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 베를린 [1]

by 김아나
나는 그냥 재미좀 보려던 건데. 가라앉기 전에.


구멍, 부서진 광선이 비추던 베를린에서.


여행에서는 소설을 쓸 수 없다. 즉각과 동시성이 우연을 지배하기에 머릿속에 이미 뿌리를 튼 것이 땅 위로 올라올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왜 노트에 쓰기 전에는 그것을 겪었다고 증명받지 못하는 걸까?

내게서 부서진 것들.


한국에서는 금이 가기 시작한 상태였다. 내가 금이가는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녹인 설탕에 미세하게 가는 금처럼. 나는 때때로 그렇게 금이 간 모습이 아름답다고 여기기도 했다. 거미줄이 예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무의 나이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듯이. 돈과 시간, 일정부분 넉넉히 떼어놓은 한달이라는 시간을 가지고 베를린으로 떠나자 곧 그 무언가가, 내 절망과 열정의 원액으로 만든 녹여서 건조시킨 설탕이 산산조각났다.


내 뱃속 아주 깊숙한 곳에 위치한 그것이 아주 잘게 부서졌다. 조각의 끝이 장기를 찔렀다. 그 고통속에서 나의 아주 추악한 본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의 이름은 질투였다. 빌어먹을만큼 아름답고 더럽고 거지들이 많고 자기가 예술가라고 우기고 혹은 정말 예술가들이 거니는 도시에 머물기에는 내가 너무 모자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올해 그 어떤 매체에도 단편소설을 발표한 적도 없었고, 데뷔이래 나를 언급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제대로 된 단편을 쓰지 못했다. 쓰레기같은 장편 소설을 쓰는데 한 달과 기력을 소진했다.


베를린에 도착하고 48시간 이내 발생한 사건들에 의해 조각들은 뻔뻔할 정도로 날카로워졌고... 나는 결국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이 도시에 절대 어울리지 않아. 적합하지 않아. 돈 날렸어. 씨발. 좆같네. 나는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오기 전에 내가 일종의 적합한 자격을 얻게 되리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씨발.

더 날카로워지기.

아마도?


내 단편을 싣기로 했던 어떤 매체의 청탁 번복 사건이 일어나자 나는 미쳐 돌아갔다. 당신의 원고를 싣겠다는 우리의 합의를 번복하겠어요. 당신의 원고를 실을 수 없어요. 정신나간 광증과 불안감. 출판사에서 온 이메일에 쓰인 '번복'이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내 심장을 옥죄였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내 원고를 싣지 않겠다는 말이 '번복'이라는 공식적이고 무자비한 단어로 다시 탄생한 것 같았다. '번복'이라는 단어는 '넌 쓰레기야'처럼 다가왔다.

아주 작살난 실패.

바빌론 크로이츠베르크에서 본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 재키는 온갖 지랄을 다 하고 참여한 바디빌딩 대회를 망친다. 약물 때문에 퍼포먼스 도중 구토를 한 거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재키가 성공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그 자리에서 극장을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모든 스토리텔러들이 그렇게 선택할 것이듯이, 재키는 실패했다. 영화 속 실패는 멋지다.

현실의 실패는 좆같다.

한국에서 가져온 안정제 세 알인가 네 알을 집어 삼키고 나서야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베를린의, 비슷비슷한 이름들을 가진 미술관에서 숱하게 보던 신음하던 조각상들의 얼굴을 닮아간다는 걸 알았다. 작가의 이름도 작품의 제목도 모르는 채로 열심히 찍던 조각상들. 인간이 카오스 사이에서 질서를 찾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역사와 도굴과 불법의 소용돌이 카오스 속을 횡단하다 베를린에 자리 잡은 조각상에서 내 얼굴을 찾아 그렇게 사진을 찍었을지도 몰랐다.


뾰족해지기.

유리 조각.

구멍으로 추락하기.

칼.


