 세워진 펜스 옆을 계속해서 걸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이 여기 모여서 게임을 해.


우리 왼편으로 다른 펜스가 세워져 있었다. 펜스 너머로 구획이 나누어져 있었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웃었다. 바닥에 두 가지 종류의 쇠구슬이 있었다. 작은 쇠구슬을 던져 큰 쇠구슬을 밀어내는 식이었다. 다른 구획에서는 다른 종류의 게임이 진행 중이었는데, 쇠구슬이 아니라 나무 조각으로 하는 것으로, 게임 원리는 비슷해 보였다. 어쨌든 무언가를 밀어내기. 나는 레드불을 마셨다. 그는 맥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바닥에 빈 병을 내려놓았다.


왜 길에다 버려?


내가 물었다.


노숙자들이 병을 주워서 마트에 가져다주면 보증금을 받거든.


우리는 변기 물을 따라서 쭉 걷다가 멈추었다. 횡단보도 앞이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왼쪽으로 계속 걸을래 아니면 (손가락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서 와인을 마실래?


나는 그만 걷고 싶어서 그가 가리킨 지점으로 가서 와인을 마시자고 했다. 그 지점으로 가는 동안 근사한 아파트들을 지났다. 나중에 저기에서 살고 싶어. 그 남자가 말했다. 그는 주거 구역으로 향했고 이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가 가자고 한 곳은 바나 레스토랑이 아니라 자기 집이었다. 3층이었다. 그는 룸메이트 없이 혼자 산다고 했다.


바이브가 맞다는 이야기가 뭐야?


나는 소파에 앉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준 음료를 마시며 물었다. 무슨 음료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술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바이브가 맞다는 문장의 뜻을 알고 있었다.


너랑 나랑 잘 맞는지 그런 거 말이야.


그럼 너랑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그럼.



내가 그에게 살인자냐고 물어봤다. 그는 아니라고 했고 나는 사실 나는 존 윅 같은 살인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말했었나?) 그러다가 그가 손을 가리지 않고 재채기했다. 순간 나는 입을 가리지 않고 재채기하는 한국인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C라는 자를 떠올렸고 갑자기 우울해졌다. C는 언제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C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음을 급작스레 깨달았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난 건 C를 조금 닮았기 때문이었음을. 이 사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내가 실상 원하는 존재와 간접적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도달했을 때, C에게 자신 있게 연락하는 대신 이런 음습한 짓을 일삼는 내 자신의 비겁함에 소름이 돋았다. 또한 내가 이성애자라는 사실이 이토록 또렷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기에 도대체 여기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내가 이 모든 게 최악이라고 생각하던 중 그가 물었다.


오늘 일어난 일 중 뭐가 최악이야?


나는 우버를 불렀다고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그가 잘 도착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그랬다고 했다. 이틀 뒤 내가 어플을 통해 엄지손가락을 움직여서 물었다. 나랑 더 만날 의향이 있어? 그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 돈 노우 YET, YET, YET. 나는 그 문자를 받았을 때 화장실에 앉아 코를 파고 있었다.

문자를 보낸 내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 나는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이유없이 문질렀다.


개가 살아있었고 잠들었을 때 꿈을 꾸었던 것 같다. 개는 앞다리를 까닥거리며 밀어냈다. 길게, 그 긴 다리로, 길게 무언가, 나 같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걸 밀어냈다.

나는 밀려났다.

갑자기 이토록 매력이 없는 내 자신이 개탄스러웠다.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냥 관심이 없었다. 틴더의 그도 그랬고 C는 그러고 있었고 베를린 역시 그러고 있었고 편집자들과 출판사들 역시 내게 관심이 없었다. 독자들과 심지어 내 자신 역시 내게 관심이 없었다. 관심 없음의 해일에 밀려 내가 도달한 곳은 베를린 베딩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의 한 화장실이었고 막 코딱지를 파내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무관심의 바다에 치졸하게 홀로 동동 떠서 도착한 곳이 여기란 것이다.

밀어내기.

해일은 나를 밀어냈다.

더 섭스턴스에서 새롭게 탄생한 젊고 어린 수는 엘리자베스를 화장실의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 아주 깊은 곳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처럼. 보는 것마저 역겹다는 마냥. 그 안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도 사실 내 내면의 구멍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안에는 개가 있기 때문이다. 고요하게 잠든 개. 나는 개를 생각하며 엄지손톱 옆에 생긴 굳은살을 뜯었다. 피가 났고 다음 날 크게 부풀어 올랐다. 잘라버리기 적당한 크기였다.


나는 엄지에 주방용 칼을 대고 그와 만나기 전 숙소에 입장했던 대여섯 명의 경찰을 생각했다. 머리를 짧게 깎았고 두 손을 두터운 조끼 주머니에 넣어 어정쩡한 자세였다. 아파트 숙소에 배정된 내 방으로 가려면 두 개의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들은 매우 잘 올랐다. 나는 우리 개가 죽기 전에 그들처럼 잘 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개는 계단을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했다. 나는 엄지를 자르지 못했다.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개도 역시 그랬을 거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딘가로 나가야 했다.


베를린 필 무료 런치 콘서트에 가봐.


아마 트레조어에 갔을 때 만난 것 같은, 기억이 나지 않는 여자가 내게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다음날 베를린 필에 가기로 했다.


Humboldthain(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다.)역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현금은 2.5유로, 카드는 3유로) 마시느라 늦장을 부려서 늦을 지경이었다. 무료 연주회의 시작은 1시였고 네이버 블로그에서 본 공포스러운 후기에서는 1시에 도착했더니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연주회를 본 결과 1시 이후에도 입장이 가능했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달려온 탓에 땀을 닦으며 내부를 둘러보니 당연히 의자에는 앉을 수 없었고 계단도 꽉 차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들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트리오가 입장했다. 나의 시야에서는 피아니스트의 구두가 보였는데, 그 반짝임과 나의 시야는 연주 내 맞닿았다.


트리오는 스팽글이 달린 상의를 맞추어 입었다. 하의는 단풍색.

거대한 박수.

피아니스트가 멜로디에 따라 몸을 잠깐씩 움직이면 거울처럼 매끈한 피아노에 그의 상의에 달린 반짝이들이 스파클을 이루었고 조명과도 충돌했다. 트리오는 아이보리 색, 굽이 두꺼운 구두를 맞추어 신었다. 피아니스트는 리듬감이 있는 곡을 연주할 때 구두 굽을 바닥에 부닥치며(무의식적인 행동 같아 보였는데) 박자를 맞추었다. 에나멜 구두가 발하는 동그란 빛. 빛의 틈 사이로 아이가 달리고 춤을 추다가 엄마와 함께 나갔다. 개를 데리고 온 사람은 없었다. 개를 데리고 들어올 수 없는 구역이리라. 칭얼대며 얇게 우는 아이의 소리. 달래는 엄마. 휘파람 소리. 눈꽃 모양의 조명. 어떤 한 어린아이가 하얀색 뜨개 모자를 쓰고 내 앞을 지나갔다. 노인들이 움직일때 나는 바람막이 소리. 운동화가 매끈한 바닥에 밀착되는 소리.


피아니스트가 손바닥으로 피아노를 두드렸다. 누군가 기침. 그것도 리듬.

손에 잡히지 않는 선율.

보이지 않는 것.

나의 개가 기다란 발로 밀어낸 그것.

공연이 끝나고 쌀국수를 먹으러 가는 도중에 자전거를 탔다. 비가 어마어마하게 왔기에 나는 16분 만에 바이크를 반납했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길에 길거리 곳곳에 놓여있는 빈 병이 보였다. 노숙자들이 병을 주워서 마트에 가져다주면 보증금을 받거든. 그래서 바닥에 두는 거야. 나는 바닥을 걷는 거야. 지나가던 노숙자가 백인 소년들과 싸웠다. 꺼져버려. 노숙자가 침을 뱉었다. 백인 소년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노숙자를 찍었다. 노숙자가 한 번 더 욕을 한 뒤 줄을 당기자 커다란 개가 노숙자를 따랐다. 개는 노숙자와는 달리 깨끗했다. 노숙자 주변으로 머리가 짧은 경찰들이 형광 노란색 조끼를 입고 두리번댔다. 여전히 두툼한 조끼에 손을 올리고 주춤대며. 경찰들은 노숙자를 거리에서 밀어냈다. 서로 부딪혀 밀려나는 두 개의 쇠구슬.



나는 왜 노트에 쓰기 전에는 그것을 겪었다고 증명받지 못하는 걸까?

내 스스로에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