모든 게 인스타그램 때문이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릴 때마다 내가 가진 가장 역겹고 추악한 본성을 감각했다. 이 구질구질한 질투의 악취가 하도 심해서 도저히 숨길 수 없었다. 최근까지도 나는 질투를 모르는 척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가족과 반려동물이 깔끔하게 제외된 여행지에서는 나는 그 어떤 곳으로도 달려갈 수 없었다.

내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


인스타그램은 시상식과 신간 홍보와 서평단 모집과 책 표지 디자인과, 북토크 후기, 어느 문예지에 단편이 실렸다는 이야기로 가득 메워졌다. 누군가 키우는 개와 고양이는 살아있었다. 건강하게. 아마 위장이 위치했을 그 위치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일었다. 나는 진정제를 네 알 먹었다. 그 날 밥도 잘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새벽 세시쯤에 깼는데 시야가 두개로 갈라져 보였다. 반으로 깨진 유리를 바라보면 내 모습이 두개로 보이듯이 말이다.

내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


베를린에 오기 직전 개를 잃었다. 개가 첫번 째로 아팠을 때(개는 여러 번 아팠다.)나는 코닥에서 나온 즉석 카메라를 샀다. 개의 모습을 즉시 기록하고자 함이었다. 사진은 아주 작은 사이즈여서 보관하기 용이했다. 나는 성모 마리아의(내겐 종교가 없지만) 그림이 붙어있는 작은 틴케이스를 샀다.

좆같은 더위에 나를 내맡기기.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기. 커다랗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상실로부터 달아나는 건 아주 작고 사소한 감정에 몰두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거의 정신병자였다. 작은 틴케이스에 붙은 개의 사진을 보고 울었고 다음날 웃었다. 어플로 남자를 만났다. 새벽 세시 이십분에 집에 도착하면 개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탓에 한 자리에 그대로 그렇게 누워있었다. 나는 누웠고 비행기표가 유효한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개 옆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뻣뻣했다.

누군가 냉동실에 넣고 잃어버린 얼음처럼 나는 깰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그러므로 나를 기후 변화에 내맡기기.


나를 녹여야 했다.

기후 변화.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서 베를린.

베를린에 도착한 날.

빌어먹을 더위로 인한 직사광선이 내 어깨와 등에 내리꽂혔다. 내 등에는 흰색 줄이 생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대뼈에 글리터를 묻히고 왔다. 아. 아.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온에서 열리는 롤라팔루자 페스티벌! 내가 올림픽 스타디온에 온 제1목적이었던 밴드 글라스 빔즈의 멤버 세 명은 얼굴에 가면을 썼다. 한 명을 제외하고 그들의 신상에 대해 알려진 건 없다. 가면은 금색 비즈를 단단한 실로 엮어서 만든 것 같았다. 그래서 얼굴 굴곡에 따라 가면이 휘어졌다. 가면이 곧 그들의 신상이었다. 빛남. 광채. 매끄러움. 윤기. 저녁이 다가와 인공 광선들이 빛을 발하자 그들의 신상은 더욱 확실해졌다.


신상 변화.

신상 변화.

신상 변화.

신상 변화.

누워있는 개.

굳은 개.

신상 변화.

우리가 가라앉기 전에. 그냥 재미좀 보려는 건데. 이 가사가 나를 베를린에서 장시를 쓰고싶게 만들었다. 그러지 못했다.

가면 쓰기.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가 주연인 영화 더 섭스턴스를 개봉하자마자 보았다. 데미 무어-엘리자베스가 특정한 물질을 몸에 투약하면 제2의 나인 마가렛 퀄리-수가 몸안에서 나온다. 엘리자베스의 등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수가 등장한다. 등이 갈라지고 새로운 내가 나오는 것. 하지만 둘은 여전히 나야. 너도 나고, 나도 나야. 나도 내 등을 헹켈 칼로 가르고 새로운 내가 나왔으면 했다. 아니면 글라스 빔즈의 멤버들처럼 화려하게 라인 스톤으로 치장된 금빛 마스크를 쓰거나. 가리거나, 가르거나.

아니면 괴물이 되거나. 영화의 막바지에 몬스터가 탄생한다. 몬스트로 엘리자베-수.

개에서 재로. 제3의 것으로. 개-재. (계속)